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수비형 미드필더 신형민(25)이 김태영·설기현·김남일의 뒤를 잇는 태극전사 '마스크맨'이 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충분하다. 조광래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달 초 신형민의 경기력을 직접 확인한 뒤 "훌륭한 선수다. 조금 더 빠른 템포의 축구를 구사할 수 있다면 대표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코뼈 부상을 입어 대표팀 재발탁의 꿈이 멀어지는 듯 했지만 15일 전북전에서 보란듯이 재기했다. 마스크를 쓰고 나와 0-2로 뒤진 후반 11분 헤딩골로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신형민의 활약에 힘입어 포항은 3-2로 전북을 누르고 K-리그 선두를 되찾았다. 현장에서 지켜본 박태하 축구대표팀 수석코치는 "신형민의 장점은 경기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충분히 제 몫을 했다"고 평가했다. 조광래 감독은 19일 해외파 소집 공문을 보낸 뒤 23일쯤 세르비아전(6월 3일)·가나전(6월 7일)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소집 예정일은 31일이다.
◇ 2010년 두 번의 기회와 절망
신형민에게 지난해는 기회의 해였다. 2009년 포항을 아시아 정상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1월 처음으로 A대표팀에 뽑혔다. 파죽지세였다. 그가 나선 경기마다 축구대표팀은 승리를 거듭했다. 남아공월드컵 무대가 눈 앞에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미끄러졌다. 월드컵 명단 발표 직전 오스트리아(5월 30일)에서 열린 벨라루스와 A매치(0-1패)에서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내용이 좋지 않았다. 경기에 나선 선수 가운데 유독 움직임이 둔했다. 자신이 출전한 A매치에서 처음으로 패배를 경험했다. 그는 다른 선수들이 남아공행 비행기를 탈 때 이근호·구자철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박 코치는 "당시 형민이가 상대팀의 스피드에 대처하지 못했다"고 탈락배경을 설명했다. 조광래 감독 부임 후에는 일본과 평가전(0-0무·10월)에서 처음 기회를 잡았지만 전반만 뛰고 교체돼 나왔다. 그 뒤로는 대표팀 부름을 받지 못했다. 소속팀에서도 프로 데뷔 후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2008년 데뷔 후 시즌 평균 5개의 공격포인트를 올렸지만 2010년에는 한 개의 공격포인트도 올리지 못했다.
◇ 2011년 터널을 뚫다.
그는 올해 터널을 뚫고 나왔다. 황선홍 감독을 만난 뒤 골 맛에 눈을 떴다. 황 감독은 신형민에게 세트피스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코너킥을 머리로 받아서 2골을 넣었다. 장기인 중거리 슛으로도 한 골을 넣었다. 본연의 임무인 공·수 조율 능력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대표팀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풀어야할 과제도 남아있다. 신형민은 대표팀에서 이용래(수원)·기성용(셀틱) 등과 경쟁해야 한다. 둘은 조 감독이 원하는 '빠른 템포의 축구'를 구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윤빛가람(경남)이 탁월한 패스능력과 슈팅력을 지니고도 벤치를 지키는 데는 '느리다'는 이유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박 코치는 "형민이는 빠르지는 않지만 상대 플레이를 먼저 읽고 대처하는 능력이 좋다. 컨디션만 좋다면 단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고 평했다. 신형민은 "이제는 대표팀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할 때"라며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 코뼈 부상에서 회복 중인 신형민이 마스크를 쓰고 A매치에 나설 경우 김태영(2002년)·설기현(2004년)·김남일(2009년)에 이어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치르는 4번째 축구대표팀 선수가 된다.
역대 마스크맨
①김태영 2002년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토티의 팔꿈치에 맞아 코뼈 부러져
②산토스 2003년 포항 소속으로 뛰다 코뼈 부러져 마스크 착용 후 출전
③설기현 2004년 레바논전 도중 안정환과 충돌, 광대뼈 함몰로 몰디브전에 마스크 착용
④박건하 2005년 수원 소속으로 서울전 뛰다 박주영과 충돌, 코뼈에 금가
⑤신영록 2005년 턱뼈 부상으로 네덜란드세계청소년월드컵 마스크 쓰고 출전
⑥김한윤 2005년 부천 소속으로 경기 뛰다 코뼈 다쳐
⑦이상호 2006년 광대뼈 다쳐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마스크 쓰고 출전
⑧신영록 2007년 캐나다세계청소년월드컵 브라질전에서 코뼈에 금가 마스크 쓰고 출전
⑨박재홍 2007년 경남 소속으로 수원전 뛰다 팔꿈치에 맞아 코뼈가 주저앉아. 김태영 마스크 빌려 출전
⑩김남일 2009년 우라와 레즈전 뛰다 백헤딩에 코뼈 다쳐. 호주전 앞두고 마스크 준비
⑪아디 2010년 서울 소속으로 경남전 뛰다 김병지와 충돌, 광대뼈 함몰. 챔피언결정전에 복귀해 우승 이끌어.
⑫이승렬 2011년 서울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5차전 알 아인전 마스크 투혼.
⑬신형민 2011년 포항 소속으로 강원전 뛰다 코뼈 다쳐. 전북전 선발출장해 팀 선두 이끌어 포항=이정찬 기자 [jayc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