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종 주연의 영화 '철가방 우수씨'는 연출자 윤학렬 감독의 '사명감' 때문에 세상에 나올수 있었다. 중화요리집 배달원으로 일하며 70만원대 월급으로 나눔을 실천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김우수씨의 삶을 좀 더 자세하게 알리고 또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다. 이번엔 감동을 주는 '착한 영화'를 만들었지만 사실 윤감독의 주특기는 코미디다. 1991년 신춘문예 당선 이후 'LA아리랑'과 '오박사네 사람들' 등 '1세대 시트콤' 작업에 참여했고 충무로에 들어와서도 상업영화에만 손을 댔던 베테랑 작가다. 윤감독은 "개봉을 생각하고 시작한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게 돼 감사할 따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김우수씨가 돌아가시고 난 후 언론보도를 통해 그 분의 인생을 처음 알게 됐다. 어떻게 이런 분이 다 계실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우수씨처럼 나눔을 실천한 분들을 더 많이 알려야하지 않을까하는 사명감이 생기기도 했다."
-우수씨의 삶은 어떻게 취재했나.
"우수씨가 살던 고시원과 일하던 중화요리집을 직접 찾아가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영화에 등장한 것처럼 주택을 개조해 만든 고시원이었는데 들어가보니 영화표가 잔뜩 쌓여있고 여수로 가는 차표도 있더라. 자전거도 한 대 있었다. 지인들을 취재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조사를 했고 거기에 약간의 상상력을 가미해 시나리오를 썼다."
-영화 속에 등장한 우수씨의 인생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어머니를 찾기위해 여수로 가는 시퀀스라든가 여성과의 로맨스 등 몇 가지 부분만 제외하면 거의 실제 있었던 일들로 꾸몄다. 등장인물중 룸살롱 여성과 중화요리집 동료 등은 가공인물이다. 영화적인 설정을 위해 어쩔수없는 선택이었다."
-극중 우수씨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을 보러가는 장면이 나온다.
"교통사고가 나 돌아가시던 날 그 영화를 보러 간 것으로 설정했는데 그건 영화적 상상력을 도입한거다. 하지만, 실제로 우수씨가 고전이나 예술영화 마니아였다는 사실은 취재과정에서 알 수 있었다. 취미생활로 영화를 즐겨봤고 티켓들을 일일이 모아뒀는데 거의 모든 영화들이 예술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이었다. '길'도 우수씨가 관람후 모아뒀던 티켓들 중에서 찾아낸 영화다."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진 분이었나보다.
"나 역시 그렇게 느꼈다. 청와대 만찬에 초청받았을때 작업복 차림으로 나타난 사람은 김우수씨 밖에 없었다. 굳이 돈을 들여 한 번 입을 양복을 사입느니 그 돈으로 기부를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을거다. 영화도 좋아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하던 분이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개봉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나.
"아니다. 그저 기록물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했다. 굳이 극장에 걸리지 않더라도 꼭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가 제작자로 나서면서 판이 커졌다. 그리고 그 친구의 인맥을 통해 최수종 선배까지 캐스팅하게 됐다. 다들 상업적인 목적없이 기부 개념으로 참여했다."
-김수미 등 극중 등장인물이나 김태원까지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했다.
"최수종 선배가 노개런티로 참여하고 난 뒤 자신감이 생겨 여기저기 부탁을 하러 다녔는데 다들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반갑게 참여의 뜻을 밝혀줘 놀랐다. 김수미 선생님은 현장에 나올 때도 항상 커피나 먹을 것들을 들고 와 나눠주시기까지 했다. 김태원씨 역시 영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 문제까지 직접 해결을 해주면서 열성을 보였다. 이상봉 디자이너 역시 최고의 의상으로 우리 영화를 도와줬다. 이 작품은 모든 사람들의 의식있는 참여 때문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어려운 점은 없었나.
"야외촬영을 할 때는 종종 시민들로부터 항의를 받거나 다툼이 생길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촬영하는 동안에는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다. 세트장 근처 동네 주민들은 오히려 먹을거리까지 가져다주며 응원을 해줬다. 서울역에서 촬영을 할 때는 노숙자들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시비를 걸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바짝 긴장을 했는데 촬영이 끝날때까지 예상외로 협조적이었다. 취지가 좋아 일이 술술 풀리는 것 같았다."
-좀 더 상업성을 가미해 만들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나.
"시트콤 작가 등 상업적인 콘텐트를 만들어왔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나. 우수씨의 실제 삶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꾸미면 정말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 같았다. 정재영을 캐스팅해 우수씨를 좀 더 거친 인물로 그려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주변에서도 그렇게 만들길 권했다. 끊임없이 그런 유혹들을 받았지만 김우수씨의 삶을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게 이번 영화의 취지에 적합하다는 판단이 들어 '착한 영화'로 만들게 됐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 계획인가.
"이번엔 연출을 했지만 다시 작가의 자리로 돌아갈 생각이다. 작가가 내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