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야구 8개 구단은 외국인 선수 16명을 투수로 채웠다.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후 처음으로 타자를 볼 수 없었다. 내년 시즌에도 이 같은 흐름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선수 3명을 쓸 수 있는 NC를 포함한 9개 구단 모두 투수를 데려올 참이다. 무려 19명의 외국인 투수가 마운드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9구단 체제라는 기형적 경기 일정과 맞물려 국내 투수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 특급 외국인 투수가 성적을 보장한다
프리 에이전트(FA) 시장이 마감하면서 각 구단은 외국인 선수 계약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현재 넥센만 손을 털었다. 올해 16승 평균자책점 2.20의 나이트와 11승을 거둔 밴헤켄을 눌러 앉히는 데 성공했다. 롯데와 한화는 각각 13승 투수 유먼, 선발의 축이 될 바티스타와 재계약했다.
각 구단들은 외국인 타자를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김주찬과 홍성흔이 빠져나간 롯데가 그나마 외국인 타자를 영입할 팀으로 거론됐지만 김시진 롯데 감독은 "마운드의 힘으로 타선 공백을 메우겠다"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3명을 뽑을 수 있는 신생구단 NC는 선발투수 3자리를 모두 외국인 투수에게 맡길 계획이다.
각 구단은 특급 투수 1명이 팀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09년 KIA가 27승을 합작한 로페즈와 구톰슨을 앞세워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런 신념은 더욱 강해졌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을 지낸 하일성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4, 5년 전부터 모든 팀들이 불펜 야구로 돌아섰다. 또 파워 야구보다 스피드 야구로 가고 있다"면서 "결국 좋은 선발투수만 확보되면 다른 것은 메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외국인 투수 쏠림 현상의 이유를 설명했다.
◇ 쓸만한 토종 투수가 사라진다.
외국인 투수의 득세로 국내 투수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올 시즌 다승 10위 중 국내 투수는 장원삼, 배영수(이상 삼성), 노경은(두산) 3명뿐. 모든 구단이 외국인 선수를 투수로 채운 첫 해, 다승 10위 내 토종 투수는 역대 가장 적었다.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의 과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번 대표팀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선발진이다. 류중일 감독과 함께 선수 구성을 맡고 있는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은 "오른손 선발 투수가 없다"고 고민을 드러냈다. 한 야구인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추진 중인) 류현진(한화)이 빠지면 실질적인 선발은 윤석민(KIA) 외엔 없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더 큰 걱정은 내년부터 국내 투수의 경쟁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2013시즌은 NC가 1군 리그에 들어와 9구단 체제로 운영된다. 하일성 위원은 "8개 구단 체제일 때는 5인 로테이션이 돌아간다. 하지만 매주 나흘간 휴식팀이 하나씩 나오는 내년부터는 잘 던지는 3명만 있으면 된다. 외국인 선발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