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월드컵 전지훈련지 마이애미 출국까지 24시간도 남지 않았던 29일 오전. 대한축구협회는 "김진수(21·니가타) 대신 박주호(27·마인츠)를 대체 발탁했다"고 발표했다. '악바리 꼬마' 김진수의 월드컵 출전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일 거에요". 대표팀 김신욱(26·울산)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아끼는 후배를 잘 위로해 달라고 부탁했다.
지난해 7월 A매치 데뷔전을 치른 김진수는 대표팀 왼쪽 풀백을 꿰차 '이영표의 후계자'라 불렸다. 브라질 월드컵 최종엔트리에도 포함됐다. 하지만 김진수는 지난 6일 소속팀 경기 도중 오른 발목을 다쳤다. 지난 21일 뒤늦게 대표팀에 합류한 김진수는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3층 의무실에서 러닝머신을 타고 동료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지만 28일 정밀 검사 결과 세 부분의 인대가 손상됐는데 그 중 하나가 아물지 않았고, 월드컵 본선까지 회복 불가능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김진수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악바리처럼 축구만 바라보며 자랐다. 지난달 일본 니가타에서 만난 김진수는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시장을 가기 위해 아버지가 운전하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다 타고 갔던 기억이 있다. 집이 많이 어려웠다"고 했다.
김진수의 아버지는 오토바이 택배 등 안해 본 일이 없었다. 농구선수 출신 어머니는 새벽일을 다녔다. 김진수는 "학창 시절 친구들이 한창 멋을 부릴 때도 청바지가 없었다. 트레이닝복과 교복만 입고 다녔다. 축구부 회비(100만원)가 면제되는 장학생이 되기 위해 매일 홀로 새벽운동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숙소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며 가족들을 위해 축구로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회상했다.
김진수는 "박주영(29·아스널) 형처럼 주차장에서 드리블 연습과 공으로 캔을 맞추는 훈련을 했다. 어깨를 다쳤을 때는 빨리 회복하려고 장거리 스로인을 연마했는데, 지금은 사이드라인에서 페널티킥 지점까지 던질 수 있다"며 웃었다.
김진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2009년 나이지리아 17세 이하 월드컵에서 주장을 맡아 손흥민(22·레버쿠젠)과 함께 8강행을 이끌었다. 2011년 콜롬비아 20세 이하 월드컵에서는 스페인과 16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석패했다.
김진수는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이영표의 후계자'를 꿈꿨다. "지난 1월 미국 전지훈련 때 롤 모델 이영표(37·KBS 해설위원) 선배를 만났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고 말했다. 이영표는 김진수에게 "유럽에 진출해 세계적인 선수가 되려면 양발을 잘 써야 한다"고 조언해줬다.
김진수는 지난달 기자와 만나 "브라질 월드컵 개막일(6월 13일)이 내 생일이다. 세계 무대에서 영표 선배처럼 기복없이 꾸준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수는 지난해 브라질과 평가전에서 '거구' 헐크(1m80cm·85kg·제니트)와 몸싸움을 하다 나가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후 힘을 키우는 데도 시간과 공을 들였다. 그렇게 월드컵을 준비해 왔지만 부상이란 불운에 울었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 직전 주전이 부상을 당하는 '잔혹사'가 있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직전 황선홍(46), 2006년 독일 월드컵 직전 이동국(35·전북),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는 곽태휘(33 알힐랄)가 부상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이들 모두 다시 일어났다. 김진수의 월드컵도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김진수의 빈 자리를 메우게 될 박주호는 지난 시즌 축구전문지 키커 선정 베스트11에 2차례 선정되는 등 맹활약해 팀의 유로파리그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지난 8일 최종명단 발표 당시 봉와직염이 아물지 않아 예비명단 7명에 포함됐고, 모교 숭실대에서 꾸준히 재활을 해왔다. 송준섭 대표팀 주치의는 "박주호는 현재 축구화를 신고 공을 다룰 정도로 회복됐다. 러닝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송 박사는 "전날 튀니지와 평가전에서 부상을 입은 홍정호(25·아우크스부르크)는 1주일 후면 운동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