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지피지기 백전백승, 병도 알아야 잡는다
“병을 알아야 병을 잡을 수 있는데, 읽을 만한 파킨슨병 투병기 하나 없었다.” 김영동(77)씨는 파킨슨병을 판정을 받고 황당했던 것은 파킨슨병에 관한 책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지난 2년간 전쟁이었다. 그의 투병기는 파킨슨병 환자가 쓴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꼼꼼하고 치밀하다. 일반인에게도 유익하다. 파킨슨병은 노인에게만 걸리는 병이 아니다.
▲장군 걸음걸이가 왜 그래
김씨는 ‘걸음걸이가 이상하다’는 말을 자주 듣자 2005년 병원에서 갔다. MRI검사에서 파킨슨병으로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2년 전부터 증상이 진행 돼왔다고 말했다.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골프를 칠 때 친구들이 “그 씩씩한 장군 걸음걸이가 다 어디 갔냐”라고 물었다. 30년간 군생활을 마치고 소장으로 예편했다. 가족들에게서 “상체가 점점 구부정해진다”거나 “표정이 어둡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글씨 쓰기가 힘들어졌다. 7~8년 전부터 있던 변비가 심했다. 가만히 있으면 손이 떨리기도 했다. 파킨슨 병의 대표적 증상들이다. 권투선수 알리는 20년 넘게 파킨슨병을 앓고 있고, 미국 대통령 레이건과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도 파킨슨병 환자였다.
파킨슨병은 도파민 감소로 온다. 감소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상수준의 80%이상 소실되면 이상이 온다. 뇌졸중은 갑자기 힘이 빠지거나 마비가 오지만, 파킨슨은 서서히 느려진다. 완치는 안 되지만 관리만 잘 하면 수명에는 거의 지장이 없다. 파킨슨병으로 사망하기보다 골절·폐렴 등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20여 년 전에 간암에 걸려 투병기는 쓴 적이 있어서 용기를 냈다. “간암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뒤에 오는 환자’들의 행군을 돕기 위해 파킨슨병 투병기를 쓰기로 했다.
그는 “파킨슨병이 퇴행성 노인성 질환이라고 생각해서인지 환자는 늘어나는데 사회적 관심은 적다”면서 “사회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매달렸다”라고 말했다. 파킨슨병 환자가 글을 쓴다는 것은 엄청난 중노동이다. 자비로 출간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hjk12@yahoo.co.kr).
▲10년간 투병계획 세워
퇴치 전략을 짰다. 진행을 늦추는 방법은 약물요법, 운동요법, 정신요법 세가지다. 그는 “약물은 병원에서 처방을 해주니 믿고 따르면 된다. 때문에 파킨슨병의 치료주체는 환자가 자신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운동요법과 정신요법은 온전히 환자 몫이다. 변비 해소를 위해 식이요법을 병행했다.
낮에는 눕지 말며, 매일 산책하며 30분 이상 걷고, 밤 9시 30분에 자고, 아침기상과 동시에 스트레칭을 한다. 낮잠은 약효를 떨어뜨린다. 스트레칭은 경직과 보행장애를 개선해준다. 몸소 개발한 스트레칭 30개 동작을 30분간 한다.
스트레칭이 끝나면 신문을 본다. 일주일에 4~5회 3~4시간 체육관에서 보내고 한 달에 2~3회 필드에 나간다. 회사 출퇴근하면서 파킨슨병 약을 복용하는 것처럼 편해졌다. 10년간 투병계획을 세워놓았다.
약물의 복용 시기·양, 부작용을 기록하고 1차년도 치료성과를 실었다. 빈뇨와 다리경직 때문에 매일 밤 4~5번을 깨기 때문에 아내와 각방을 쓴다. 20여년을 CEO로 살아온 그였지만 가감 없이 어두운 모습들을 공개했다. 가족이 지켜본 투병모습도 담았다.
한 시간 진행된 인터뷰 시간 동안 단 한번도 손을 떨지 않았다. ‘환자가 맞나’ 라는 의문을 품었는데 책 표지 안에 헌사를 쓸 때 영락없는 환자였다. 첫 글자는 콩알만했는데 쓸수록 점점 작아져 깨알만해졌다. “얼굴표정이 없어지고 목소리도 작아져 고립을 자초하는 환자들이 많다”면서 “적극적으로 사회와 교류하는 것도 증세완화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김천구기자 [dazurie@ilg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