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가수 고영준(52)의 별명은 ‘오뚝이’다. 생전의 아내가 지어주었다. 실제로 1995년 보증을 선 친구 장난감 회사가 부도가 났을 때를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는 그 빚을 다 갚고 오뚝기처럼 재기했다. 그를 보니, 현재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눈물 젖은 빵’의 한 대목인 “산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아”란 가사가 절로 떠오른다.
친구 보증 서 전 재산 날려
그가 보증을 서는 바람에 갚았던 돈은 원금 2억에 기타 다른 부채 포함 총 8억원(현재 물가 고려 약 14억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때인 40대 중반에 닥친 일이었다.
그는 그 돈을 갚아주기 위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던 재산을 대부분 날렸다. 그것도 모자라 친구 회사의 남은 장난감을 팔러 당대 내로라하는 원로 가수인 어머니 황금심과 전국 5일장을 돌았다. 무려 10개월간. 시장 한 모퉁이에서 어머니와 노래를 부르자 “가수가 어떻게 저렇게까지 하나, 측은하다”며 몰래 수표를 찔러준 사람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밤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빚을 다 갚는 데만도 꼬박 4년이 걸렸다. 빚을 다 갚은 후 그는 빈털터리 신세로 전락했다. 그 때 그가 깨달은 게 있다. ‘돈을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산을 잘 관리하는 것도 재테크’란 사실을. 그는 “그때 그 부도만 없었으면 지금 몇 십 억대 재산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의 후광으로 방송 데뷔
고영준이 누군가. 일제 때 만주에서 ‘타향살이’ 한 곡으로 한 무대에서만 무려 33번의 앙코르를 받았던 세계 가요사상 유례없는 국민 가수 고복수와 ‘꾀꼬리의 여왕’ 황금심의 아들이 아닌가. 1980년 첫 음반을 냈지만 실제 데뷔는 더 빨랐다. 방송 데뷔로만 쳐도 32년이다.
열 아홉 살 때 변웅전이 진행하는 MBC라디오의 ‘그리운 옛가요’에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가 이뤄졌다. 변씨가 그를 불러내 “어머니 몰래 노래 부르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의 ‘짝사랑’을 들어보자”고 소개해 첫 방송을 탔다.
그 방송이 나간 후 방송사에는 고복수 향수를 그리워했던 올드 팬들이 “고영준 가수 데뷔시켜라”는 전화를 무수히 걸어왔다. 그는 그 덕에 곧바로 인기 TV쇼 ‘유쾌한 청백전’에 출연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부모님의 후광이었다.
‘남자의 길’ 인생사 세옹지마
그의 시대는 89년부터였다. 그 때 낸 음반 ‘정에 약한 남자’가 히트해 바람을 일으켰다. 40대에 비로소 ‘고복수-황금심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뗐다. 5년간 고공행진을 거듭했던 그는 94년 사업을 했던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보증을 섰다. 그런데 그 친구의 회사가 1년 만에 부도가 났다.
그 회사가 부도나자 금융권에서 집을 압류했고, 채권자들도 빚 독촉을 해왔다. 친구의 빚을 갚지 않으면 언론사에 거액의 채무자라고 제보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별의별 곤욕을 다 치렀다. 그 때 어머니 아내와 함께 인생의 밑바닥을 다 맛봐야 했다.
친구 빚을 다 청산하고 다시 재기의 이를 깨물었던 2001년. 아내가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나고, 이어 같은 해 어머니마저 파킨슨 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 때 그는 암 투병중이었던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 남은 재산까지 다 털었다.
다시 빈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예술이 3분 30초짜리 노래라던가. 그 과정에서 ‘나 살아온 길 묻지를 마라. 비바람 헤치고 왔다’는 구절을 담은 ‘남자의 길’이 히트했다. 다시 재기를 시작했다.
돈 잘 못 쓰면 독, 잘쓰면 약
고용준에게 돈은 “잘못되면 독, 잘 쓰면 약” 이다. 그는 취해야 할 돈이 있고 취해서는 안될 돈이 있다고 믿는다. 어머니에게 배운 삶의 철학도 한몫했다. 60~70년대 어머니는 연탄 배달부가 손을 내밀어도 언제나 따뜻한 악수로 맞아 주었다. 어머니는 “놀고 먹는 손이 더럽지, 일하는 손이 뭐가 더럽냐”고 했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돈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마음을 투자해야 오래 간다고 믿는다. 그는 아내와 사별 후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재테크도 열심히 했다. 2001년말 리모델링한다는 소문으로 영등포 당산동에 아파트 한 채를 2억원에 구입했다. 그 아파트가 지난해 리모델링 결정이 나고, 인근에 지하철 9호선 통과역이 확정돼 현재 9억원 안팎으로 뛰었다.
방송과 밤무대 출연을 하면서 받은 출연료는 꼬박 저축했다. 이렇게 해서 1억원을 모아 이 돈으로 지난해 4월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고영준 라이브' 카페를 오픈했다.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저녁 10시 직접 무대에 선다. 노래로 번 돈을 노래로 돌려주기 위해서다. 이 밖에도 각 시군 지자체 행사도 열심히 뛰고 있다.
나를 위한 재테크 아닌 나누기 위한 재테크
그가 인생에서 돈을 버는 이유가 있다. 병들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요양원을 짓는 일이다. 그는 사별한 아내와 약속했다. "10년 안에 기도원을 지어주겠다”고. 그 약속 시한이 이제 2년 남았다. 그 꿈도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 그래서 그는 개인의 안위를 위해 돈을 벌고, 쓸 수가 없다. 모은 돈은 '요양의 통장'에 차곡차곡 입금시킨다.
"재테크요? 인생에서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번 돈을 어떻게 잘 쓰느냐가 진정한 재테크 아닐까요." 그는 “세상 사람들은 나의 부귀 영화를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고 쓰지만, 난 남을 위해 돈을 번다. 그게 내 재테크의 차이다. 사람이 잠 잘 공간과 먹을 곳이 있으면 나머지는 욕심 아닙니까?” 반문했다.
그의 재테크론은 부자가 되기 위해 재테크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재테크한다”는 그는 어느덧 인생 재테크의 달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