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류현진(한화)과 장원삼(현대)처럼 새내기들이 데뷔 첫 해 간판투수가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오랫동안 투수 조련 시스템에 따른 담금질을 통해 주축 투수로 발돋움 한다. 투자라는 측면에서 후자의 보람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매년 수많은 유망주들이 큰 꿈을 안고 프로 유니폼을 입는 가운데 최근 이러한 시스템에 의해 배출되는 선수가 줄어드는 추세다. 투수가 갖춰야 할 조건으로는 제구력·스피드·배짱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초대형투수를 효율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강조해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
▲제구력
'투수 사관학교'라 불리는 현대의 김재박 감독은 "제구력이 우선이다. 컨트롤이 되지 않고는 마운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올해 팀 뒷문을 책임지고 있는 박준수의 예를 들었다. 데뷔 7년 차인 박준수는 최근 제구력 향상을 위해 자신의 볼 스피드를 2∼3㎞ 줄였다. 최고구속이 140㎞밖에 안되지만 부상으로 빠진 조용준의 공백을 틈타 주전 마무리투수를 꿰찼다. 박준수는 올 시즌 이닝당 사사구 허용률이 0.13(47⅔이닝 6개)에 그친 반면 이닝당 탈삼진은 1.11(53개)로 높아졌다. 6년 동안 1승밖에 없던 그는 올해 3승 22세이브, 평균자책점 1.32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다.
두산 이혜천도 스피드를 3∼4㎞정도 낮춰 볼의 위력을 높인 케이스다. 왼손투수로서 구속이 150㎞를 웃돌았으면서도 제구력 문제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그는 근래 안정된 피칭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원포인트 때와는 달리 선발투수로서 긴 이닝을 책임지기 위해 체력을 안배하다보니 볼 스피드가 줄었으나 타자를 상대하는 데 지장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형편없는 제구력 때문에 타자를 공포에 몰아 넣곤 했던 이혜천은 올 시즌 이닝당 사사구 허용률 0.45(86이닝 39개)로 평균자책점 2.41을 마크 중이다.
▲스피드
제구력을 강조하다보면 대형투수 재목이 평범한 투수에 그치는 부작용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김연중 LG 단장은 "스카우트할 때 볼도 빠르고 체격도 좋아 대형투수감이라고 여겼는데 2군에서 조금 지나면 그저그런 투수로 변해 있다. 하루라도 빨리 1군에 오르고 싶어 타자와 싸움하는 요령을 중점적으로 익히는 탓이다"고 말한다. 자신의 볼 스피드를 유지하면서 변화구 구사 능력을 높여야 하는 데 조급한 나머지 성장의 한계를 스스로 줄인다는 이야기다.
볼 끝의 스피드를 높여 업그레이드한 경우로 LG 마무리 투수 우규민이 있다. 시즌 초반만 해도 패전처리투수에 불과했던 그는 마무리투수로 등판한 15경기 19⅔이닝 동안 단 1실점(7월 15일 현대 전근표에 솔로홈런)하는 놀라운 구위를 자랑한다. 뒤늦게 시작한 데다 팀 성적이 좋지 않아 7세이브밖에 기록하지 못하고 있지만 구위는 어느 팀 구원투수에 뒤지지 않는다.
▲배짱과 경험
해태시절 최향남(클리블랜드 AAA), 삼성 이정호 등 '불펜의 선동열'이라는 말을 듣는 투수가 종종 있다. 불펜에서는 무시무시한 볼을 뿌리다가도 정작 실전 마운드에 오르면 자신의 볼을 뿌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짱이 부족해 과감한 몸쪽 승부는 꺼리기 일쑤다. 이러한 투수들은 코칭스태프가 상대와 상황을 고려해 등판시켜주는 등 배려를 하면 자신감과 경험이 쌓일 때 한순간에 급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