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실사영화 '부산행'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연상호 감독은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과 가치관이 있다.
'부산행'이 지난 5월 '칸 국제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 상영됐을 당시 공유의 회상신을 보고 전세계 영화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눈시울을 붉힌 이도 있었지만, 헛웃음을 보인 이도 있었다. 이 때문에 국내 개봉 전 공유의 회상신을 줄여야된다는 내부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확실했기 때문.
"애써 고급스럽게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기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아주 보편적인 관객들이 보고 감동 받을 수 있는 연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게 촌스럽게 보일지 몰라도요. 그래서 칸 영화제 이후 회상신을 손대지 않았어요."
그는 촬영장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영화 촬영 경험이 풍부한 배우들과의 첫 작업이었지만, 정확한 디렉션으로 배우들에게 신뢰감을 줬다. 촬영 전 이미 영화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터라 여유분이나 추가 촬영도 필요치 않았다. 이런 뚝심과 강단이 있었기에 어쩌면 첫 실사영화로 천만감독이 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왜 좀비물인가? -상업영화로 제작한 첫 한국형 좀비물이다. 불안함은 없었나. "특수분장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은 확실했다. 또 그 동안 좀비 영화를 봤던 게 있어서 좀비 모션을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것도 어느 정도 그림이 있었다. 현장에서 생각한 것처럼 되지 않았을 땐 어떤 식으로 다르게 하겠다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연출적으로 어떻게 표현해야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또 영화는 결과적으로 이야기 자체가 재밌어야된다고 생각해서 방향성에 대한 계획도 몇 개 있었다. 마치 큰 블록버스터처럼 됐지만, 재치있는 상업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거였다. 제작과정에서 박재인 안무가를 만났고, 박재인 안무가가 '곡성' 좀비 모션을 담당했던 분이라 래퍼런스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 그 분 덕분에 좀비 영화를 하는 데 확신이 더 생겼던 것 같다."
-첫 실사영화다. 영화를 찍은 경험있는 배우들을 이끌고 가야하는 부담감은 없었나. "오히려 좋았다. 내가 모르는 부분을 조언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배우 분들 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다 경험이 있는 분들이었다. 감독이라고 꼭 스태프들 보다 아는 척을 많이 해야되는 것도 아니고, 촬영장에선 많이 도움을 받으면서 진행했던 것 같다."
-테이크(한 신을 찍을 때 촬영하는 횟수)를 많이 가지 않았다고 들었다. 어디서 그런 확신이 나왔다. "글쎄. 그냥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고, 그대로 나와서 여러번 안 찍었던 것 같다. 사실 배우들이 더 찍어도 된다고 해서 안 찍어도 되는데 더 찍기도 했다. 내 뜻대로 했다면 더 안 찍었을 수도 있다. 이유 없이 한 두 번 더 찍은 신도 있다."
-사실 신인 감독들은 불안함에 여유 촬영도 하고, 테이크도 여러번 가는데. "난 오히려 처음이라 더 여러번 안 찍었던 것 같다. 여유분 작업을 한다는 걸 전혀 몰랐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할 땐 여유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실사영화를 찍을 때도 그런 걸 잘 몰랐다. 대부분 장면이 정해져있는데 찍다보면 물론 다르게 나오기도 했다. 그럼 그때 마다 그림을 맞춰가면서 찍어나갔다."
▶캐스팅 비하인드 -가장 섭외가 힘든 배우는 누구였나. "의외로 없었다. 공유 씨도 답을 빨리 줬다. 시나리오를 주고 이틀 만에 만나자고 했다. 대화를 나눈 뒤 헤어지고 20분 만에 하겠다고 답이 왔다. 마동석 선배는 만난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했다. 정유미 씨가 제일 답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다고 섭외가 힘들다는 느낌을 주진 않았다."
-영화에서 첫 바이러스 숙주로 등장하는 심은경씨는 어떻게 특별출연 시켰나. "'서울역'('부산행'의 프리퀄)에서 목소리 연기를 했다. 그 인연이었다. 심은경 씨는 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 무슨 역할인지 얘기도 안 된 상황에서 아주 작은 역이라고 '부산행'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캐릭터를 제안했을 땐 정말 좋다고 했다. 대사도 없는 좀비 역할인데 좋아해서 고마웠다. 초반 등장하는 신을 위해 1~2주 정도 좀비 모션을 연습했다. 바쁜 스케줄이었는데 최선을 다해줘서 다른 배우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됐다."
