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 영화를 압도할 만한 작은 영화들의 등장은 늘 반갑다. 100억대 대작은 오히려 흉내내지 못할 소시민의 삶과 그들만의 고군분투기가 담겨 있으며 무엇보다 다소 촌스럽고 어색해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하나 만큼은 명확하다. 한 번 눈에 띄면 보고 또 보고 싶어진다는, 한 번 빠지면 찾고 또 찾아 보고 싶어 진다는 개미지옥 같은 저예산 영화들이 10월의 첫 시작을 알린다. 비수기 시즌 관객 동원력이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하지만 '입소문'의 힘은 늘 반전을 선사한다.
김기덕 감독과 류승범이 의기투합한 '그물'은 남북한의 현실을, 이재용 감독과 윤여정은 2016년을 살아가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고 한 번쯤은 다시 한 번 다뤄져야 했던 소재. 단 2주동안 촬영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물'의 완성도는 뛰어나고, 데뷔 50주년, 올해 70세가 된 윤여정의 열연은 눈물 날 만큼 멋지고 아름답다.
진짜 영화배우들이 만들어낸 영화. 나란히 스크린에 걸린다는 것 만으로도 '풍족함'을 느끼기 충분하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이미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 받으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는 공통점까지 지니고 있다. 눈 높아진 관객들이 '죽여주게' 맵고 작은 영화가 친 '그물'에 파닥파닥 낚일지, 상업영화에 올인 된 스크린 현상을 뒤집어 놓을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죽여주는여자 줄거리: 가난한 노인들을 상대하며 먹고 사는 여자가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을 진짜 죽여주게 되는 사연. 출연: 윤여정·전무송·윤계상 감독: 이재용 등급·러닝타임: 15세 관람가·111분 개봉: 10월 6일 300톡: 윤여정에 의한, 윤여정을 위한 '죽여주는' 영화의 탄생이다. 노인들의 성매매, 안락사 그리고 죽음까지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지금도 도심 한 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담았다. 또 다문화 가정, 트렌스젠더 등 다채로운 캐릭터들의 '삶'을 다루며 나 혼자만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아님을 인지시킨다.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윤여정은 성(性)을 파는 일명 '박카스 할머니'로 분해 파격적이면서도 슬픈 열연을 펼쳤다. 실제 촬영 당시 우울증에 걸릴정도로 힘들어 했다는 윤여정의 도전은 그래서 '쌍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도 모자람이 없다. 윤여정이 아닌 소영은 상상할 수 없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결국 영화화 시킨 이재용 감독의 뚝심도 감사하다. 누군가에겐 분명 '인생 영화'로 기록될 만한 작품이다.
▶그물 줄거리: '그물'은 배가 그물에 걸려 어쩔 수 없이 홀로 남북의 경계선을 넘게 된 북한 어부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견뎌야만 했던 치열한 일주일의 이야기. 출연: 류승범·이원근·김영민·최귀화 감독: 김기덕 등급·러닝타임: 15세관람가·114분 개봉: 10월 6일 300톡: 본인은 쉽게 인정하지 않지만 김기덕 감독은 분명 달라졌다. 그의 영화에 '15세 관람가' 딱지가 붙었다는 것 만으로도 이러한 변화를 반증한다. 독기가 빠졌고 아집과 고집을 내려놨다. 관객들의 반색을 이끌어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단순하지만 묵직하다. 특별한 반전은 없지만 스토리가 있다. 남북 소재를 다뤘다고 하면 대부분 전쟁영화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김기덕 감독은 과거의 남과 북이 아닌 현재의 남과 북 사정을 담아내며 공평한 시선으로 두 집단을 바라본다. 관객들로 하여금 무엇이 맞고 그른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똑쟁이다. 해외체류 중인 류승범의 컴백이 반갑다. 비주얼부터 사투리까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북한 어부 연기를 해냈다. 처음 겪었을 김기덕 감독과의 호흡도 꽤 좋다. 6.25 전쟁 피해를 입은 가족들로 인해 "빨갱이"를 입에 달고 사는 김영민과, 눈에 보이는 진실을 믿으려는 이원근은 각 세대의 대변인으로 활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