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보증수표'라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배우도 없다. 그래서 하정우(38)는 늘 옳다.
나이로는 30대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하지만 최민식 송강호 김윤석 등 선배들과 한 카테고리 안에 묶여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강한 연기파 이미지에 스타성까지 갖췄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입담과 매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독보적', '대체불가' 배우라면 한 번쯤 들어보고 싶은 수식어도 모두 하정우의 차지다.
그런 그가 영화 '터널'(김성훈 감독)을 통해 다시 '하정우의 진가'를 입증시켰다. 암흑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울고 웃고 분노하는 원맨쇼는 노련한 하정우이기에 가능했고 완벽했고 결국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터뷰 ②에서 이어집니다.
-누구도 없이 혼자 연기를 해야 했다. 외롭지는 않았나.
"늘 외로워서 그런가?(웃음) 스태프들이 있어도 함께 연기하는 배우가 없으면 심심하고 고될 수 있는데 이번에는 해야 할 것이 많아서 그랬는지 딱히 그런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혼자 연기하면 그 만큼 내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영화의 엔딩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나.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다.
"원작이 아닌 '터널' 시나리오에서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원작은 다른 엔딩이라고 하더라.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현실이 있다면 진짜 영화같은 엔딩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 만큼은 이렇게 마무리 돼야 하지 않나 싶었다. 희망을 주고 싶었고 보면서도 '영화 엔딩 답네. 시원하게 끝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만족한다."
-의외로 그런 면에서는 쿨하다.
"연기할 때는 단순하게 하고 싶다. 그 때 그 때 다르긴 하겠지만 노선이 확실하면 그냥 그대로 쭉 밀고 나가면 된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번에 두나 씨의 연기가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목소리, 연기하는 그 자체로 감정이 전해졌다. 나에게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남지현과의 에피소드가 더 공포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부분은 편집이 여러 번 바꼈다. 최종본은 조금 더 늘리고 보강한 버전이다. 5월 말에 편집본을 보고 내가 감독님께 드렸던 의견은 '러닝타임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 땐 두 시간이 안 됐다. 두나의 라디오 신이 정점을 찍어야 하는데 감정이 쭉 쌓이다가 마지막에 달수 형이 '다 멈춰'라고 하는 장면에 핀트가 맞춰 지더라. '왜 난데없이 후반부에 터지지?' 의아했다. 앞에 지현이와의 장면을 조금 늘리니까 우리가 원했던 느낌이 살더라. 남 일 같지 않고 현실적이라 더 무섭게 느껴지지 않나 싶다."
-하정우가 무서워 하는 것도 있을까?
"매운 음식. 매운 것을 못 먹는다. 공포스럽다. 청양고추, 보양음식은 절대 안 먹는다. 컨디션 좋은 날에 오이고추 정도는 먹는다. 김치는 괜찮다. 김치가 나를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떡볶이는 당연히 못 먹는다.(웃음) 그리고 간단하게 고소공포증도 갖고 있다. 높은 곳에 잘 못 올라가고 놀이기구도 못 탄다. '베를린' 때 4층에서 뛰어내려야 했던 신은 진짜 죽을 각오로 한 것이다. '군도' 때 말타고 질주하는 신을 찍기 전에도 한 달 전부터 기도를 드렸다."
-먹방신(神)이 좋아하는 음식은 그럼 무엇인가?
"돼지고기. 푸른생선. 각종 해산물. 보리밥. 내 체력과 에너지의 원동력은 돼지고기다. 고기만 먹어도 힘이 난다. 요즘 고기를 좀 못 먹었는데 얼른 먹어야 할 것 같다."
-'신과 함께' 촬영까지 또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장난 아니다. 아이돌 스케줄이다. 오전에 인터뷰를 하고 오후에 '신과 함께' 현장으로 넘어가 촬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신과 함께'는 '터널' 처럼 순서대로 찍는 영화도 아니다. 이것 저것 막 촬영한다. 1부 찍다가 2부 찍다가 난리다. 엊그제 벌써 2부 엔딩을 찍었다.(웃음) 과정부터 신선하다. 정말 색다른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9월 현 소속사 판타지오와 전속계약이 만료된다. 새 출발을 계획하고 있다고.
"새로 회사를 설립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속사 운영이나 그런 것에는 특별히 관심이 없다. 다만 재계약은 아니고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 소속사와의 관계도 있기 때문에 지금 섣불리 '어느 곳으로 갈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말을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1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함께 했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좋게 마무리 짓고 싶다."
-영화 제작사에도 관심이 없나?
"아주 많다. 그건 소속사와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배우로서 연기를 하고, 또 연출도 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연장선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뭐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