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블레이드 러너'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5·남아공)가 비장애인과 당당히 겨뤄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번에는 한국 육상 선수가 감동의 레이스를 준비하고 있다. 주인공은 휠체어 육상 남자 400m에 출전하는 유병훈(39)이다.
유병훈은 3일 오후 7시55분 이번 대회 번외경기로 열리는 T53 휠체어 육상 400m에서 메달이 기대되는 선수다. 공식 메달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한국 선수 가운데 메달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평가다. 유병훈의 시즌 랭킹은 5위다. 지난 1월 어깨 수술 이후 올해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해 3위였던 랭킹이 두 계단 내려갔다. 그러나 재활을 끝내고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와 훈련에 매진했다.
유병훈은 만 4세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그러나 자신의 불운을 탓하기보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삼육재활학교에 다니면서 휠체어 농구에 발을 들였다. 그러다 농구팀의 친한 후배가 휠체어 마라톤을 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한눈에 반했다.
20대 초반 휠체어 마라톤에 발을 들인 뒤 2001년부터는 트랙 종목에 집중했다. 지난해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는 T53 휠체어 육상 2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정상권으로 올라섰다.
대회를 앞둔 각오는 남다르다. 유병훈은 "개인 최고기록(49초87)을 경신한다면 동메달 이상을 바라볼 수 있다"며 자신감에 넘쳤다. 그는 "지난 5월 대구스타디움에서 경기해봤는데 몬도 트랙이 쿠션이 좋아 확실히 잘 나가더라. 좋은 기록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좋은 성적으로 시상대에 오르면 만난지 4개월된 비장애인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할 생각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항상 일과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좋아서 지금까지 했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목표인 내년 런던 패럴림픽 금메달을 이루고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말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나마 유병훈은 운이 좋은 케이스다. 그는 휠체어 수입판매회사인 닛신메디컬에서 영업부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에 출전할 때 장비를 후원해주던 회사 사장의 도움으로 운 좋게 취직까지 했다.
국내 환경상 대부분의 장애인 선수들은 경제적인 난관에 봉착해 일찌감치 운동을 그만 두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비장애인과의 경쟁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힘든 실정이다. 경기용 의족이 1족당 2400만원 가량으로 고가인 데다 전문 훈련 코치도 없다. 장애인 스포츠는 특별하다는 인식이 굳어지며 휠체어 종목에 집중하게 된다. 휠체어 육상 실업팀마저 손에 꼽을 정도의 환경에서 '한국의 피스토리우스'는 아직 먼 이야기다.
대구=오명철 기자 [omc102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