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4년을 좌우한다.'
KIA가 FA(자유계약선수) 이범호를 영입하면서 원소속구단 한화가 선택하게 될 보상선수의 범위를 두고 말이 많다. 우선 올해 신인선수를 보상선수로 데려갈 수 있는 지 여부에 대한 논쟁이 뜨겁고, 설사 신인선수는 자동보호가 된다고 하더라도 KIA에서는 보호선수로 묶을 18명의 선수를 선별하는데 여간 고심이 아니다. 그만큼 보상선수 선택이 팀 간 민감한 문제다.
역대 최고 보상선수는 손지환과 이원석FA 선수는 영입할 지 안 할지만 결정하면 되지만 그에 따른 보상선수는 선택의 몫이기 때문이다. 보상선수를 잘 골라서 FA 선수 출혈을 메우고도 남는 재미를 본 팀이 있는가하면, 잘못 골라서 보상효과를 전혀 보지 못한 사례도 있다.
역대 FA 보상선수로 팀을 옮긴 선수는 15명이 있었다. FA제도 적용 첫해인 2000년 이강철의 보상선수로 해태로 옮긴 박충식과 김동수의 보상선수로 LG에 간 김상엽이 첫 케이스. 2009년 초 롯데의 홍성흔 영입으로 두산에 보내진 이원석이 가장 최근 보상선수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손지환(33)과 문동환(39)으로 꼽힌다. 우선 손지환은 2004년 FA로 LG에 입단한 진필중의 보상선수로 KIA의 간택을 받았다. 당시 LG에서 8년간 백업내야수를 탈피하지 못했던 손지환은 이적 첫 해 KIA 주전 내야수를 꿰차 114경기나 나서며 타율 2할7푼1리의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008년 삼성으로 트레이드될 때까지 4년간 2할6푼이 넘는 평균타율에 34홈런 140타점을 올리며 KIA의 주축선수로 활약했다. 반면 4년간 30억원에 손지환까지 대가로 얹어 LG에 입단한 진필중은 3년간 3승14패 14세이브에 그쳐 손지환만도 못했다.
현역 선수 중 가장 성공사례로 꼽히는 보상선수는 이원석(25)이다. 2009년 롯데로 간 홍성흔의 보상으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이원석은 내야수 유망주가 넘치는 두산에서 첫해부터 주전을 꿰찼다. 2년간 2할8푼이 넘는 타율에 홈런도 매년 10개 가까이 쳤다. 이원석의 나이는 이제 불과 25세. 앞으로 활약까지 기대한다면 두산으로서는 홍성흔의 공백이 전혀 아깝지 않다.
노장이라고 무시하지 마KIA의 손지환, 두산의 이원석 선택은 많지 않은 나이(26세)와 잠재력을 잘 살핀 결과였다. KIA가 신인선수는 자동보호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기존의 FA를 영입하는 팀들이 보호선수로 어린 선수들을 최대한 많이 묶으려는 것도 이때문이다.
역대 가장 어린 보상선수는 2004년 이상목의 보상으로 롯데에서 한화로 간 신종길로 당시 21세였다. 같은 해 현대로 이적한 노병오가 22세였고 2009년 이원석 등 23세도 3명이나 된다.
하지만 30대의 베테랑 선수가 보상선수로 선택된 사례도 많고 성공한 경우 역시 제법 된다. 대표적인 예가 문동환이다. 2004년 당시 32살이었던 문동환은 정수근의 보상선수로 롯데에서 두산으로 이적했다. 그와 동시에 채상병과 트레이드 돼 한화로 갔다. 내리막길을 걷던 문동환은 첫해에는 4승에 그쳤지만 이듬해 10승과 그 다음에 16승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한화는 30대 중반의 문동환을 부활시켜 4년간 35승을 챙기는 등 영양가 만점으로 써 먹었다.
2009년 33살의 나이에 이진영의 보상으로 SK 선수가 된 이승호(37번)도 지난해 2승을 올리며 부활했고 2000년 박충식도 30살의 나이에 2년간 반짝 활약을 했다. 역대 최고령 보상선수는 2003년 박경완과 바뀐 조규제로 당시 36세였다.
한편 역대 보상선수 중 가장 실패한 사례는 두산이 2007년 LG로 간 박명환의 보상으로 선택했던 신재웅으로 어깨 부상 때문에 이적 후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고 그해 말 방출됐다.
김동환 기자 [hwan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