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대표팀의 김동섭은 15일(한국시간) 열린 2012 킹스컵 태국 국가대표팀과 1차전에서 멋진 터닝슛으로 선제골을 넣어 3-1 승리에 기여했다. 일본 진출 실패 뒤 다소 침체에 빠졌던 김동섭은 다시 한번 나래를 펼치며 런던행 꿈을 키우고 있다.
▶시미즈에서의 시련
김동섭은 2000년대 중반 한국 축구 유망주군에서 가장 먼저 꼽히는 대형 스트라이커였다. 187㎝의 큰 키에 87㎏라는 단단한 체격조건과 100m를 12초대에 끊는 빠른 스피드를 가져 '한국의 앙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김동섭의 이름은 2007년 J-리그 시미즈 에스펄스에 진출한 뒤 잊혀졌다. 2년간 1경기도 뛰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자 고기를 구워 먹거나 컴퓨터로 영화를 보는 등 현지 적응에 실패한 게 이유였다. 그는 "조재진 형이랑 같이 있을 땐 몰랐는데 재진이 형이 떠난 뒤 말이 통하지 않아 무척 힘들었다. 운동을 하기엔 괜찮았지만 성격이 활발한 편이 아니라 동료와 어울리지 못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2009년에는 2부리그 도쿠시마 보르티스로 임대됐지만 11경기에 나가 한 골도 넣지 못했다.
대표팀에서도 시련은 이어졌다. 허벅지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소속팀에서 뛰지 않는 선수는 뽑지 않겠다"는 홍명보 감독의 방침에 따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김동섭은 "홍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섭섭하진 않았다.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1경기만 봤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부활하다
2010년, 김동섭은 드래프트를 통해 광주에 입단했다. 김동섭은 "드래프트를 통해 가게 됐지만 기업구단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많이 올 수 있어서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구단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말했다. 젊은 선수들이 많아 밝은 분위기도 좋았다.
자신감을 회복한 김동섭은 7골 2도움을 올리며 신인왕에 오른 이승기와 함께 광주 공격진을 이끌었다. 광주는 신생팀이지만 11위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김동섭은 "팬들이 많이 응원해 주셔서 힘이 난다. 인기순위? 승기 형, (박)기동이 형 다음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만큼 여유도 생겼다.
대표팀에서도 다시 기회를 얻었다. 홍명보 감독은 2010년 겨울 열린 자선 축구경기에 그를 불러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난해 3월 김동섭은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는 중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골을 넣어 1-0 승리를 이끌었다.
▶런던을 바라본다
킹스컵은 김동섭에게 큰 시험무대다. 올림픽 본선까지 펼쳐지는 치열한 경쟁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본선에서는 지동원(선덜랜드)을 비롯한 해외파 선수가 합류하기 때문에 기존 공격수들의 입지가 좁아진다. 박주영 등 경험 많은 공격수가 와일드카드로 합류할 경우 자칫 런던에는 가지 못할 수도 있다. 김동섭은 "본선에 가는 것이 먼저"라고 운을 뗀 뒤 "주영이 형이 오더라도 잘해서 3명 안에 들고 싶다"고 밝혔다.
김동섭은 "홍 감독님은 혼자 튀는 것보다 성실하고 팀을 위해 희생하는 걸 좋아하신다"며 "활동량이 적다는 지적이 있다. 그 점을 고쳐서 꼭 런던 올림픽 무대에서 뛰고 싶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