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2관왕 이정수(24·고양시청)가 또한번의 큰 도전을 앞두고 있다. 쇼트트랙이 아닌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다.
이정수는 23일부터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릴 2013-2014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대회 파견 선발전 및 제48회 전국남녀 종목별 선수권대회에서 남자 1500, 5000m 등 두 종목 출전을 신청했다. 불과 6개월 전까지 쇼트트랙 선수로 이름을 알렸던 그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새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원래 이정수는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빙상과 첫 인연을 맺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방학특강을 통해 스피드 스케이팅을 접했고, 실제로 2년 가까이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전국대회에서 500m 우승도 했던 실력파였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쇼트트랙으로 전향해야 했다. 그는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신고 뛰는 클랩 스케이트(날 뒷쪽이 분리되는 특징)를 그렇게 신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못 신고 전향해 아쉬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정수가 11년만에 스피드 스케이팅에 도전하게 된 것은 새로운 목표 의식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4월 열린 쇼트트랙 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7위로 대표팀 발탁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미 그는 이전부터 스피드 스케이팅에 도전할 마음을 갖고 있었다. "만약에 안 됐을 경우를 대비해 쇼트트랙 선발전을 하기 전부터 전향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표 선발에 실패하고나서 오히려 '아, 잘 됐다'고 생각해 바로 실행에 옮겼다"고 했다. 새로운 목표 의식은 올림픽 최초 빙상 2개 종목 메달 획득이었다. 이승훈, 샤니 데이비스 등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을 함께 뛴 선수들은 있었지만 올림픽에서 두 종목 모두 메달을 따낸 것은 물론 대표 선수로 출전한 사례는 아직 단 한번도 없었다. 이정수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래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6월부터 본격적인 스케이팅 훈련을 진행한 이정수는 모교인 단국대 빙상부의 도움을 받아 기량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2000년대 남자 중장거리 간판으로 1만m를 무려 40차례나 탄 경력이 있는 최근원(31) 단국대 코치가 이정수의 멘토였다. 최 코치는 자신의 노하우를 이정수에게 전수하기 위해 세심한 지도를 이어왔다. 이정수는 지난 8월 캐나다 전지훈련에도 따라가는 열정도 보였다. 그 결과 단기간에 기록을 끌어올렸다. 오용석 단국대 감독은 "처음 탈 때보다는 확실히 올라왔다. 최상의 컨디션에 빙질만 좋다면 충분히 대표팀 발탁을 노려볼 만 하다"고 말했다.
이정수는 5000m에서 이승훈(25·대한항공)과 경쟁해야 한다. 이승훈은 이정수와 똑같이 쇼트트랙 대표로 활약하다 2009년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해 1만m 금메달, 5000m 은메달을 따냈다. 이정수는 "솔직히 승훈이형을 이기기는 힘들 것이다. 승훈이형이 커리어도 많고 나는 아직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며 겸손해했다. 대신 이정수는 중거리 종목인 1500m에 남다른 기대감을 전했다. 그는 쇼트트랙 1500m에서는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그는 "같은 거리지만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은 확실히 다르다. 강약 조절이 가능한 쇼트트랙과 달리 스피드 스케이팅은 초반부터 80-90%의 힘을 써야 해서 많이 힘들다"면서도 "1500m에 대한 욕심이 많다. 전지훈련에서 대표 선수들을 이겨본 경험도 있는 만큼 자신감을 갖고 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올림픽 출전을 1차 목표로 삼은 이정수는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정상권까지 올라간 뒤에 다시 쇼트트랙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정수는 "아직 쇼트트랙에서 올림픽 2관왕밖에 못하지 않았느냐.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도 못 해봤다. 쇼트트랙에서 정상을 찍었어도 그런 느낌을 제대로 못 받고 내리막길을 걸었다"며 쇼트트랙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선보이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어느정도 정상권에 올라간 뒤에 쇼트트랙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쇼트트랙 복귀에 '스피드 스케이팅 정상권 등극'이라는 단서를 스스로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