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아나운서·리포터가 꿈이었요. 그런데 엄마 친구분 중에 유명 의상 디자이너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나를 보시더니 다짜고짜 '너는 미스코리아를 해야한다'며 손목을 붙잡고 명동 세리 미용실로 데려다주셨어요. 거기서 즉석에서 수영복 워킹을 한 후 출전하게 된거죠."
-미스코리아 시절엔 '톱스타병'에 걸려있었다고 고백했죠.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됐는데 그때는 참 행사가 많았어요.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한국을 대표해서 다녀야했어요. 그러면서 한국대표라는 책임감과 동시에 몹쓸 '톱스타병'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한번은 저를 취재하던 일간스포츠 사진기자님께 결례를 한 적이 있어요. 현장에서 자주 마주쳐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는데 어느 날 그 기자분이 '잘 있었지?'라며 안부인사를 하는 걸 정색을 하고 '죄송한데요. 저한테 반말하지 마세요'라고 해서 서로 어색한 상황이 된거죠. 나중에 거듭 사과드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짓이었어요. 인기 높은 TV 드라마를 찍을 때에는 한 술 더 떴죠. 상대 남자배우가 저를 겁탈하는 신이 있었는데 하기가 거북한 거예요. 그래서 그때 감독님을 찾아가서 '감독님 이 장면 도대체 어떻게 찍으실 거예요?'라고 꼬치꼬치 따져물었던 적도 있어요. 하하"
-카퍼레이드도 했다고요.
"금메달 따고 금의환향한 선수들이 하는 카퍼레이드를 두 번이나 했어요. 한 번은 전국적인 행사로, 또 한 번은 영등포 지역행사로 했어요. 그때 제가 영등포구 당산동에 살고 있었는데 '영등포의 딸'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단 차량을 타고 퍼레이드했죠."
-그동안 혹시 유혹은 없었나요.
"정말 없었어요. 하하. 대신 이런 적은 있죠.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는데 저랑 식사 한번 하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러나 정중히 거절했어요. 멕시코 대사관에서도 비슷한 연락이 있었는데 역시 정중히 고사했죠."
▶엄마 김성령은? "100점 만점에 80점?"
-엄마 김성령은 몇 점인가요.
"한 80점? 가급적이면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노력하니까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그럼요. 큰 아들이 아이유를 너무 좋아해요. 아이유가 제겐 경쟁상대인 셈이에요."
-남편분은 많이 도와주시나요.
"남편은 부산에서 사업을 해요. 서로 떨어져 있을 때가 많죠. 아이들하고도요. 그러나 저를 많이 이해해줘요."
-화목한 가정인데 괜한 이혼 루머가 있던 적이 있죠.
"맞아요. 생각컨대 아마도 얼마 전 싱글맘이 된 동생(김성경 아나운서)하고 헷갈리신거 같아요."
-주변에 자주 만나는 지인은 누구.
"최명길·김진아·김보미·김세아·민해경 등과 함께 자주 어울려요. 얼마 전에 추억으로 간직할 겸해서 모두 함께 월간지 화보도 찍었어요."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우선은 이제 곧 아이들 방학이니까 '추적자' 끝나고는 한달 정도 아이들하고 가족하고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그 다음엔 다시 작품 해야죠. 큰 꿈 같은 건 없어요. 명품조연 소리부터 듣고 싶고요. 연극에도 다시 도전하고 싶어요."
김성령을 인터뷰하면서 외모나 마인드에서 40대 중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에너지와 매력을 발견했다. 노래방 회식에서 놀다가 넘어져 갈비뼈가 4대나 골절된 상황에서도 박해일이 동석해있다는 이유만으로 꾹 참고 견딘 일화를 들어보면 영락없는 20대의 수줍음이었다. 그러나 2003년부터 9년간 국제아동후원기구 플랜코리아 홍보대사로 묵묵히 봉사해온 이력을 살펴보면 어쩔 수 없는 40대의 희생정신을 갖고 있었다. 어쨌거나 환한 그의 얼굴에선 미스코리아 타이틀을 진작에 떼고 연기자로서 매진하는 즐거움과 확신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