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예능PD의 시대다. 봉준호·박찬욱·김기덕 등 '감독 브랜드'가 중요한 영화처럼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믿고 보는'스타PD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여운혁(JTBC '썰전')·나영석(tvN '꽃보다 할배')·김태호(MBC '무한도전') 등이 이시대 대표 스타 예능PD들이다. '쌀집아저씨'로 불렸던 MBC 김영희 PD는 스타예능PD의 원조격이다.
예능프로그램를 즐기는 시청자들은 웬만한 연예인보다 스타 PD에게 관심을 보내고, 이들이 연출한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우선 '틀고 보자'며 브랜드 파워에 힘을 싣고 있다. 연출자의 브랜드가 중요한 이른바 '작가주의 예능'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설정·연기 등 인위적인 설정을 최소화하고 출연진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지켜보는 '관찰형' 예능이 득세하면서 이런 경향은 심화되고 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요새 예능 PD들은 프로그램의 제작 후반부에 긴 편집 과정을 통해 개입한다. 엄청난 분량을 촬영한 다음, PD가 그 분량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성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시청자들은 PD가 어떤 자막과 배경음악을 쓰고, 스토리를 어떻게 배치하는가를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시대 작가주의 예능PD의 대표브랜드 여운혁·나영석·김태호의 대표작, 그리고 연출 장단점 등을 파헤쳤다.
▶여운혁
-입사: 1993년 MBC 공채 프로듀서 →2011년 JTBC로 이적
-대표작 : MBC '남자셋 여자셋(96~99)'·MBC '강호동의 천생연분(02~03)'·MBC '느낌표(04~07)'·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09)'·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라디오스타(06~12)'·JTBC '닥터의 승부(11~)'·JTBC '신화방송(12~13)'·JTBC '썰전(13~)'
-함께한 스타들 :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경규 등/ '느낌표'-김용만·유재석·박수홍 등 / '황금어장'-강호동·윤종신·김구라·김국진 등 / '닥터의승부'-이휘재·정형돈 등/ '썰전'-김구라 등
-장점 : 스튜디오형 토크쇼에 강하다. '무릎팍도사'와 '라디오스타', '썰전' 등 특별한 장치나 소품 없이 출연진의 입담을 강조한 토크쇼를 통해 이름을 알린 케이스다. MC·게스트 섭외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썰전' 김수아 PD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재료를 잘 골라내는 스타일이다. 어떤 연예인을 섭외하면 좋을지 선별해내는 능력이 대단하다"며 "연기자를 섭외할 때 무조건 요청하고 설득하는 게 아니라 이 프로그램을 안 하면 후회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특유의 화법에 연기자들도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고 밝혔다.
-단점 : 한 프로그램을 여러가지 작은 코너로 나눈다 게 특징. '황금어장'·'썰전' 등 처음부터 두 개 이상의 코너로 이뤄진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천생연분'·'신화방송 등에서도 세분화된 연출력을 선보였다. 다양한 미션과 구성을 넣어 다양한 재미를 추구했던 것. 하지만 이런 요소들 때문에 프로그램이 종종 산만해보인다. 여운혁 CP는 "연출할 때 분주한 편이다. 프로그램 속에서 이것저것 일을 많이 벌이다가 다 주워담지 못 할 때도 있다. 신입때부터 목소리를 많이 냈는데 그럴 때 마다 내 아이디어를 반대하거나 눌러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자신의 단점을 설명했다.
-장점: 사소한 소재도 예능감있게 풀어내는 스토리텔링 능력과 남녀노소를 만족시키는 보편적인 감각이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은 "나PD는 굉장히 소소한 사건사고를 가지고도 나름의 스토리를 붙여 재미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오버'를 하지 않고도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잡힌다"고 말했다. 정덕현은 "나PD의 최고 장점은 마니아적인 소재도 보편적인 정서로 풀어내는 것이다. 그가 맡은 프로그램들이 모두 폭넓은 시청자층을 확보하는 이유"라며 "특히 요즘처럼 지상파와 비지상파의 시청자층이 확연히 나눠지는 시대에, 이렇게 신구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이라고 전했다.
-단점: 소소한 소재를 가지고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다 보니, 자칫 '과대포장'식 편집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 하재근은 "포장 능력이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다. 등장인물들 사이에 별 일이 없었는데도, 마치 큰 갈등이나 싸움이 있었다는 식으로 내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나영석PD는 본인의 단점에 대해 "요새는 시청자분들이 저의 스토리텔링 스타일을 좋아해 주시지만, 이후 서바이벌 오디션 등으로 트렌드가 바뀌었을 때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걱정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김태호
-입사: 2002년 MBC 공채 프로듀서
-대표작 : MBC '논스톱4(03~04)'·MBC '무한도전(06~)'
-함께한 스타들 : '논스톱4'-한예슬·현빈·봉태규 등/ '무한도전'-유재석·박명수·정준하·정형돈·하하·노홍철·길·전진 등
-장점 :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이 최대 장점. 김태호 PD의 선배인 MBC 김민식 PD는 "용기와 끈기가 대단한 PD다. 매주 알찬 기획력과 새로운 아이템을 선보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포맷을 7년째 끌고나가는 용기가 대단하다. 또 그 용기를 뒷받침해준 끈기에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사측 입장에서는 '무한도전'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케이블채널에도 판매하기 쉬운 포맷이다. 매주 다른 에피소드를 보여주기 때문에 한 편씩 따로 판매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단점 : 한 프로그램을 너무 오래한 게 흠. 보통 1~2년 주기로 담당 PD를 교체하지만 김태호 PD는 2006년부터 '무한도전'만 맡고 있다. MBC 예능국 관계자는 "프로그램을 바꾸는 시기를 이미 놓쳤다. 이젠 후임 PD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며 "한 프로그램에 오랫동안 묶여있다 보면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쳐서 개인적으로 더 큰 성장과 발전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사회적 책임'에 지나치게 얽매여 때로는 무거운 예능을 생산하기도 한다. 자막이나 아이템을 통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을 긁어주는 역할을 하다보니, 정작 예능의 주된 기능인 '웃음'을 종종 놓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