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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여제' 김가영 "3쿠션 선수의 길, 이제 시작일 뿐…조금씩 더 성장하고 있다" [IS 인터뷰]

“제 나이에 ‘시작’이라는 말,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당구 여제’ 김가영(41·하나카드)은 자신의 3쿠션 커리어를 ‘시작’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프로당구 남·여 최초의 4회 연속 우승에 최다 우승(11회), 그리고 최다 연승(24연승) 신기록까지. 2019년 프로당구 출범 이후 그야말로 새 역사를 거듭 써 내려가고 있는데도, 3쿠션 선수로는 스스로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최근 경기도 고양시의 개인 연습실에서 만난 김가영은 “3쿠션 선수로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3쿠션을 제대로 친 지 이제 3~4년 정도밖에 안 됐다. 그래서 사실 아직 목표도 없다. 포켓볼은 너무 잘 아는 종목이니까 계획이 그려졌다면, 3쿠션은 아직 청사진을 못 그리겠다. 그저 선수로서 올인할 뿐”이라고 말했다.그러면서 김가영은 “이 나이에 성장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좀 그렇지만, 3쿠션 선수로 조금씩, 또 한 스텝씩 잘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김가영 천하’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의 프로당구 3쿠션 무대에서 눈부신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지만 최정점에 오른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써 내려가고 있는 프로당구 3쿠션 대기록들은 그래서 더 대단하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기대감 역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4구 2000점' 목표로 시작된 김가영의 당구 인생실제 30년 가까운 김가영의 당구 인생에 3쿠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영하던 당구장에서 자연스럽게 당구를 접했다. 처음 접한 건 4구였다. 김가영은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다. 아버지께 매일 1~2시간씩 레슨을 받았다. 400~500점을 치면서 2000점을 목표로 삼았다. 특기 정도로 만들어놓으려 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목표가 바뀌었다”고 했다.당시 한국계 미국인 포켓볼 선수 자넷 리(미국)의 방한이 화제가 되고, TV 광고도 찍는 걸 보면서 자연스레 김가영의 시선이 쏠렸다. 공부보다 당구에 더 흥미를 느끼며 당구 선수의 길을 고심하던 그는 4구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포켓볼 선수로 전향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포켓볼 선수로 정식 등록해 본격적으로 당구 선수의 길을 걸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김가영은 “사실 당구 재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비교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처음 선수로 등록했을 때 바로 윗 선배도 20대 중반이었다”며 “자넷 리를 보면서 미국에서 프로 하면 되게 좋은가 보다라는 막연한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4구 2000점에서 포켓볼 세계 챔피언으로 목표가 바뀌었다”고 했다.본격적으로 당구 선수의 길을 걸으면서 혹독한 훈련도 받았다. 유도선수 출신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일반 남자 운동부처럼 매일 훈련했다. 오전에는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낮에는 수업을 받았다. 오후에 당구 훈련을 하다 훈련이 끝나면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여중생인 김가영에게는 특히나 힘든 시간들이었다.김가영은 “제 인생에서 제일 고통스러웠던 5년이었다. 훈련을 혼자 다 버텨내야 하니까 기댈 곳도 없었다”며 “남자 선수들도 그렇게 안 하는데, 매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뛰거나 사이클을 타야 했다. 꾀를 부리거나 성실하지 않으면 혼도 났다. 당시엔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매일이 괴로웠다”고 돌아봤다.그러면서 김가영은 “다들 1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절대 아니다.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서도 “다만 결과적으로 당시 경험들은 뒤에 있었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발판이자 밑거름이 됐다. 