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늦은 시간에 남친의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 녀석을 좀 데려가'라 했다. 종로 한 복판에서 인사불성이 되어 꿈쩍도 하지 않는다며 전화기 너머로 다급했다. 연인들은 그러하다. 삼손이 데릴라 앞에서 순한 양이 되듯이 여자는 내가 가야 그 남자를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사명감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불이 꺼진 클럽 한 구석 테이블에 엎드린 채 쓰러진 남자와 한밤의 연인들을 위해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음악이 있었다면 금새라도 그녀의 눈시울을 적실 듯이 슬픈 로맨스가 따로 없을 텐데. 뎅그렁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이다. 갤갤거리며 편의점 앞에서 널부러져 친구들이 아예 사지를 잡고 늘어져 있고, 옷이며 가방은 이미 오물로 만신창이다. 여자는 그래도 남자를 덥석 끌어안고 얼굴을 매만지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남자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간다.
내 손 안에 들어온 이 남자를 어떻게 요리할까? 여자가 남자를 농락한다. 술에 취해 잠이든 남자들은 웬만해서 이성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고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제 멋대로 남자를 주무르고 눕힌 채로 완벽한 섹스를 성취해 낼 때까지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고 쓰러진 채였다. 아예 불을 끈 채로 여자는 평소에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 까지 마음껏 즐긴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신음소리를 내며 미간을 찌푸리기는 했지만 평소처럼 섹스를 리드할 수 있는 기능은 마비된 상태였다.
아직 신혼이었던 한 새 신부가 새벽녘에 슬쩍 남편의 몸을 더듬다가 깜짝 놀랐다. 남편이 자고 있지 않았고, 신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다. 단단하게 흥분한 채로 말이다. 신부는 부끄러워하며 남편을 감싸 안고 애무를 시작했는데, 순간 드르렁 하는 코콜이 소리에 여자는 기겁했다. 발기 한 채로 섹스를 하면서 코를 고는 남자라니.
간밤에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 바 없는 남자가 쑥스러운 듯 식탁에 앉는다. 여자는 살가운 잔소리를 하며 따끈한 해장국을 낸다. 술에 취한 남친을 뒤 치다꺼리 하며 아침까지 먹여 출근시킬 정도되면 결혼한 커플 못지 않은 거다. 남자가 갑자기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당긴다고 하길래 여자가 뜨끔했다.
남편이 매일 밤 술을 마신다고 투정을 부리는 여인이 있어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고맙다며 작은 생각의 전환으로 이제는 술 취한 남편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귀띔한다. 이제는 남편이 너무 자주 의도적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려고 하고, 어떨 때는 아예 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속이 다 보이는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 취중섹스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그 말은 100% 신뢰할 수 없는 가보다. 별수 있나. 그런 남자를 역으로 이용해 즐기는 수밖에….
최수진은?
불문학 전공, 전직 방송작가, '야한 요리 맛있는 수다' 의 저자. 성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