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써니'(강형철 감독)와 '풍산개'(전재홍 감독)의 흥행이 놀랍다. '써니'는 개봉한 지 두 달이 됐는데도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5월 4일 개봉 첫 주에 57만여명으로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이후 8주 연속 박스오피스 3위권을 지키고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나 '쿵푸 팬더2'가 웃겨도, '슈퍼 에이트'가 호기심을 자극해도,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나 '트랜스포머3'가 물량공세를 퍼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순제작비 2억원의 영화 '풍산개'는 한 술 더 뜬다. 블록버스터의 바다 한가운데 개봉해 진작에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눈에 띄는 성적을 거뒀다. 이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웠던 싸움. 그러나 두 영화는 한국영화의 힘을 입증하며 '자이언트 무비'들에 압승했다. 과연 그들의 '울트라 파워'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68억원 VS 2000억원, 1대 30의 싸움'써니'·'풍산개'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우선 제작 규모에서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트랜스포머3' 등의 편 당 평균 제작비는 약 2억달러(약 2142억원). 반면 '써니'는 순제작비 40억원에 프린트·마케팅비 20억원을 더해 총 60억원, '풍산개'는 순제작비 2억원에 불과했다. 둘을 합쳐도 할리우드의 그것에 30분의 1밖에 안되는 수준이다. '풍산개'만 따로보면 20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니'는 개봉 한달 보름만에 다시 박스오피스 정상에 섰다. 소위 관객 감소율을 뜻하는 '드롭(drop)율'도 아주 미미하다. 전 주말 '써니'는 38만명으로 전전 주말의 31만명보다 오히려 관객이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였다.
'써니'를 배급한 CJ E&M 측은 "제작비 60억원을 기준으로 손익분기점은 관객 200만명 수준이다. 이는 국내 영화시장 규모에서 가장 적절한 투자·제작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며 "할리우드 초대작들 사이에서도 한국영화가 힘을 잃지 않는 것은 이같은 규모의 차이가 제공하는 역설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풍산개'는 훨씬 가벼워보였다. 지난달 23일 개봉해서 나흘만에 손익분기점을 달성했다. 총제작비 8억원이라 할 때 28만명 안팎이면 투자금 회수가 가능한 구조였다. 그동안 국내 관객에겐 그리 환영받지 못하던 김기덕 감독은 "희망이 생겼다"며 반가워했다. 윤계상·김규리 등 노개런티로 참여한 주연배우들도 자신감을 얻었다.
▶사람 VS 로봇·돌연변이·괴물, 아날로냐 디지털이냐하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주제와 소재, 그리고 이를 다루는 정서와 방식에서 '써니'와 '풍산개'의 흥행 포인트를 엿볼 수 있다.
'써니'는 올해 초부터 확산된 '복고'나 '7080' 열풍과 시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여고 동창생이었던 중년 부인들이 자신들의 추억을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는 바로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촌스런 패션과 시대를 짐작케하는 소품들이 종종 등장했다. 어떤 건 좀 '구닥다리'같아 보였다. 그러나 이게 그때의 향수를 자극했다. 잊었던 감성을 불러냈다. 통기타와 카세트 테이프, 라디오 같은 '아날로그'가 어지럽고 복잡한 생활 속에 편안함을 제공했다.
때문에 '쿵푸 팬더2'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가 가고 뒤이어 '슈퍼 에이트'가 와도 관객은 변심하지 않았다. '사람'을 다룬 '써니'는 '돌연변이'나 '괴물'의 파워와 화려함을 지그시 누를 수 있었다.
'풍산개' 역시 기막힌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호기심을 높였다. 휴전선을 넘어 서울에서 평양까지 무엇이든 3시간만에 배달하는 사나이의 이야기는 기가 솔깃했다. 여기에 '김기덕 키드'지만 김기덕 같지 않은 전재홍 감독의 블랙 코미디적 연출이 더해져 웃음까지 줬다.
전재홍 감독은 "장대 높이뛰기를 해서 휴전선을 넘는 건 분명 픽션이지만 그만큼 통일의 염원을 담고자 했다"며 "'트랜스포머3'가 디지털의 화려함을 보여줄지는 몰라도 우리는 작은 영화가 더 재미있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만들었다. '풍산개'는 기적같은 영화"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드디어 '트랜스포머3'가 국내 1200여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다. 엄청난 물량답게 하루에만 54만명이 들어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써니'가 4만명, '풍산개'가 2만명으로 뒤를 이으며 블록버스터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인구 기자 [cl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