어떤 일을 겪더라도 그때보다는 고통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켓볼 세계 챔피언에게 찾아온 첫 번째 시련혹독한 훈련 속 김가영은 각종 대회를 휩쓸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대만 국적이던 아시아당구연맹 회장의 권유로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만 무대로 향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만행을 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김가영은 “(처음 제안을 받고)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고된 훈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하나, 그리고 또 하나는 류신메이(대만)라는 선수의 존재였다”며 “유일하게 테크닉에 반했던 선수이자 우상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쯤 만났을 때, 단 한 번의 실수로 역전패를 당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 있으면 1년에 한 번을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다. 그래서 대만에 가서 다시 붙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갈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언어도 통하지 않는 혹독한 환경 속 김가영은 오롯이 포켓볼로 승부했다. 남다른 승부욕 속 류신메이에게는 설욕도 성공했다. 대만 진출 이후 6개월 만에 처음 류신메이를 이겼고, 1년 정도 지난 뒤엔 승률이 비슷해졌다. 2년 가까이 된 시점엔 오히려 류신메이보다 승률이 더 높은 선수가 됐다. 세계 챔피언의 영예도 안았다. 2004년과 2006년 잇따라 우승해 세계랭킹 1위 자리까지 올랐다. 세계 최초로 포켓볼 그랜드슬램의 역사도 썼다.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도 나섰다. 2006 도하(카타르) 아시안게임에 나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가영은 “아시안게임 전에 한 나라에서 귀화 제의도 받았다. 훨씬 좋은 조건이었는데 한 마디로 잘랐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딸 기회 역시 신청조차 안 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고 했다.그러나 대만에서 김가영은 결국 외국인 선수였다. 김가영의 실력이 급증한 건 곧 대만 당구계의 시기와 질투로 이어졌다. 특히 도하 아시안게임 직후엔 황당한 이유로 대만당구협회로부터 자격정지 징계까지 받았다. 대만과의 경기에서 한국 선수단의 요청으로 잠시 통역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김가영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아시안게임 때 통역이 따로 없었다. 한국과 대만의 경기 도중 한국 남자 선수들이 판정과 관련해 나에게 통역을 요청해 한국 선수들의 입장을 대신 통역해 준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심판 판정은 대만 선수에게 유리하게 나왔다”며 “그런데 그 판정 이후 승부가 뒤집혔다. 경기가 끝난 뒤 대만 당구계의 모든 화살이 돌연 나한테 돌아왔다. 결국 자격정지 2년의 징계를 받았다”고 했다.이어 김가영은 “대만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수들이 누구도 나를 돕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현지 기자들도 내가 말한 것과는 다르게 보도했고, 인격모독성 내용까지 담겼다. 대만당구협회장에게 항의했지만, 결국 화살을 나한테 돌려야 자기들이 산다고 했다. 심지어 해외에서 이런 일을 겪고 있는데 대한당구연맹에서도 도와주지 않았다. 양쪽에 다 배신감을 느낀 것”이라고 했다. 자격정지는 6개월 만에 풀리긴 했지만, 마음의 상처는 깊었다. 포켓볼 선수에게 내려진 사실상 사형선고대만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한 뒤 김가영은 미국과 한국 등을 오가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포켓볼 세계 최정상의 자리도 굳게 지켰다. 그러다 지난 2019년, 또 한 번의 시련이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대한당구연맹의 ‘영구 제명’ 징계였다. 당시 새로 출범한 프로당구협회(PBA)의 초청을 받아 3쿠션 대회에 참가했다는 게 중징계의 이유였다.김가영은 “당시 와일드카드를 통해 단 한 번 PBA 3쿠션 대회에 참가했다. 그렇다고 PBA에 정식 가입한 것도 아니어서 서류상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한당구연맹에서는 ‘영구 제명’ 징계를 내렸다. 