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 다섯살 젊은 부자가 프로야구팀 구단주가 되겠다고 한다. 허민 위메이크프라이스 대표다. 허 대표는 지난 15일 한국야구위원회(KBO), 고양시와 함께 '고양 원더스' 창단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1군도 아닌 2군리그 참가가 목표인 독립구단이다.
3년 동안 50억원을 쓰겠다고 했다. 최초의 독립구단 만큼이나 그는 아직 야구계에서 낯선 존재다. 하지만 그의 너클볼만은 믿어도 좋다. 기자는 "필 니크로에게 전수받았다"는 그의 너클볼을 캐치볼로 받아봤다. 빠르지 않은 공이 눈앞에서 휜다 싶더니 오므린 글러브 등을 맞고 안경을 박살냈다. - 야구를 주제로 인터뷰를 한 적은 없죠."그렇죠."
- MOU 체결 때 '나는 베이스볼 키드'라고 했습니다. 혹시 프로야구 개막전을 봤나요.
"제가 빠른 76년생이니 1982년이면 여섯 살이었습니다. 개막전은 못 봤지만 원년 프로야구 경기를 참 많이 봤습니다. 고향이 부산인데, 동네 야구를 하면서 마운드에선 '나는 최동원이다', 배트를 잡으면 '나는 이만수다' 그랬죠."
- 부산의 영웅인 최동원씨가 14일 작고했습니다."그날 하루종일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경남고-군산상고 OB경기에 최동원씨가 등판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죠. 당연히 마운드에 서셔야 할 분인데. 마음 속으론 늘 '최동원이 언제 롯데로 돌아갈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꿈의 구장'이라는 영화를 봤나요. "고전이죠. TV 재방송도 여러 번 봤습니다.
- 그 영화를 보고 '야구장을 만들고 싶다' '구단주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진짜 구단주가 되는군요."대학 졸업 뒤 사업을 시작할 때 미래 목표가 세 가지였어요. 그 중 하나가 '프로야구 팀을 만들겠다' 였습니다. 2008년 KBO에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한 적도 있죠."
- 필 니크로에게 너클볼을 배웠다고 화제가 됐습니다."서울대 야구부에서 후보 투수였습니다. 어깨가 안 좋았어요. 부산 대동고를 나왔는데, 야구부는 없었지만 학교 대표 야구팀 투수였어요. 공도 빨랐죠. 그런데 2학년 때 어깨가 나갔어요. 관절순이 손상(슬랩)됐어요. 2006년 네오플 주식을 NHN에 넘겨 처음으로 큰 돈을 벌었습니다. 제일 먼저 한 게 김진섭 박사에게 어깨 수술을 받은 겁니다. 통증은 사라졌는데, 구속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너클볼을 배워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 최고의 너클볼 투수에게 제대로 배웠군요."자랑 하나 하겠습니다. 니크로씨가 제자를 딱 두 명 뒀습니다. 한 명이 보스턴의 팀 웨이크필드. 다른 한 명이 접니다. 쉽진 않았죠. 직업야구선수도 아닌 동양인이 너클볼을 배우겠다는 데 의아한 게 당연하죠. 끈질기게 매달렸더니 받아주시더군요. 전 인생은 실패와 노력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제자가 됐고, 한 달 동안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날엔 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애틀랜타 시절 쓰시던 낡은 모자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 어떤 가르침을 받았나요."그 분이 짜 주신 프로그램대로 밤늦게까지 던졌어요. 야구교과서에 나오는 너클볼 그립은 가운데 손가락 세 개 첫 마디로 공을 누르지 않습니까. 니크로씨는 그 그립은 엉터리라고 했어요. 니크로의 너클볼은 둘째, 셋째 손가락 끝으로 공을 누르는 그립입니다. 공과 손의 접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리죠. 그리고 공을 밀지 않고 던져야 해요."
- 독립구단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왜 한 겁니까. "야구계에 지인들이 많아요. KBO 쪽에서 먼저 제안이 왔습니다. 1년에 8억 정도를 들이면 팀을 만들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판을 더 키우자, 3년 동안 50억원을 낼테니 제대로 된 팀을 만들어 보자고 역제안을 했습니다."
- MOU 체결 전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요."야구장이죠. 다행히 고양시에서 국가대표 훈련장을 홈구장으로 쓰도록 허락했습니다. 고양시가 아니었다면 창단을 못했을 겁니다."
- 독립구단이니 만큼 수익 모델을 만들어 봄직도 한데요."수익 생각은 안 합니다. 저는 이 사업을 사회적 기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왜 하필 야구단으로 기부를 하는 겁니까."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기부가 제가 걸어온 길과 맞습니다. 저희 회사에 건국대 야구부를 나온 트레이너가 있어요. 그 친구로부터 야구 선수의 현실을 알게 됐습니다. 한국은 도전에도 자격증이 필요한 듯한 사회입니다. 제가 원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기부가 아니라 의미있는 스토리를 만드는 기부,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기부를 하고 싶습니다."
- 야구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 적이 있나요. "야구 덕분에 서울대에 입학할 수 있었죠. 학교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비선수 출신을 야구부원으로 받아주는 학교는 서울대 밖에 없었어요. 그 목표로 재수할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 아직 KBO에서 독립구단의 2군 리그 참가 여부는 확정하지 않았는데요."2012년 전반기는 번외 경기로 치르더라도, 후반기는 리그에 참가하는 게 목표입니다. 정식 2군 리그에 편입되지 않는다면 팀을 운영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 기존 구단들은 실력 차이를 우려하더군요."전 생각이 다릅니다. 1년에 프로야구에서 방출되는 선수가 100명입니다. 1, 2군에서 뛴 선수들이 모이는 팀입니다. 미국 프로야구식으로 우리 팀은 쿼더러플A(트리플A보다 낫다는 의미) 수준일 겁니다."
- 전반기에 가령 2승 18패를 한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2군 리그 정식 참가를 요구할 겁니다. 새로운 시도에는 시행착오가 따릅니다. 당장 어렵더라도 뜻과 길이 맞다면 언젠가 목적지에 이를 겁니다. 지금은 기존 구단에서 독립구단이 생소하겠지만 진성성을 가지고 성실하게 운영하면 공감을 얻겠죠."
최민규 기자 [didofido@joongang.co.kr]
사진 = 이호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