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헌(56) 제5기 한국e스포츠협회장은 역대 어느 회장보다 열정적이다. 민주당 원내대표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쁠텐데도 지난해 1월 24일 공식 취임 이후 주요 e스포츠 현장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또 e스포츠팬들 및 관계자들과 한 약속들을 잊지 않고 지키고 있다. 지난해 한국팀이 세계적인 e스포츠대회인 ‘리그 오브 레전드(롤) 월드 챔피언십’, 일명 '롤드컵'에서 우승하면 코스프레를 하겠다는 약속 이행이 대표적이다. 전 회장의 이같은 열정적인 행보는 침체된 한국e스포츠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해체되던 프로게임단에 대기업의 후원이 들어오고, 게임회사가 직접 e스포츠 전용 경기장을 만들고, 게임채널도 새롭게 생겨났다. 한국e스포츠가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전 회장을 설날 직전인 지난달 27일 여의도 국회에서 만났다.
-회장 취임 1년이 됐다. 무척 즐겁게 일을 하는 것 같다.
“어떤 프로스포츠 경기장보다 젊고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현장이 바로 e스포츠 경기장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의 팬들이 원기옥(만화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에너지를 모으는 기술)으로 기를 보내주는 것 같다. 큰 힘을 받으니 즐겁지 않을 수 있겠나.”
-1년 간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진에어 그린윙스의 탄생으로 8번째 게임단 문제가 해결됐고, 네이버에 e스포츠 페이지가 신설돼 포털에서 다른 스포츠와 동등하게 e스포츠가 다뤄지고 있다. ‘롤드컵’의 한국 유치를 이루는 등 e스포츠 팬들과 한 약속을 이뤄나갈 수 있어서 큰 보람을 느낀다. 그 중에서도 ‘그라가스(롤에 등장하는 캐릭터) 코스프레’를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일생에 그런 분장을 해본 적이 처음이고 협회장으로서 팬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은 것부터 실천했다는 점에서 스스로도 즐겁고 재미 있었다.”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회장으로 추대될 때만 해도 한국e스포츠의 위기라는 말이 많았다. 주변의 평가도 그렇고, 당시 e스포츠의 위기를 다룬 기사들도 많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역할을 한 것은 프로게임단 ‘진에어 그린윙스’의 탄생이다. 자본이 떠나는 위기에서 자본이 투입되는 기회로 바뀌는 계기가 된 진에어 그린윙스의 탄생을 위해 노력한 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 발전하는 e스포츠’, ‘스포츠 가맹단체 현실화’, ‘대중 스포츠화’, ‘협회 재정의 내실화’ 등 4대 비전을 제시했다.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보나.
“네이버 e스포츠 페이지 신설, 다양한 리그 신설, 방 송사 확대, 정부 예산 확대 등으로 ‘함께 발전하는 e스포츠’는 어느 정도 성과를 냈고, 협회 재정의 내실화도 이뤄졌다. 올해 국제e스포츠연맹의 스포츠어코드(국제 스포츠 의사결정 회의) 준가맹, 한국e스포츠협회의 대한체육회 준가맹을 이뤄낸다면 취임식에서 약속한 4대 비전을 모두 이루게 된다.”
-아쉬운 점은.
“e스포츠에서는 종목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에 대한 과도한 제도권의 공격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특히 게임을 마약과 동일시하는 내용의 법률안에 대해 사회적 논란이 많았는데, 매우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협회는 올해 가족 e스포츠대회로 게임이 가족 간 소통의 새로운 매개체가 되고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게임의 긍정적 이미지 확산에 힘을 실을 계획이다.”
-1년 간 활동을 점수로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90점은 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점수는 팬들의 몫이다.”
-요즘 e스포츠가 중흥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다.
“‘e스포츠 세일즈’에 힘을 기울인 덕분이다. 삼성에 롤 게임단을, 네이버에 e스포츠 페이지 신설을, 대한항공에 8게임단 인수를 요청했다. 스포TV와 넥슨도 마찬가지로 협회에서 여러 차례 투자를 요청했다. 특히 넥슨은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회사로서 그동안 e스포츠와 한국 게임회사들이 찾지 못한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여러 차례 투자를 요청했다. 다행히 넥슨이 협회의 의견을 잘 수렴해줬고, 한국e스포츠와 한국 게임회사가 e스포츠 전용 경기장인 ‘넥슨 아레나’라는 접점을 찾았다.”
-오는 9월 개최되는 롤드컵의 한국 유치에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안다.
“처음 유치 약속한 것이 지난해 ‘롤챔스 스프링’ 결승이었는데, 당시 더스틴 백 라이엇게임즈(롤 개발사) 부사장이 현장에 있었다. 더스틴 부사장은 ‘롤드컵 유치’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였고 따로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자고 먼저 제안해왔다. 그 때 한국 유치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롤드컵 일정이 인천아시아대회와 일부 겹칠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국에서 e스포츠의 위상이나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롤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로 보여주고 싶다. 아시아대회와도 충분히 겨뤄 볼만하다고 본다.”
-아직도 e스포츠는 게임 마니아들만을 위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롤드컵이 크게 성공한다면 e스포츠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과거 2000년대 중반 부산 광안리의 10만 관중 성공이 이뤄낸 대중화를 올해 롤드컵 결승에서 재현해 내겠다.”
-e스포츠의 정식 체육종목화는 어떻게 되고 있나.
“스포츠어코드와 대한체육회의 가맹단체가 돼야 한다. 정식체육단체로 인정받아야 해당 종목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과 같은 IOC 공식대회의 정식종목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올해 국제e스포츠연맹의 스포츠어코드 가맹심사와 한국e스포츠협회의 대한체육회 가맹심사가 가장 큰 현안이다. 스포츠어코드의 경우 마리우스 비저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4월 총회 현장에 부스를 설치, 세계 유수의 정식 스포츠 단체들과 활발히 커뮤니케이션을 할 계획이다. 올해 준가맹, 내년에 정가맹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e스포츠 활동에 대해 당이나 지역 유권자들이 싫어하지 않나.
“e스포츠의 주요한 일정이 주로 토요일에 진행된다. 토요일은 일주일 중 유일한 정치 휴식일이다. 정치활동과 e스포츠 활동이 겹치지 않아 e스포츠 행사가 정치활동이나 지역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리고 지난 달 롤챔스 결승전 현장을 찾은 어린이집 원장님들과 보육정책 관련 짧은 차담회를 가졌다. 다양한 분들과의 접촉면을 확대하는데 e스포츠 현장이 도움이 된다.”
-e스포츠 팬들과 관계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프로리그(스타크래프트2 단체전) 시작 전에 PGR21(e스포츠 커뮤니티 사이트)에 ‘프로리그를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아무리 협회와 방송사, 게임단이 좋은 리그를 만든다고 해도 팬들의 관심이 없다면 그 리그는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 앞으로 펼쳐질 많은 리그들을 팬들께서 즐겁고, 재미있게 즐겨주신다면 관계자들 역시 힘든 줄 모르고 더 좋은 리그 만들기 위해 협회와 함께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