음주운전을 해서 사고를 낸 것도, 당구계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그런 중징계를 내려진 것”이라고 했다.당시 새로 출범한 PBA와 대한당구연맹 간 ‘대립’의 본보기 징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김가영도 “‘PBA로 가면 김가영조차 제명’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선수들이 PBA로 가지 못하도록 내린 징계였다고 본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몇 번 우승을 했든, 국위선양을 얼마나 했든 본보기로 징계를 내린 것”이라고 했다.특히 당시 PBA 3쿠션 대회에 참가한 것 역시도 그저 포켓볼과 나아가 한국 당구의 발전을 위한 결정이었던 터라, 김가영이 느낄 배신감과 허탈감은 더 컸다.김가영은 “포켓볼을 더 부흥시키고 발전시키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쫓겨난 셈이다. 그때 대회에 참가한 것도 3쿠션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직 ‘당구 선수들을 위해서는 프로가 생겨야 한다’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며 “프로가 생겨야 당구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고, 그래야 선수들이 갈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당구연맹은 아마추어 단체라 (선수들의 생활엔) 큰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이어 김가영은 “그동안 프로당구를 만들겠다는 단체들이 몇 번 있었지만 미심쩍었다. 하지만 PBA는 준비 과정이 믿을 만했다. 첫 대회인 만큼 대회 인지도가 있는 내가 참가해 힘을 실어주자는 생각이었다”며 “PBA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켓볼 역시 프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프로가 생겨야 당구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나중에 포켓볼 종목에도 나쁜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그런데도 돌아온 건 ‘영구 제명’이었다. 이 징계로 김가영은 포켓볼 선수로서 국내 대회 참가는 물론 국제 대회 참가의 길까지 모두 막혔다. 평생을 포켓볼만 해온 김가영에겐 사실상 사형선고였다. 김가영의 등록 말소와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할 만큼 이슈가 됐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김가영으로선 자신의 선수 생활의 위기만큼이나 후배 선수 등 포켓볼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더 안타까웠다.그는 “후배 등 포켓볼에 종사하고 계시는 선수분들이나 관계자분들에게는 마음 한편에 미안한 감정이 있다. 내가 배신한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면서도 “언젠가는 돌아갈 거다. 포켓볼 선수로 돌아간다거나 대한당구연맹에 가겠다는 게 아니라, 포켓볼을 위해 내가 뭔가 할 일이 있을 때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포켓볼 쪽에 꾸준히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은퇴 기로에서 결심한 3쿠션 선수의 길대한당구연맹의 영구 제명 징계는 김가영의 인생 계획도 바꿔놨다. 사실 김가영은 포켓볼 선수 이후 지도자의 길을 준비하던 참이었다. 그는 “원래 마흔 살 정도까지만 선수 생활에 집중하고, 40대 초반부터는 지도자를 할 생각이었다. 대학원에 다닐 때 지도교수님께서도 ‘경기력도, 이론도 잘 돼 있는 사람이 체육계에서 인정받는다, 너는 가능하지 않느냐’고 해주셨다. 지도자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도 포켓볼 강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지도자를 준비하려다 제명 징계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김가영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였다. 계획보다 더 이른 포켓볼 지도자의 길, 그리고 3쿠션 선수로의 전향이었다. 포켓볼과 3쿠션은 엄연히 다른 종목인 데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 종목으로 전향한다는 것 그야말로 큰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오랜 고민이 필요했던 이유였다.김가영은 “결정하는 데까지 정말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고민이 많았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뭘 다시 시작한다는 건 상상도 안 해본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될까’ 싶기도 했다. 초보자 때의 기억과 느낌도 없었다. 