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상, 7년 무명 야구 그만둘 생각..‘포크볼로 풀린 인생’



경기 종료와 동시에 동료들은 윤희상(27·SK)의 어깨를 매만졌다. 미안함이 가득한 손길이었다. 윤희상은 24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한국시리즈(KS) 1차전에서 8이닝 5피안타 3실점의 호투를 펼쳤다. 그러나 팀은 1-3으로 패했다. 윤희상은 포스트시즌 15번째이자 KS 9번째 완투패의 멍에를 썼다.

소득이 없진 않았다. 이만수(54) SK 감독은 "윤희상이 호투한 덕에 불펜진을 아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희상 개인에게도 의미있는 경기였다. 그는 지난해 KS 2차전에 선발로 나섰지만 손가락 부상으로 1이닝(1피안타 무실점)만 소화한 채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번 KS에서는 길게 던지고 싶다"는 목표를 이뤘다. KS가 길어진다면 윤희상은 '믿을 수 있는 선발'로 또 마운드에 선다. 한때 타자 전향을 고민했던 '고집쟁이 울보'가 SK 에이스로 훌쩍 자랐다.



▶고집쟁이에다 울보, 소년 윤희상

KIA 윤석민(26)은 "희상이 형은 고집쟁이에다 울보였다"고 폭로했다. 윤희상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는 "석민이 말이 맞다. 마음대로 안되면 고집을 피우다 결국 울었다"고 했다.

윤희상은 1996년 창단한 구리시 인창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두산 윤석민(27)과 오재일(26), KIA 윤석민이 창단 멤버다. 윤희상은 내야수로 출발했다. 그는 "수비를 괜찮게 했던 것 같다. 계속 내야수로 뛰었으면 '최장신 야수'(193㎝)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증거 자료가 화면으로 남았다. 윤희상은 97년 한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진행한 '제2의 이종범을 찾아라'라는 방송에 출연했다. 재능 있는 '어린 내야수'를 찾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당시 대스타였던 이종범 코치(한화)님의 손도 잡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안 풀리는' 유망주

윤희상은 '던지는 것'에 더 흥미를 느꼈다. 선린인터넷고에 진학하면서 투수에 전념했고, 2004년 신인지명회의에서 2차 1라운드(전체 3번)로 SK에 지명됐다. 당시 스카우트였던 진상봉 SK 운영팀장은 "키가 크고 유연했다. 성장 가능성이 크게 보였다"고 설명했다. SK는 윤희상에게 계약금 2억원을 안겼다. 기대치는 그만큼 높았다.

하지만 프로 무대는 녹록치 않았다. 윤희상은 "뭔가 하려고 하면 아프고, 기회가 오면 못 잡고. '안 풀리는 선수'가 다 그렇지 않나"라고 입단 초기를 떠올렸다. 윤희상은 자주 어깨가 아팠다. 2004년 11경기, 2005년 3경기에만 구원투수로 등판했을 뿐 대부분의 시간을 재활군과 2군에서 보냈다.

2006년 7월에는 오른 어깨 수술을 받았고 2007~2008년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이 기간 "타자로 전향해볼까"라는 고민도 했다. 팀 내 동갑내기 정우람에게 "방망이 좀 구해줘"라고 부탁해 공익근무가 끝난 뒤 배트를 휘두르기도 했다.



▶포크볼로 풀린 인생

그러나 팀은 여전히 '투수 윤희상'에 대한 기대가 컸다. 2009년과 2010년을 또 2군 선수로 보낸 그는 2011년을 앞두고 "제대로 던져보자"고 마음 먹었다. 한·미·일 투수들의 '투구 동영상'을 찾아보고 응용했다. 점점 자신에게 어울리는 투구 동작을 찾아갔다. 지난해 여름부터 연마한 포크볼이 통하기 시작하면서 던지는 게 더 재밌어졌다.

2011년 후반기 데뷔 첫승을 포함해 3승을 거둔 뒤 포스트시즌 무대까지 밟은 그는 올 시즌 SK에서 유일하게 '풀타임 선발'로 뛰었다. 7승을 목표로 했던 윤희상은 팀내 최다인 10승(9패)을 거뒀다. 그의 포크볼은 리그 최고 구종 중 하나로 꼽힌다. 허삼영 삼성 전력분석원은 "시속 150㎞짜리 직구에, 슬라이더·커브·체인지업을 던지는 투수가 스피드 있는 포크볼을 던진다. 무척 위력적이다"라고 말했다.

윤희상이 "정말 안 풀린다"고 한탄할 때 KIA 윤석민과 팀내 선배 송은범(28)은 "정말 열심히 해봤나"라고 끊임없이 잔소리를 했다. 윤희상은 "나도 '한 고집'하는데 석민이랑 은범이 형의 잔소리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정말 싫을 때는 전화를 안 받거나, 도망갔다"며 웃었다. 승수와 이닝은 쌓이고, 잔소리는 줄었다. 송은범은 "희상이가 이렇게 잘 던지는데, 무슨 잔소리를 하겠나. 이젠 안한다"고 했다.

하남직 기자 jiks7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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