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 오전 3시45분 열리는 2015~2016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마드리드가(家)의 집안 싸움으로 치러진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연고로 삼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하 AT 마드리드)는 미리 정해진 중립장소 이탈리아 밀라노의 쥐세페 메아차에서 유럽 최고 프로팀의 상징 빅이어(Big Ear·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의 애칭)를 차지하기 위한 단판 승부를 펼친다.
두 팀 사이엔 사연이 많다. AT 마드리드는 100여 년의 역사에도 연고지 내에서 '2인자' 취급을 받는 아픔을 겪었다. 국내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형님' 레알 마드리드 때문이다.
AT 마드리드는 2년 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만나 1-4로 역전패 해 눈 앞에서 우승을 놓치기도 했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동네의 자랑이었다. 챔피언스리그 사상 최초 10회 우승에 빛나는 레알 마드리드는 유럽 최고의 명문으로 불린다.
◇지단 vs 시메오네
이번 대결에서 가장 주목을 모으는 건 올 시즌 부임한 초보 감독 지네딘 지단(44) 레알 마드리드 감독과 10년 차 베테랑 사령탑 디에고 시메오네(46) AT 마드리드 감독의 지략 싸움이다.
지단은 지난 1998 프랑스월드컵 우승, 2006 독일월드컵 준우승을 이끈 특급 스타 출신이다. 그는 현역 시절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뛰어난 기록을 남겼다. 2001년 당시 최고 이적료인 7500만 유로(약 990억원)를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지단은 다섯 시즌을 뛰며 UEFA 챔피언스리그와 정규 리그 우승트로피를 한 번씩 들어올렸다.
그는 지도자가 된 뒤에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현역 시절 '마에스트로(지휘자)'로 불렸던 그는 '스타 군단' 레알 마드리드를 완벽히 장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감독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팀이다.
성적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데다 스타 선수들이 즐비해 통솔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레알 마드리드는 최근 12년간 11명이 경질됐다. 라파엘 베니테스(56) 전임 감독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 카림 벤제마(29), 하메스 로드리게스(25) 등과 갈등을 빚다 팀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시메오네 감독은 스페인 축구계를 발칵 뒤집은 인물이다. 수비형 미드필더 출신인 그는 선수 시절 거친 몸싸움을 펼쳐 상대 팀 공격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화려한 플레이의 지단과 달리 궂은 일을 도맡던 시메오네는 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도자' 시메오네는 지략가로 변신하며 지단보다 먼저 이름을 알렸다. 2011년 AT 마드리드 지휘봉을 잡은 그는 '선수비 후역습 축구'를 앞세워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양분해온 프리메라리가의 새 강자로 떠올랐다.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빠른 역습 펼쳤다.
AT 마드리드는 2013~2014시즌 '티키타카(패스를 앞세운 점유율 축구)'를 주무기로 '무적'이라고 불리던 바르셀로나를 제치며 정규 리그 정상에 올랐다. AT 마드리드는 이번 대회 8강에서도 바르셀로나를 제압했다. ◇'창' 호날두 vs '방패' 고딘
레알 마드리드의 간판은 '득점기계' 호날두다. 레알 마드리드가 자랑하는 BBC(벤제마-가레스 베일-호날두) 삼격편대의 핵심인 그는 올 시즌 팀 전체 득점(110골)의 3분의 1 이상인 35골을 담당했다.
호날두에겐 '챔피언스리그의 사나이'라는 별명도 있다. 챔피언스리그 무대만 서면 리그 경기보다 더 날카로운 골 감각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 역대 최다 득점(93골) 기록 보유자다. 이번 결승에서 그가 넣는 골 하나하나가 곧 챔피언스리그의 역사가 되는 셈이다.
이에 맞서는 AT 마드리드의 에이스는 센터백 디에고 고딘(30)이다. 투지 넘치는 플레이가 전매특허인 그는 '수비의 팀' AT 마드리드 포백의 중심이다. AT 마드리드는 올 시즌 리그 최소 실점(18골) 팀이다. 2위 바르셀로나(29골)와 무려 11골 차가 날 만큼 탄탄한 수비를 펼쳤다. 고딘은 축구 지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그는 끈질긴 밀착 마크로 상대 공격수를 괴롭힌 뒤 파울을 유도하는 지능적인 플레이로 유명하다.
이들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만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고딘은 2년 전 호날두가 보는 앞에서 우승을 놓치는 아픔을 겪었다. 고딘은 이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었지만 후반 종료 직전 세르히오 라모스의 동점 헤딩골을 내줬다.
AT 마드리드 수비는 연장에서 내리 3골을 내주며 역전패 했다. 이 경기에서 호날두는 승부의 쐐기를 박는 네 번째 골을 넣으며 우승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 대회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AT 마드리드는 레알 마드리드전 12경기에서 5승5무2패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덕분에 이번 대결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챔피언스리그 첫 11회 우승을 노리는 레알 마드리드, 사상 첫 정상을 노리는 AT 마드리드. 양팀의 운명은 호날두와 고딘의 발 끝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