포켓볼과 3쿠션은 큐 길이나 굵기, 공 크기, 당구대 높이 등 모든 게 다르다. 포켓볼을 칠 땐 최소한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게 나를 지탱해 줬다면, 3쿠션은 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서도 “그래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한 번 해보자’라는 결심이 섰다. 생판 모르는 걸 새로 시작하는 거니까 지도자와 병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을 그만두고, 3쿠션 선수의 길을 걷기로 했다”고 말했다.3쿠션 전향 첫 시즌 6차 대회부터 첫 우승을 차지하며 화제가 됐다. 다만 두 번째 시즌엔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첫 시즌 우승 역시 ‘반짝 우승’으로 비쳤다. 김가영은 “첫 시즌에 왜 우승했는지도 모르고, 사실은 할 실력도 아니었다. (초창기다 보니)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수준이 높지 않았고 운도 좋았다”면서 “두 번째 시즌에 혼란기가 왔다. 처음엔 그냥 열심히나 치자고 했다면, 3쿠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더 어렵게 느껴지고 혼란이 오면서 여러 가지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초반에 운이 좋게 포켓볼 스타일로 성적을 냈다면, 두 번째 시즌이 진짜 내 실력이었던 것”이라고 돌아봤다.그래도 ‘선수로서의 경험’이 많은 게 큰 도움이 됐다. 김가영은 세 번째 시즌부터는 매 시즌 2회씩 정상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3쿠션에 적응을 마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번 시즌엔 무려 4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프로당구 새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24연승을 달성하며 프레데리크 쿠드롱의 기록을 넘어 프로당구 남·여 투어 최다연승 신기록까지 썼다. 평생을 포켓볼을 치다 3쿠션에 전향한 지 5년도 채 안 돼 이뤄낸 눈부신 성과들이었다.김가영은 “선수 경험이 많았던 게 컸던 거 같다. 3쿠션에 대한 경험은 적어도, 승부사나 경기인으로서의 경험은 남녀 통틀어도 손가락 안에 들 거다. 곧 있으면 선수 생활만 30년 차가 되는데, 그 경험을 완전히 무시는 못 하는 거 같다. 공의 원리에 대한 이해도나 공을 다루는 건 아무래도 습득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이어 “4회 연속 우승 등 이번 시즌 성적이 좋은 이유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3쿠션에 올인한다고 했을 때나 지금이나 훈련량이나 루틴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수정하거나 뒤집어엎은 것도 없다. 조금씩 루틴을 수정하고 조절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처음 3쿠션을 시작할 때와 똑같다”며 “그저 한 스텝씩 잘 성장해 나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웃어 보였다.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김가영이 따라 걷는 레전드의 길지도자까지 준비하며 청사진을 그려가던 포켓볼과 달리, 김가영은 아직 3쿠션 선수로서 목표나 향후 미래를 그리지는 못했다. 김가영은 “포켓볼은 너무 잘 아는 종목이니까 전체적인 계획이 그려지는데, 3쿠션은 아직 안 그려진다. 사실 몇 살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포켓볼과 달리 3쿠션은 선수 생명이 길다. 앞으로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계속 올인할 뿐”이라고 했다.그래서 더더욱 체력 등 자기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오프시즌 때는 당구 훈련보다 체력을 기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김가영은 “오프시즌 때는 한 시즌을 잘 치르기 위해 체력 훈련에 신경을 쓴다. 당구 연습보다 운동을 더 많이 할 정도다. 그때 몸을 만들어놓고, 시즌이 시작되면 몸을 유지하는 정도로만 운동을 한다. 오프시즌 때는 필라테스와 웨이트를 많이 한다”고 했다.여기에 틈틈이 정신적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취미 생활도 잊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프리다이빙’에 빠졌다. 김가영은 “동호회는 처음 가입해 봤다. 경기 때 다이버 분들이 응원 피켓을 들고 경기장에 와주신다. 사회 생활하면서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좋은 분들을 만났다. 서로 윈윈(Win-Win)하고 있다. 당구장 평생 안 가보신 분들이 이제는 당구룰을 꿰고 계신다. 