-극 중 공유 캐릭터는 아들을 둔 아빠에서 딸을 둔 아빠로 설정이 바뀐거라고. "그냥 수안이가 좋았다. 수안이가 연기한 캐릭터 수안이 클리셰 역할을 해야하는데 연기의 정형성을 가진 아역 배우가 하면 완전히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수안이는 단편 영화 '콩나물' 등 이전 작품에서 좋게봤고, 수안이가 이 영화를 해야 좋다고 생각했다. 다른 대안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수안이를 캐스팅하고 공유 씨 캐릭터를 딸 아빠로 바꿨다."
-수안 역할은 배우 이름이 곧 캐릭터 이름이었다. "수안이라는 이름이 좋았다. 괜찮은 것 같았다. 그래서 수안을 그대로 썼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배려가 없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배우들은 연기하다보면 배역에 빠지게 되는데 수안이는 캐릭터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같아서 감정을 분리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어린 배우에게 배려가 없었던 것 같다. 수안이가 그동안 했던 인터뷰를 몇 개 봤는데 캐릭터를 객관화 시켰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역할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지 못 했다는 점에서 내 배려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캐릭터가 나온다. 각자 살기 바쁜데 그 중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임산부 캐릭터가 눈길을 끌었다. "현장 편집본 때 아내가 9개월이었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 느꼈던 생각과 감정 같은 것들이 많이 도움이 됐다."
▶공유 회상신 고집한 이유 -칸 영화제 때부터 후반 공유 씨의 회상신을 두고 반응이 엇갈렸다. "처음부터 영화를 고급스럽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기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아주 보편적인 관객들이 보고 감동 받을 수 있는 연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촌스러울지라도 말이다. 대중 영화라는 건 영화를 1년에 한 편 보는 관객이든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관객이든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점에 영화가 다른 매체나 다른 예술 파트와 다른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촌스럽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런 걸 좋아하는 많은 관객들에게 즐거운 경험을 주고 싶어서 그 장면을 넣었다."
-칸 영화제 이후 회상신을 줄이는 게 어떻겠냐는 내부 의견이 있었다고. "하지만 손을 대지 않았다. 줄이면 또 다시 심의를 받아야한다. 회상신 분량을 줄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영화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건 내 이슈가 아니었다. 앞으로 예술 영화를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몇몇 사람만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진 않다."
-영화를 하면서 느낀 공유씨의 매력은. "잘생겼다. 첫 날 촬영이 자동차 오프닝 신이었다. 그 때 '아, 이 배우는 더 잘생겨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공유 씨가 '커피프린스 1호점'을 했을 땐 로맨틱한 잘생긴 젊은 남자였다면 지금은 세월의 멋이 더해졌다. 나이를 먹으면 더 멋있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공유 씨의 모습에 더 기대가 된다."
-정유미씨의 매력은. "'진짜 배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초반에 힘든 연기가 많았다. 극한 감정을 끌고 가야하는 신도 많았다. 고생하는 신이 많았는데 집중력이 대단했다. 감정을 한 번 잡으면 그 감정을 계속 잡고 가더라. 연기를 진짜 잘한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의 시선으로 카메라 앵글을 담았다. "전체적인 영화의 톤앤 매너를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 영화를 아주 차갑게 갈 게 아니라면 수안이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게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따뜻함이 관객들에게도 납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의 계획 -애니메이션을 할 때와 달리 실사 영화 한 편으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게 한 편으로는 서운하지 않나. "산업 크기의 차이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서운하지 않다.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드라마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해보고 싶다. 장르와 상관없이 말이다. 드라마라는 포맷이 매력적인 것 같다. 영화는 단편이고 한 편이 완결성을 가지는데 드라마는 연속성을 가지지 않나. 드라마는 또 다른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영화에서 못 느낀 재미와 흥미를 또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차기작 계획은. "몇 개 준비한 작품이 있긴 한데 그 중 어떤 걸 할지 선택하진 않았다. 아마도 다음 영화도 실사 영화가 될 것 같다. 앞으로 다양한 장르를 해보고 싶다. 블랙코미디는 한국에서 흥행한 적이 없는데 그걸 한 번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다." 김연지 기자 kim.yeonji@joins.com 사진=정시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