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산더미고, 하고 싶은 일도 셀 수 없다. 먼저 인도네시아의 국민적 스타로 떠오른 아들 이루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1년에만 수차례 인도네시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지난 연말에는 직접 윈터 스페셜 싱글 '하얀눈'을 발표했다. 엑소·2NE1 등 새까만 후배들과 지상파 가요 순위프로그램을 누볐다.
대한가수협회장이자 트로트계의 맏형으로서의 책임감도 크다. 최근 Mnet에서 제작한 트로트 오디션 '트로트 X'에 코치로 출연을 결정했다. 트로트 부활을 이끌겠다는 야심이 대단하다. 제작자 태진아의 역할도 크다. 자신은 물론 이루·성진우·마야·휘성·마이티마우스가 소속된 진아엔터테인머트를 이끌고 있다.
이 정도면 더 이룰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이젠 두둥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을 만끽할 만도 하다. 하지만 태진아의 도전은 끝이 보이지 않는 태평양이다. 갑오년 소망을 물으니 또 다시 엉뚱한 답이 돌아온다. "이젠 연기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최근 태진아를 이태원에 위치한 진아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날도 태진아는 인도네시아 대사관으로부터 양국간 문화 교류에 힘쓴 공로로 감사패를 수여했다. '60대 소년' 태진아에게 24시간은 부족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한국 문화를 인도네시아에 알리고, 인도네시아를 한국에 알린 공로로 대사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이루가 인도네시아에서 돈만 벌어오는 가수는 아니다. 인도네시아에 가면 꼭 고아원이라던가 양로원에 들른다. 지난해에는 안산 상록수 체육관에서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을 초청해 공연을 했다. 또 인도네시아에 있는 근로자 부모님들을 초청해서 무대에서 깜짝 만남을 가질수 있도록 했다. 그 자리에서는 이루가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대사상과 훈장을 탔다. 대사가 ‘나라가 생긴 이후 해외 가수 부자가 인도네시아 감사패를 수상한건 처음’이라고 하더라."
-아들이 굉장히 자랑스럽겠다.
"물론이다. 한 번은 인도네시아에서 이루의 인기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콘서트를 열기 전에 게릴라 콘서트를 하기로 했다. 그 때 2만 명 가까이 모인 거다. 그 다음에 신이 나서 상암월드컵경기장 정도 되는 규모의 운동장 공연을 진행했다. 그 때 무려 2만2000명의 팬들이 왔다. 전석 매진이었다. 황홀하더라."
-이루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지 3년째다. 뒷바라지 하면서 힘들지는 않았나.
"인도네시아 팬들은 내가 이루 매니저인줄 안다. 한 번은 이루가 콘서트에서 '한국에서 가수로 유명한 우리 아버지'라고 날 소개하더라. 그래서 이제 겨우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난 중요하지 않다. 그래도 힘든줄 모르고 일한다. 매일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다."
-지난해 진아엔터테인먼트 빌딩을 세웠다.
"내 꿈이었다. 가수는 누구나 다 자기만의 녹음실이 필요하다. 내 컨디션 좋을 때 아무 때나 녹음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꿈인데 그걸 이룬거다. 더 이상 욕심도 없다. 내가 제일 처음 녹음실을 사용했는데 상쾌하고 뿌듯했다. 팬 여러분들이 날 사랑해줘 여기까지 왔다. 그 마음이 감사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팬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제작자로서도 승승장구 중이다.
"누가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난 가수라고 한다. 제작을 하게 된 동기는 실력있고 재능이 많은데 뭔가 뒷받침이 부족해 스타로 성장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돕고 싶어서였다. 내가 팬들한테 받은 사랑을 되돌려드린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잘 풀렸고, 이젠 내 사업이 된 거다."
-최근에 JTBC '히든싱어'에서도 모창능력자를 소속가수로 캐스팅했다.
"김진호라는 참가자인데 '프로 가수로 데뷔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내가 음반을 내주겠다'고 했다. 비록 휘성의 노래를 모창했지만 가수로서 활동할 수 있는 재능이 아주 많은 친구였다. 지난해 10월 초 쯤에 연락이 왔다. 휘성이도 써놓은 곡을 주겠다고 하더라. 빠르면 4월쯤이면 그 친구 음반을 들을 수 있을 거다."
-태진아의 신곡을 기다리는 팬들도 많을 텐데.
