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 국가대표팀 감독의 꿈 같은 휴식이 끝났다. 허 감독은 9일 동아시아 농구대회에 참가할 12명의 선수를 확정하고 전략 구상에 들어갔다.
허 감독은 지난달 26일 전주 KCC를 이끌고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일군 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가는 곳마다 축하가 이어졌다. "이제 복장(福將)이 아닌 명장이 됐다"라는 칭찬을 받았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인들을 만나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가족과 김연아 아이스쇼를 보는 여유도 즐겼다. 그는 "우승한 뒤 바쁜 시간을 보냈다. 여기저기 찾아가 인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더라. 마치 산삼을 먹은 기분"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이야기가 나오자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1년 동안 쉴 틈이 없다. 걱정이 앞서지만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는 2년 전 실패를 맛봤다. 2008~2009시즌 KCC를 정상에 올려놓은 뒤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지만 아시아선수권 대회에 나가 7위에 그쳤다. 우승을 노렸던 한국에 굴욕은 안겨준 사건이었다. 이번이 허 감독이 명예 회복을 할 기회인 셈이다. 그는 "2년 전에 너무 못해서 부담이 크다. 이번엔 진짜 잘하고 싶다. 2년 전 실패 원인을 잘 분석해서 2012 런던 올림픽 티켓을 꼭 따내겠다"고 밝혔다.
허 감독은 앞으로 약 1년 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6월 10일부터 중국 남경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농구대회에 참가한다. 이 대회에서 4위 안에만 들면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중국이 2군을 내보내는 등 상대 국가 전력이 비교적 약해 우승까지 노린다. 8월 6일부터는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윌리엄 존스컵에 나가 런던 올림픽을 향한 시동을 건다. 전지훈련을 겸한 대회다. 선수들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대회가 될 것이다. 이어 9월에는 중국 우한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 대회에 나간다. 이 대회에서 1등을 해야지만 런던 올림픽 티켓을 따낼 수 있다.
국제대회가 끝나면 허 감독은 소속팀 KCC로 돌아온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기 불과 20일 전에 팀에 합류한다. 곧바로 시범경기가 열리고, 시즌이 시작되면 내년 4월까지는 꼼짝없이 감독직에 전념해야 한다. 올해 5월부터 내년 4월까지 1년짜리 긴 여행을 떠나는 셈이다. 그는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을 돌아가면서 지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 시즌을 대비한 KCC 훈련은 거의 참가하지 못할 것 같다. 다음 시즌엔 허재 감독이 아니라 허재 감독대행으로 한 단계 내려가야 할 상황"이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나 허 감독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말투는 여전했다. "국가대표팀과 KCC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생각이다. 쉽지 않겠지만 일단 부딪혀 보겠다. 별 수 있겠나. 죽을 힘을 다해야지. 이번에도 나의 운을 믿어볼 생각이다."
김환 기자 [hwan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