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무도 못 알아보게 나오는 거죠? 동네도 집도 다 나오면 안돼요. (사채업자가)다 알아 볼 거예요.”
“저 인터뷰한 거 알면 쥐도 새도 모르게 칼 맞아 죽을지도 몰라요.”
한결 같았다. 이렇게 아무 것도 못 찍어서야. 아니 찍어도 그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서 내보낼 수 없어서야 과연 프로그램이 잘 나올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그들이 입을 연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정말 몰라서 당하는 일이니까 모두들 알아야 해요. 제대로 정확히.”
“많이 알려져야 해요. 나는 힘이 없으니까 힘 있는 분들이 알고 변화시켜주세요.”
모든 것을 다 잃고 남은 것은 빚뿐이라는 이들. 시간을 되돌린다면 절대로 남의 돈을 쓰지 않을거라고 말하는 사례자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남의 돈을 쓰지 않고 살아진다면야 좋겠지만 사람 사는 일이 어디 그런가. 가진 돈이 많은 사람이야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에서부터. 갑자기 아이가 아프고. 사업이 망하고. 보증을 서준 사람이 도망가면. 돈도 없고 그 돈이 없어 신용도 없는 사람에게는 은행의 문턱이 높기만 할 것이다. 그럼 돈을 빌려주는 어딘가로 또다시 손을 내밀어야 한다.
단지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받는 과정에 생기는 이윤과 돈을 받는 사람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빌려 쓰고는 태연히 도망가거나 갚을 생각이 없는 (돈을 빌려준 사람의 입장에서는 ‘진상’이라고 부른다는)사람들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경우도 허다하고. 이자는커녕 원금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빌리는 일은 서로 어울려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로지 돈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싶어졌다. 무소유의 즐거움을 깊이 깨닫고 돈으로부터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한편으로 앞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살 일도 결혼을 할 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일도 두려운 걸 보니 난 이미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 되었나 보다. 그 것이 꽤나 씁쓸해지는 순간이다.
나는 씁쓸해졌지만 앞으로 돈을 빌릴 일이 있는 모든 이에게는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로 인식되어 더 이상 삶의 희망을 잃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정헤레나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