반대로 당구 선수들은 저 때문에 프리다이빙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말했다.이어 “프리다이빙에 당구에 도움이 되는지 결론은 못 냈다. 다만 확실히 느끼는 건 있다. 열이 받거나 하던 게 잘 될 때, 긴장될 때 숨이 가빠지지 않나. 당구칠 때 역시도 호흡이 가빠지거나 흥분하면 안 된다. 호흡을 가라앉히는 게 좋은데, 프리다이빙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다. 기분 탓일 수도 있다”며 “취미 생활을 할 땐 갈 때부터 기분이 좋다. 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구를 치거나 훈련할 땐 ‘늘 잘해야 돼, 실수하면 안 돼’ 이런 마음이라면, 취미를 할 때는 ‘재미있게 놀자, 못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간다. 스트레스도 풀리고, 다칠 일도 없다. 나쁠 게 없는 거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건강하면 자기 관리는 끝”이라고 웃어 보였다.이처럼 김가영이 당구 실력뿐만 아니라 체력 등 자기 관리에 더욱 집중하는 이유가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했지만, 결국은 오랫동안 꾸준히 잘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에서다. 여기에는 김가영이 유독 마음속에 담고 있는 레전드의 조언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포켓볼 레전드 앨리슨 피셔(영국)가 김가영에게 직접 건넸던 조언이다.김가영은 “예전에 피셔에게 ‘나도 당신처럼 레전드가 되고 싶다’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 잠깐 잘하면 그건 반짝 스타’라고 답해줬다. 그게 되게 기억에 많이 남았고, 지금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오랫동안 잘하는 게 결코 쉽지가 않다. 다행히도 선수 생활을 하는 28년 동안 우승을 못한 해는 1~2년 정도밖에 안 된다. 그건 운이 아니라 제 노력의 결과였다. ‘오랫동안 잘하면 된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노력하고 있는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당구 여제' 김가영이 걸어가고 있는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고양=김명석 기자 2024.11.22 16:22
드라마

정유미·서현진·공효진, 멜로+α로 대거 복귀

이름만 들어도 설렌다. 배우 정유미, 서현진, 공효진이 잇따라 복귀한다. 로맨틱 코미디, 미스터리 멜로, SF 로코 등 각기 다른 장르로 다른 매력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들 작품 모두 로맨스적 요소가 바탕에 깔린 이야기로, 그동안 멜로·로코 장르에서 고유의 매력으로 사랑받은 세 배우의 복귀는 자체로 기대감을 높인다.가장 먼저 돌아오는 건 정유미다. 정유미는 23일 첫 방송하는 tvN 새 토일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에서 주지훈과 로코 호흡을 맞춘다.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는 원수의 집안에서 같은 날 같은 이름으로 태어난 남자 석지원(주지훈)과 여자 윤지원(정유미)이 18년 만에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그린다. 정유미가 연기하는 윤지원은 고등학교 시절 ‘독목고 미친개’로 불리던 창의체험부 소속 체육 교사로, 독목고 이사장인 석지원 역의 주지훈과 혐관 로맨스를 보여줄 예정이다. 앞서 정유미는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2012’, ‘연애의 발견’ 등 로코 장르에서 남다른 존재감으로 ‘윰블리’라는 별명까지 얻은 바 있다. 근래엔 넷플릭스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 영화 ‘82년생 김지영’, ‘잠’ 등 장르물 또는 진중한 분위기의 작품에서 활약했는데, 이번엔 오랜만에 전문 분야인 로코 연기를 볼 수 있어 벌써 관심이 뜨겁다. 이전 로코 작품과 다른 모습도 예고했다. 정유미는 제작발표회에서 “주열매(로맨스가 필요해 2012)와 한여름(연애의 발견)은 연애 경험이 많았지만 윤지원은 연애 경험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다르다. 아직 로맨스 코미디로 보여드릴 게 많이 남았다”고 기대를 당부했다. 서현진은 오는 29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시리즈 ‘트렁크’로 복귀한다.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로 인해 밝혀진 비밀스러운 결혼 서비스와 그 안에 놓인 두 남녀의 이상한 결혼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멜로​다. 서현진은 기간제 결혼을 매칭해주는 회사 NM의 소속 직원 노인지를 연기한다. 서현진은 공유와 메뉴얼과 계약으로 맺어진 ‘기간제 부부’ 연기를 펼칠 예정이다.