두산 니퍼트(35)가 최우수선수(MVP) 인터뷰 도중 뒤편에 앉아 있는 아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한국말로 또렷하게 "여보 사랑해"라고 말했다. 203㎝의 '키다리 아저씨'가 이날만큼은 울보가 됐다.
니퍼트는 14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KBO 리그 시상식의 최고 주인공이었다. 다승(22승), 평균자책점(2.95), 승률(0.880, 22승 3패) 1위로 3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시상식의 하이라이트 MVP 발표만 남겨 놨고, 최종 후보는 2명으로 압축됐다. 잠시 뒤 수상자로 니퍼트의 이름이 호명됐다. 그는 816점 만점에 642점을 얻어 타율(0.376)과 타점(144개), 최다안타(195개) 1위를 차지한 최형우(삼성·530점)를 112점 차로 제치고 MVP를 수상했다. 니퍼트는 "쟁쟁한 MVP 후보들이 있는 데다 선발투수가 MVP를 받는 게 쉽지 않아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투수 MVP는 2011년 윤석민(KIA)에 이어 5년 만이고, 외국인 선수로는 우즈(1998년), 리오스(2007년), 테임즈(2015년)에 이어 네 번째다.
KBO는 올 시즌부터 MVP 투표를 1위부터 5위까지 다섯 선수에게 8점, 4점, 3점, 2점, 1점을 각각 부여해 합산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니퍼트는 역대 외국인 투수 한 시즌 최다승 타이, 역대 최소 경기 20승, 팀 통합 우승 등이 플러스 요소로 작용했다.
니퍼트는 이날 투수 3개 부문과 MVP 수상으로 두 차례 무대 단상에 올랐는데 모두 눈물을 보였다. 그는 "팀 동료들을 향해 흘리는 눈물이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생업으로 삼을 수 있는 자체가 매 순간 감사한데 이런 자리에서 상까지 받게 돼 고맙다"고 말했다.
니퍼트는 특히 '아내'와 '두산'에 여러 차례 감사를 나타냈다. 지난해 말 한국인 여성과 결혼식을 올린 그는 당초 10일 발리로 신혼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상식 참가를 위해 일정을 앞당겼고, 이날 아내와 함께 시상식에 참석했다. 아내는 니퍼트가 무대에 서 있는 동안 휴대전화로 사진과 동영상을 연신 찍었다.
니퍼트는 아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드러냈다. "나와 아내를 향한 인터넷 댓글을 봤는데 나쁜 내용이 많았다. 당사자인 나는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전처와 두 자녀를 두고 한국인 여성과 재혼한 것에 대한 팬들의 악성 댓글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니퍼트는 외국인 선수로 KBO 리그에서 벌써 6시즌째 뛰고 있다. 그는 "나처럼 나이가 조금씩 들어 가는 선수가 이렇게 완벽한 팀에서 뛴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KBO 리그에서 성공적으로 활약한 것은 훌륭한 팀과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산이 아니라 다른 팀이었다면 이런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니퍼트는 미국 오하이오주 빌스빌이라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이다. 어릴 때 "너는 (훌륭한 프로야구 선수를) 해내지 못할 것이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꿈을 키웠다. 그는 한국 무대에서 '성공 신화'를 썼다. 최고 영예의 상을 받았고, 내년이면 KBO 리그 장수 외국인 선수 중 1명이 된다. 지금까진 1999~2002년, 2004~2006년 한화에서 7시즌을 뛴 데이비스가 가장 오랫동안 한국 땅을 밟았다.
니퍼트는 "KBO 리그가 나의 커리어를 연장해 줬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다"며 "올 시즌을 돌아보며 '잘했다'고 말하면 뭔가 포기하는 기분이다. 내년에 더 잘하겠다. 매일 거울 앞에서 '오늘 열심히 했다'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아직 두산에 제공할 게 많다"고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