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박종천(56) 부천 하나은행 감독은 지난해 10월 개막전을 앞두고 열린 2015~2016시즌 미디어데이에서 노장 선수들을 가리켜 한 말이다.
그는 임영희(36)가 이끄는 춘천 우리은행 선수단의 고령화를 빗대 "할머니들은 물러날 때가 됐다"고 농담을 던졌다. 이때부터 '할머니'는 올 시즌 여자 프로농구 노장 선수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됐다.
박 감독의 바람과 달리 할머니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팀당 정규 리그 1~2경기만 남겨둔 현재 각 팀을 대표하는 노장 선수들은 올 시즌 가장 뛰어난 활약을 했다. 그들은 20대 선수들을 앞도하는 경기력은 물론이고 후배들이 쉽게 넘어서지 못할 대기록까지 작성했다.
청주 KB스타즈의 맏언니 변연하(36)가 대표적이다. 그는 경기당 평균 5.47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이 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다. 2위 이경은(KDB생명)에 평균 1.17개 앞서 있어 올 시즌 어시스트왕 등극이 확실시 된다.
또 지난달 14일 용인 삼성생명전에서 여자 프로농구 사상 두 번째로 정규 리그 3점슛 1000개의 대기록을 달성했고 사흘 뒤 인천 신한은행전에서 3점슛 1개를 추가해 박정은(39) 용인 삼성생명 코치의 기존 3점슛 기록 1000개를 넘어섰다.
특히 변연하는 위기의 순간 맏언니로서 팀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는 KB스타즈가 5위까지 떨어진 가운데서도 후배들을 독려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덕분에 KB스타즈는 지난달 29일 7연승과 플레이오프(3전2선승제) 진출 확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 변연하 선수/ KB 스타즈. 사진출처 = KB 스타즈 홈페이지 ] '할머니'의 원조격인 임영희(36)도 올 시즌 박종천 감독이 머쓱해질 만큼 펄펄 날았다. 경기당 평균 13.42득점을 올린 그는 국내 선수 중 득점 1위(전체 7위)를 달리고 있다. 임영희는 '에이스 슈터' 박혜진(26)의 부진 속에서도 슈터의 역할을 대신하며 우리은행의 정규리그 통합 4연패와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 진출을 이끌었다. 그는 정규 리그 최우수선수(MVP)로 거론되고 있다.
삼성생명의 이미선도 '할머니 돌풍'에 한몫했다. 그는 지난달 27일 하나은행과의 경기에서 여자 프로농구 역대 4번째 500경기 출전 기록을 작성했다. 포인트 가드 이미선은 날카로운 패스를 뿌리며 팀이 KB스타즈와 막판까지 3위 싸움을 하는데 기여했다.
[ 이미선 / 삼성생명 ] 농구 팬들 사이에선 "플레이오프 진출 노리는 팀이라면 '할머니' 한 분쯤 모시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며 노장들의 투혼에 박수를 보냈다.
정은순 KBSN 해설위원은 "올 시즌 노장들이 맹활약 한 이유는 간단하다. 변연하, 임영희, 이미선 등 노장 선수들이 후배들보다 더 좋은 기량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감독 입장에선 경기에 투입하고 중요한 역할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대로 말하면 선배들을 위협할 대형신인 발굴이 시급하단 뜻이다. 다음 시즌엔 실력 좋은 후배들이 활약하고 노장들은 뒤에서 밀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