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많은 볼거리와 먹을거리들로 인해 해마다 수 천만 명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마드리드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작은 무대 위에서 정열적으로 춤을 추는 집시여인이나 빨간 천을 흔들며 소와 싸우는 투우사의 모습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이런 상징적 이미지는 마드리드 시민들에게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플라멩코와 투우의 도시라는 명성은 20세기 뒤안길로 밀어 넣고 21세기에는 `축구의 도시`로 불리기를 그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 이유는 세계 최고의 명문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가 그들 옆에서 늘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팬들에게도 아주 친숙한 레알 마드리드는 1902년 3월 18일 창단되어 100년 넘게 어려운 역경을 딛고 스페인 최고의 명문 클럽으로 성장했다. 스페인의 프리메라 리그는 영국 프레미어 리그, 이탈리아 세리에 A와 함께 세계 3대 빅 리그로 오랜 시간동안 마드리드 시민들의 열광적 성원에 힘입어 발전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각 나라의 대표 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비던 간판스타들이 레알 마드리드 팀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스페인 클럽 축구의 명가를 이루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명단만 봐도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클럽임을 알 수 있다. 스페인 출신의 최고 공격수 라울과 모리엔테스 그리고 노장의 투혼을 발휘한 주장 이에로, 축구황제 호나우도와 왼발의 달인 카를로스(이상 브라질), 포르투갈 영웅 루이스 피구와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르네 지단(프랑스) 등 더 이상 그들의 이름을 나열하지 않아도 레알 마드리드 팀의 멤버들은 화려한 개인기와 명성으로 마드리드 시민들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팬들로부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랍인의 자취가 남아 있는 마드리드
광적 열기로 가득 찬 마드리드는 축구뿐만 아니라 정치.경제.교육.문화의 중심지이자 철도.도로.항공의 요충지로서 스페인 수도로서 전혀 손색이 없는 곳이다. 사실 이 도시는 10세기 톨레도의 이슬람 왕국을 방어하기 위해 무어인이 세운 성채에서 출발한 곳이다. 도시의 명칭인 마드리드(Madrid)는 바로 성채를 뜻하는 아랍어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중세시대 톨레도가 스페인의 수도로서 역할을 했다면, 1561년 펠리페 2세가 강력한 그리스도교 왕국을 재건하기 위해 국토 중심에 위치한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겼다고 한다. 인구 400만 명으로 유럽 4대 도시 중의 하나인 마드리드는 이베리아 반도 한가운데 위치하며 해발 635m의 높은 곳에 자리한 수도이다. 19세기 이전까지 톨레도나 바르셀로나에 밀려 그리 발달하지 못했으나 17~18세기가 돼서야 비로소 구시가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인구가 급증하면서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근대산업화가 진행되었다. 지금은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와 함께 최고의 신흥도시로 성장했다.
▲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 (위 사진)와 <옷을 입은 마하> . 옷을> 옷을>
■스페인의 최대 자랑거리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여행에서 꼭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프라도 미술관이다. 이 곳은 스페인 3대화가로 명성을 날렸던 엘 그레코.벨라스케스.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이 전시되어 마드리드의 옛 모습과 그 당시 귀족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이방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엘 그레코의 <그리스도의 세례> 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이 아닌 고야의 작품 <1808년 5월 3일>(1809년)과 <전쟁의 참화> (1810-1814년)이다. 이 그림들은 고야의 강한 민족애와 저항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1808년 5월 3일> 은 1808년 5월 2일 마드리드에서 프랑스에 대항에 시민저항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다음날 프랑스군이 총칼로 시민들을 살해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 이외도 고야는 프랑스 파리지엔처럼 스페인의 멋진 여성을 뜻하는 `마하`를 종종 캔버스에 담았다. 그 중 <옷을 벗은 마하> (1798~1805년)는 200년 전 마드리드 여성들의 미모와 세련미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이태훈 여행작가
▲ 레알 마드리드 홈경기장에 있는 축구 박물관 내부.
▲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의 신화를 일궈낸 거스 히딩크도 잠시 동안 마드리드팀을 맡았다. 사진에서 오른쪽에서 두번째.
▲ 17세기부터 19세기 전반까지 마요르 광장은 각종 공연장, 마녀재판과 사형집행장, 왕가의 결혼행사장, 투우장 등 다양하고 이채로운 행사의 장으로 이용되었다. 옷을> 전쟁의> 시녀들>그리스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