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투수 유희관(28)은 올 시즌 팀의 '토종 에이스'로 확실히 거듭났다. 지난해 보여준 '가능성'은 이제 팀의 '현재' 그리고 '미래'가 됐다.
유희관은 지난해 두산 좌완 투수로는 25년 만에 두 자리 승수를 넘어섰고,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으로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빠르지 않은, 아니 느린 쪽에 속하는 구속에도 정확한 제구력과 수 싸움으로 프로야구에 '느림의 미학' 신드롬을 일으켰다.
올 시즌을 앞두고 풀타임 2년 차 징크스가 우려됐다. 그러나 기우였다. 4월에만 3승, 평균자책점 2.04를 기록하며 한국야구위원회(KBO) 선정 월간 MVP에 올랐다. 제구력은 여전했고 자신감은 커졌다. 타자를 상대하는 노련미까지 더해졌다.
그러나 상대 견제가 심해지면서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6월 들어 3연패를 했고, 7월에는 1승도 챙기지 못했다. 이제 그의 활약을 선전이 아닌 당연함으로 보는 시선 때문에 부담도 있었다.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질타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보다 피홈런도 많아졌고, 이전보다 한 번에 무너지는 일도 많아졌다.
위기를 벗어난 건 마음을 비우고 하던 대로 자신의 길을 갔기에 가능했다. 평소 긍정적인 그는 유니폼을 벗으면 잠시 야구 생각을 놓았고, 1승에 연연하지 않고 루틴을 지키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제 모습을 찾고 마침에 구단 좌완 투수 최초로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달성에 성공하며 팀 역사에 주인공이 됐다. 지난해 10승을 넘어 개인 최다인 12승을 거뒀고, 무엇보다 177⅓이닝을 소화해 토종 투수 최다이닝을 기록했다.
윤석환 베이스볼긱 위원이 유희관을 만났다. 2년 연속 좋은 모습을 보인 그와 함께 올 시즌을 돌아봤다. 팀 성적과 사령탑 교체로 생긴 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유희관은 올 시즌에 대해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고 말했다.
윤석환 베이스볼긱 위원(이하 윤)="축하해. 지난해에 이어 올 시즌도 10승 이상을 달성했어."
유희관(이하 유)="잘했는지 모르겠어요. 주위에서 잘 못했다는 말도 많이 들었거든요."
윤="말이 쉬워 '2년 연속 10승'이지 쉽지 않은 기록이야. 못했다는 말을 듣는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
유="저는 10승만 해도 감지덕지했는데요. 기대가 더 컸나 봐요."
윤="혹시 마음을 쓰고 있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나는 은근히 팀 좌완 투수 최다승인 13승을 깨길 바랐어."
유="안 그래도 위원님 기록이다 보니 항상 같이 언급되는 것 같아요."
윤="(유)희관이 덕분에 내 이름도 한 번씩 나오네그려.(웃음)"
유="어휴,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영광입니다."
윤="시즌도 끝났는데 요즘은 어떻게 훈련해?"
유="공은 아예 안 만지고 있어요. 캐치볼도 안하고요. 작년에도 캠프 때까지 공을 아예 안 만졌어요. 지금은 러닝 위주로 훈련하고 있죠."
윤="어깨에 부담이 있었어?"
유="많은 이닝을 소화했으니까 피로가 쌓일 수도 있잖아요. 저는 아예 놓는 편이에요."
윤="그럼 몇 달 정도 공을 안 던지는거야?"
유="두 달 정도죠. 12월부터 캐치볼은 시작하고요. 이후에 캠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죠."
윤="시즌이 끝났는데 아직 어깨는 싱싱하고?"
유="어디 가서 아프다고 말할 스피드는 아니잖아요.(웃음)"
윤="그래도 타자들은 네 공을 쉽게 공략 못하잖아. 실제보다 더 빠르게 느끼기도 하고."
유="상대성이 있는 것 같아요. 잘 공략하는 선수들도 많고요."
윤="김태형 감독이 부임했는데 팀 분위기는 어때?"
유="저 신인 때도 배터리 코치님으로 계셨으니까요. 워낙 팀에 대해 잘 알고 있으시죠. 당시에는 코치님이었고 지금은 감독님이시니 같을 수는 없겠죠. 아직 스타일이 파악되지는 않았어요."
