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방망이가 폭발한다. 투수는 죽을 맛이다. 외국인 타자의 등장으로 타고투저가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기는 했지만 현재 프로야구는 그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투타 사이의 균형이 무너졌다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한쪽으로 기울었다.
◇10점 이상 다득점 경기 속출
최근 프로야구에선 점수가 쏟아지고 있다. 5월 들어 하루(3일)를 제외하고 모두 10점 이상 경기가 나왔다. 6일 부산 사직구장의 롯데-두산전은 올 시즌 양팀 합계 최다 득점 기록(19-10 롯데 승)을 새로 쓰기도 했다. 올 시즌 한 팀이 10점 넘게 뽑은 경기는 전체의 22.2%(126경기 중 28경기)로 5경기마다 1경기꼴로 나오고 있다. 한 팀이 20점 이상 낸 경기도 두 번 있었다.
이런 극심한 타고투저는 외국인 타자가 이끈 측면이 있다. 9개 구단 외국인 타자는 6일 현재 48홈런을 합작하고 있다. 리그 총 홈런(219개)의 22%에 해당한다. 롯데 히메네스가 타율 0.395를 치는 등 외국인 타자 대부분이 3할을 넘기며 맹활약 중이다. 투수가 힘들어진 것은 당연하다.
◇툭 하면 선발 조기 강판
그러나 유행처럼 번진 대량 득점을 외국인 타자만으로 다 설명할 순 없다. 투수와 벤치에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하일성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불펜 야구'를 원인으로 봤다. 그는 "시즌 초반 30경기에서 밀리면 못 따라간다는 것이 각 팀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보니 선발투수를 빨리 내린다. 몇 점 주면 바로 불펜으로 넘어가 그 후유증이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 시즌 평균 6이닝 이상 던지는 선발 투수는 총 13명에 불과하다. 9개 구단의 에이스 1명씩을 빼면 평균 5회를 넘기지 힘들다는 얘기다. 완투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선발이 일찍 내려간 짐은 고스란히 불펜에 돌아가고, 구원 투수는 잦은 등판으로 점점 지친다. 대량 실점 경기는 선발이 무너진 뒤 불펜이 난타당해 발생하곤 한다.
하일성 위원은 "NC나 삼성을 보면 어떻게든 선발을 길게 끌고 간다. 이기든 지든 대량 실점을 안 하는 편이다"고 했다. NC는 이재학과 찰리, 웨버 등 선발 투수 3명이 평균 6이닝 이상을 던지고 있다. 불펜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도 팀 평균자책점 1위(3.97)를 달리고 있다. 삼성 선발 투수는 25경기 중 19경기에서 6회에 마운드에 올랐다. 선발 투수의 평균자책점이 4.81로 썩 잘 던지진 않았지만 류중일 삼성 감독은 일찍 교체하지 않았다. 삼성은 평균자책점 2위(4.11)에 올라 있다. 하 위원은 "1승을 욕심 내다 보면 투수를 막 쓰게 된다. 점수를 많이 주는 팀은 정해져 있다"고 했다.
◇약해진 불펜이 대량 실점
각 팀 불펜의 얇은 선수층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구단의 투수코치는 "경기가 넘어갔다 싶으면 패전처리 투수를 기용하는데 이런 추격조는 필승조와 기량 차가 있다. 상대 베스트 라인업을 못 이긴다"며 "잘 하는 투수와 그 아래 투수의 격차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6일 롯데-두산의 경기가 그랬다. 선발 홍상삼이 1회를 못 버티고 6실점으로 무너진 두산은 뒤에 나온 투수들이 13점을 더 내줬다. 롯데도 두산의 끈질긴 추격을 받았다. 정대현과 이명우, 김승회를 투입하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프로야구는 지난해 NC의 1군리그 참가로 구단마다 전력 손실이 불가피했다. 그 중 가장 약해진 부분이 불펜이다. 선발은 외국인 투수로 보강하지만 불펜은 마무리 어센시오를 뽑은 KIA를 제외하고 국내 선수로만 구성하기에 예전보다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과 NC, 넥센을 뺀 6개 구단은 불펜 평균자책점이 5점을 넘는다.
결국 불펜 투수의 경쟁력이 처지는데 선발 투수가 빨리 교체돼 자주 나와야 하니 대량 실점이 잦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타고투저 시대의 경쟁력은 투수와 수비에 있는데도 지나치게 불펜에 의존하는 경향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뒤진 경기에서 불펜 싸움을 벌이는 건 효과가 미미하다. 올해 7회까지 지고 있는 경기를 역전한 확률은 11%(110경기 중 12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하일성 위원은 "이대로 가면 타고투저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지고 있더라도 선발을 오래 끌고 가고, 이기는 경기와 지는 경기를 잘 구분해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