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24·SK)이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타구와 공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안타다"라고 생각했을 법한 타구. 그러나 2루수 정근우(30)가 손쉽게 처리했다. 3회초 1사 2루서 완만한 곡선을 그린 전준우(26·롯데)의 타구를 잡은 SK 2루수 정근우는 여유있게 2루를 밟았다. 3루쪽으로 몸을 기울인 2루주자 정훈(25·롯데)은 멍하니 서 있었다. 더블 아웃.
김광현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에는 '수비 귀신'이라 불리는 SK 야수진이 있었다. 경기 뒤 김광현은 "'안타다'라고 생각했던 타구도 잡히더라. 선배들께 정말 고마웠다"고 했다. 지난해 5월 27일 대구 삼성전 이후 390일 만에 스승과도 같은 박경완이 김광현을 리드했다. 김광현은 "박경완 선배님이 미트를 내밀면 '저기에만 넣자'라는 생각으로 던졌다"고 했다. 김광현은 SK 동료들을 믿었다. 야수진은 그라운드 가장 높은 곳, 마운드에 서 있는 에이스 김광현을 신뢰했다.
김광현이 20일 문학 롯데전에서 5⅔이닝 5피안타 1실점 6탈삼진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지난해 10월 한국시리즈 종료와 함께 시작된 왼 어깨 재활치료를 마치고 6월 2일 문학 KIA전에서 복귀한 김광현은 4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따냈다. "김광현이 등판하는 날에는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다.
김광현은 힘이 넘치는 1회초 전준우와 김주찬을 연속 삼진 처리하며 기세를 올렸다. 손아섭에게 볼넷을 허용했지만 강민호를 삼진으로 잡고 첫 이닝을 무사히 마쳤다. 삼진을 잡은 공은 모두 주무기인 슬라이더였다. 2회에는 삼자범퇴. 3회부터는 수비진의 도움을 받았다. 1사 뒤 정훈에게 우익수쪽 2루타를 내주며 찾아온 위기에서 전준우가 2루수쪽으로 가는 타구를 날렸다. 안타를 기대하고 3루로 뛰던 정훈은 더블아웃의 희생양이 됐다.
5회에도 SK의 놀라운 수비가 김광현에게 힘을 실어줬다. 선두타자 황재균의 안타성 타구를 중견수 김강민이 걷어냈고, 2사 뒤 정훈의 빠른 타구를 3루수 최정이 점프 캐치로 잡았다. 김광현은 선배들과 손을 마주치며 기뻐했다. 6회 2사 2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왔지만 이재영이 강민호를 3루 땅볼로 처리해 김광현의 실점은 '1'에 그쳤다.
박경완은 "오늘 광현이가 아주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고 했다. 김광현은 앞선 3경기서 요긴하게 썼던 투심이 좋지 않았다. 박경완은 "그래서 슬라이더 사인을 주로 냈다"고 말했다. 이날 김광현은 단 2개의 투심을 던졌다. 김광현은 "박경완 선배도 재활훈련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승리에 대한 간절함이 느껴졌다. 정말 감사 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