윤="예전과는 달리 10승 이상 투수로 재회했으니 (유)희관이에 대한 김태형 감독의 기대도 클 것 같다. '희관아, 내년에도 네가 해줘야 한다'는 눈빛 받은 적은 없는지."
유="아직이요.(웃음) 그저 어린 시절에 위원님과 감독님이 잘 챙겨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송일수 감독님도 좋은 분이셨지만 새로운 감독님에 대한 기대도 커요. 내년 시즌에는 감독님을 잘 따르고 선수들 모두 힘을 내서 올해 못 간 가을 야구에 진출해야죠."
윤="그래 맞아. 사실 선수들은 감독이 바뀌어도 어떤 혜택이 올 거란 생각을 하면 안돼. 그저 내 역할만 해야지."
유="그렇죠. 자기 하기 나름 같아요."
윤="그래도 김태형 감독이 부임해서 마음은 편하겠어."
유="그렇긴 하지만 열심히 해서 더 잘해야죠. 예전에 함께 운동을 했다고 해서 못하는데 1군에 놓아두진 않을 테니까요."
윤="올 시즌에 지난해 두 자릿수 승리가 우연이 아님을 보여줬어. 이제 확실히 자리도 잡았다고 생각하고 말이야. 대신 더욱 냉철해야 해. 앞으로가 훨씬 중요할 것 같아"
유="올 시즌 하면서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느꼈어요. 작년에는 겁없이 등판하면 신나서 공을 던졌는데 올 시즌은 좋을 때와 안 좋을 때가 모두 있었어요. 쉬우면서도 어렵고, 어려우면서도 쉬운 것이 야구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1년이 지나면서 야구에 대해 보는 눈이 넓어진 것 같긴 해요. 올 시즌은 저한테 큰 공부가 됐죠."
윤="아까도 잠시 언급했는데 컨디션이 안 좋았을 때 주변 질타에 마음 고생도 있었나 봐?"
유="저는 지난해 갑자기 튀어나온 선수잖아요. 포스트시즌에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면서요. 기대치가 갑자기 높아진 거죠. 거기에 시즌 초반 4월에는 월간 MVP까지 받으면서 '2년 차 징크스'는 없다는 말도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부진해지니까 실망을 하신 것 같아요."
윤="힘들 때 극복 방법이 따로 있어? 혼자 했어. 아니면 동료나 코칭스태프에 도움을 구하는 편이야?"
유="원래 긍정적인 편이기 때문에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해요. 안 좋을 때마다 루틴에 변화를 주면 멘틀에서부터 지고 들어간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하던 대로 하려 했어요. 1실점에도 승리투수가 못되기도 하고, 8실점에도 승리 투수가 되더라고요.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했죠."
윤="그래도 다른 사람한테 풀고 나면 속이 후련한 편이잖아."
유="코치님들이나 홍성흔 선배님과 많은 이야기를 하죠.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들을 때는 너무 고맙고 이해도 됐지만 시합까지 그 마음이 이어지기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평소대로 했던 것 같아요."
윤="그럼 정작 본인은 올 시즌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한데?"
유="항상 인터뷰에서 해왔던 말이에요. 스프링캠프 때부터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는 것이 올 시즌 목표였거든요. 개막전 로테이션에 나선 선발 투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 번도 거르지 않았어요. 그런 부분에선 만족을 하죠."
윤="대단히 눈에 띄는 성적이 있어. 올 시즌 177⅓이닝을 소화했어. 거의 용병 수준인데?"
유="토종 투수 중에서 최다 이닝이라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저도 자부심을 많이 느껴요. 개인적으로 목표도 이뤘고 따라온 성적도 나쁘지 않았죠. 다만 팀 성적이 안 좋아서 만족에 대해서 쉽게 말씀드리기 힘들었죠."
윤="시즌이 끝나고 성취감도 있었겠다."
유="우선 시즌 내내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고자 했던 목표를 이뤘으니까요. 토종 최다 이닝도 의미가 있고요. 그런데 잘하면 잘할수록 부담감도 있어요.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기대치와 저 나름의 욕심이 있기 생기기 때문에 내년에는 더 준비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윤="미리 예약해놓을게. 10승 하는 날 나랑 인터뷰하는 걸로 말이야."
유="네 알겠습니다.(웃음)"
정리=안희수 기자 (유희관의 인터뷰 전문은 야구 전문 모바일 앱 '베이스볼긱'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