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보러 오셨습니꺼. 참말로 오는 갑네. 저도 이따 갈낍니더.”
덕유산과 지리산에 둘러싸인 경상남도 함양군. 인구 4만 명의 조용한 도시가 아침부터 들썩거렸다. 함양공설운동장이 어디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해주는 얼굴에는 기대가 가득했다. 12월 9일. 함양군민에게 이날은 축제 날이었다. 설기현·김재성(포항)·김두현(수원)·오장은(울산) 등 TV에서나 보던 축구스타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며칠전부터 손꼽아 기다린 날이었다. ‘축구로 만드는 행복(추캥)’이 주최한 자선경기. 행복은 함양군 전체로 번져나갔다. 행복을 느끼기 위해 모인 1000여명 군민의 열기는 전날 내린 눈과 추위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이번 자선경기는 오장은(울산)과 김재성(포항)이 주축이 돼 준비했다. 오장은은 10년 전부터 겨울이 되면 이곳을 찾아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했다. 소문이 퍼지면서 구자철·정혁·김재성·조성환 등이 동행했다. 함께 훈련을 하던 이들은 5년 전 축구로 행복을 만들고 그 행복을 다시 나눠주자는 뜻에서 '축구로 만드는 행복'으로 모임 이름을 지었다. 회원들은 '축'자와 '행'자를 붙여 소리나는 대로 '추캥'이라 부른다.
추캥 멤버는 올 시즌 한 골을 넣으면 30만원, 도움을 올리면 10만원씩 돈을 모았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자선경기를 열었고, 장학금을 마련해 함양군수에 전했다. 일부는 함양 출신의 피해 주민에게 위로금으로 전달했다. 추캥의 행보가 입소문을 타면서 올해는 설기현·김두현 등 스타 선수들까지 동참했다. 설기현은 “2주 전쯤 재성이가 추캥에 대해 말해줬다. 내가 하지 못한 일을 후배들이 한다는 생각에 그들이 자랑스러웠다”며 웃었다.
팬 사인회로 시작된 일정.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함양제일고등학교에 다니는 안창호(18)군은 “축구 게임에서 내가 직접 플레이하던 선수를 보다니 꿈만 같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전·후반 30분씩 진행된 경기에서도 볼거리가 풍성했다. 김신욱·설기현·신광훈 등의 골이 터질 때마다 기발한 골 세리머니가 펼쳐졌다. 인기 걸 그룹 소녀시대의 화살춤을 단체로 연출하는가 하면 구두닦이 세리머니 등 고전적인 뒷풀이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관중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행사는 마무리됐다. 목포에서 전지훈련을 하다 이날 아침에 함안을 찾은 정혁(인천)은 “허정무 감독님께서 ‘팬에 가깝게 다가가라’며 흔쾌히 보내주셨다. 매년 참가하던 행사에 빠지지 않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장은은 “이렇게 많은 분이 찾아주실 줄 몰랐다. 보람을 느끼고 앞으로 더 노력해 이 자리를 더 발전시키겠다”고 전했다.
함양=이정찬 기자 [jayc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