"지난해는 유독 이루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서 바빴다. 연말에 스페셜 싱글을 발표하기도 빠듯했다. 올해는 제대로 해볼 생각이다. 김진호의 앨범이 나오고 며칠 사이로 내 앨범도 나올 것 같다. 3월 달이나 4월달 쯤으로 예상한다."
-최근 설문 조사에서 ‘아내 덕본 스타’ 1위에 뽑혔다.
"맞는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아내 이름을 노래로 부르면서 먹고사는 가수는 내가 처음일 거다. 미국에서 처음 만나 많이 힘들었다. 지인들에게 돈 조금씩 빌려서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행상을 했다. 보자기 하나 깔아놓고 겨울에는 장갑, 목도리, 모자를 팔고 여름에는 선글라스, 만년필, 라이터를 팔았다. 불법이라 순경이 오면 도망갔다. 그 때 아내가 같이 살아준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 한국에는 88년에 왔고 '옥경이'는 89년도에 녹음했다. 원래 제목은 '고향여자'였다. 나훈아 선배가 먼저 부른 노랜데, 발표까지는 안했다고 하더라. 그데 제목이 영 느낌이 안오는 거다. 그래서 내가 ‘옥경이’로 바꿨다. 맨 마지막 가사도 '고개 숙여 울던 너'에서 '고개숙인 옥경이'로 바꿨다. 아내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노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불렀다. 이게 대박이 터진거다. LP판 시대인데 한 150만장 정도 팔았다. 아내 덕을 봐도 심하게 많이 봤다."
-아직도 아내와 굉장히 애틋하더라.
"아직도 존대를 한다. 반말이 없다. 내가 마누라를 위해주지 않고 무시하면 남들도 무시한다. 내가 보석같이 생각하면 주위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중전마마로 모시고 살면 나는 왕이 되는 거다."
-아내는 일을 쉬엄쉬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을 것 같다.
"나는 1년이면 260일은 지방이나 해외에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보니 아내에게 어디 여행 한 번 가자는 말을 못해봤다. 이젠 여유가 생길까 했더니, 이루가 가수가 되서 한 집안에 가수가 두 명이다. 둘이 여행을 가고 싶다가도, 이루가 걸리고 그런다. 그래도 최근에 '여보 이제 시간을 내서 우리 여행도 가고 그라자'고 했다. 아내는 '말로만요'라고 핀잔을 주더라."
-여전히 에너지가 넘친다.
"옛날 같으면 '소맥' 폭탄주 20~30잔을 먹어도 그 다음날 아침에 해장국 한 그릇이면 거뜬했다. 지금은 10잔만 먹어도 다음날 하루종일 체력적으로 힘들다. 그래도 이 정도면 감사하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거다. 특별한 관리는 없다. 그냥 음식을 소량으로 먹고 야채, 과일, 물을 많이 섭취한다. 제일 중요한건 긍정적인 마인드다.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는 내 머릿속에 스트레스를 하나도 남겨놓지 않는다."
-올 한해도 굉장히 바쁘게 보낼 것 같다.
"인도네시아에 간다. 이루의 콘서트 계약건이 있고 방송 프로모션 계약도 있다. 또 현지 방송 출연 스케줄도 조절해야 한다. 이루가 자체 브랜드도 만들었다. 2월 말에는 현지 백화점에 1호점이 오픈한다. 오토바이 헬멧, 가방, 옷 등 품목이 다양하다. 정말 정신이 없다."
-연예인 태진아로서 남은 소원이 있다면.
"두 가지다. 하나는 트로트의 부활이다. 그래서 '트로트 X'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전국에 무명으로 살아가는 우리 트로트 가수 후배들이 너무 많다. 그 후배들이 진심으로 도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유행은 주기적이다. 최근에 KBS '가요무대' 시청률이 10%가 넘었다고 한다. 트로트의 시대가 다시 오고 있는 거다. 다른 한 가지는 연기다. 도전해보고 싶다. 17살에 오지명 선배와 '쌍태양'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껌팔이로 출연했는데 한 일주일을 밤새우면서 찍었다. 그 영화가 개봉하는 날 버스 대절해서 부모님, 동네 어르신들을 다 모시고 왔다. 근데 '껌 사세요'라고 목소리와 함께 딱 한 컷 나온거다. 실망이 컸다. 그 땐 '영화가 날 버렸다, 난 가요계로 가자'라고 생각했다. 근데도 두고두고 후회다. 올해에는 기회가 온다면, 꼭 연기를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