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경륜운영본부, 어정쩡 라인에 팬-선수만 ‘골탕’
지난 달 30일 2007그랑프리 결승전이 끝난 후 선수 대기실. 피스타에서 화려한 그랑프리 시상식이 한참 열리고 있던 이때 울먹한 표정과 함께 잔뜩 골이난 선수가 한명 있었다.
바로 방희성이었다. 하남팀과 광주팀의 라인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이 경주에서 하남팀의 돌격대장으로 나선 방희성은 이른바 '폭주(暴走)'로 실격을 당했다.
통상적인 타이밍보다 빨리 스퍼트를 해 다른 선수 그룹과 5차신 차이가 넘게 뒤늦게 골인했다는 것이 실격 이유였다.
실격을 당할 경우 1주 출장정지에 처해지기 때문에 방희성은 금전적, 그리고 심리적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특선급 멤버인 방희성의 경우 약 500만원 상금을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으니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
지난 해 경륜운영본부는 이른바 라인 대결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본부는 공식적으로 라인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라인이 충돌하는 의도적인 편성을 자주 선보이며 흥행을 유발했다.
팬들은 라인 대결을 당연하게 여겼고 실제로 적잖은 경주들이 라인 대결로 이뤄졌다. 그러나 부작용도 많았다. 라인을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선수들이 '나몰라라'식 레이스로 팬들을 허탈하게 한 사례가 허다했고 그 때마다 허망하고 분통이 터지는 것은 팬들이었다.
선수들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일반 경주는 물론이고 특히 베팅액이 많이 걸리고 팬들의 관심이 고조되는 대상경주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상경주에서는 아무래도 승부 타이밍이 빨라질 수밖에 없고 제일 앞선에서 총대를 멘 선수는 뒷선수들의 시속을 감당하기 어려워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 선수들은 "라인 편성이 너무 껄끄럽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열린 일간스포츠배 대상경주에서도 피해자가 나왔다. 바로 부산팀의 배민구. 배민구는 이날 같은 팀의 김치범을 의식해 일찍 스퍼트를 감행, 6위와 8차신 가량 벌어진채 골인한 뒤 결국 실격판정을 당했다.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는 서슬퍼런 본부 앞에서 드러내놓고 불만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지만 어정쩡한 편재 라인 편성의 피해자임은 분명했다.
현재 본부 내에서도 라인 편성에 대한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편성 쪽은 라인 대결에 대해 관대한 처분을 바라는 입장인 반면 '현행법'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심판과 공정 쪽은 예외없는 잣대를 적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은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누가 봐도 엄연하게 라인대결이 존재하고 있지만 본부만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그 와중에 골탕을 먹고 있는 것은 선수와 팬들이기 때문이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어정쩡한 태도를 팬들이 언제까지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지 알 수 없다.
박수성 기자 [mercury@ilg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