특히 ‘트렁크’는 계약으로 얽힌 두 주인공의 사랑, 연민, 구원, 집착, 욕망 등 감정과 관계에 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서현진의 섬세한 멜로연기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표작 ‘또 오해영’에서 서현진은 사랑에 상처받은 인물의 내면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특유의 도시적이면서도 처연한 느낌이 이번 작품의 미스터리하고 쓸쓸한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기대감을 자아낸다.공효진은 결혼 후 첫 복귀작으로 내년 1월 방영하는 tvN 새 토일드라마 ‘별들에게 물어봐’를 선보인다. ‘별들에게 물어봐’는 무중력 우주정거장에서 일하는 보스 이브(공효진)와 비밀스러운 미션을 가진 불청객 공룡(이민호)의 지구 밖 생활기를 그린다. 국내 최초로 우주정거장을 배경으로 한 SF 로코다. 극중 이브는 한국계 미국인, 최고의 우주비행사,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로, 공효진은 전문 직업인의 철저함을 연기할 예정이다. 아직 작품의 구체적인 정보가 알려지진 않았으나 그간 수많은 로코 작품에서 사랑스럽고 인간적인 에너지를 보여줘 온 공효진이 우주라는 낯선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해 낼지 궁금증을 높인다.세 배우귀는 멜로·로코 장르에서 남다른 활약을 보이며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데다 20, 30대를 넘어 40대에 접어든 현재까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성수 대중문화 평론가는 “과거와 달리 중년 배우들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의 폭이 넓어졌다. 시청자 역시 꼭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만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세 배우 모두 수많은 경험을 통해 연기적으로도 내적으로 성숙해진 상태고 작품을 보는 눈도 정점에 도달해 있다.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각자의 독특한 색깔을 갖고 있는 배우들이기 때문에 동시기에 복귀하더라도 서로가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짚었다.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멜로나 로맨스 장르는 그 자체만으로는 시청자들이 챙겨보고 싶어지는 작품이 되긴 어렵다. 그걸 보완하는 데 있어서 캐스팅이 굉장히 중요하다. 흔히 말하는 ‘믿고 보는 배우’들을 캐스팅했기에 기본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끌고 가는 힘이 있는 작품들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강주희 기자 kjh818@edaily.co.kr 2024.11.22 05:35
OTT

‘파친코2’ 강태주 “노아, 이렇게 갈망했던 역할은 처음” [IS인터뷰]

“이렇게까지 갈망하고 열망했었던 역할은 처음이었어요. 노아 역에 캐스팅됐을 때 정말 너무 기뻤죠.”배우 강태주는 ‘파친코2’에 합류하게 된 순간을 이렇게 말했다. 오디션만 3개월 동안 진행했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또 2개월. 노아 역을 얻기 위해 무려 5개월이라는 지난한 캐스팅 과정을 거쳤다. 강태주는 최근 일간스포츠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정말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후회 없이 열심히 준비했고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이상을 보여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분하게 기다렸다”며 웃었다.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2’는 해방 전후 한반도를 떠나 일본과 미국에 정착한 한인 이민 가족의 4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았다. 전세계적으로 주목받은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2022년 3월 시즌1에 이어 올해 시즌2가 공개됐다.강태주는 극 중 주인공인 선자(김민하)와 고한수(이민호) 사이에서 태어난 백노아를 연기했다. 고한수는 선자를 임신시키고도 책임지지 않으며, 선자는 이후 목사 백이삭(노상현)과 결혼한다. 이에 노아는 아버지를 백이삭으로 알고 성장하는데, 언제나 선자 주변을 맴돌고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는 고한수에 대해 묘한 경계심과 궁금증을 동시에 느낀다. 강태주는 “노아는 쉽지 않은 캐릭터였고 그 내면에 있는 혼란스러움과 걱정, 부담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이야기했다.“노아가, 고한수가 아빠라는 걸 알고 있는 건지 모르는지도 잘 모르겠었어요. 수 휴 쇼러너(각본 및 총괄 프로듀서)와 감독님에게 ‘너무 헷갈린다’고 이야기했는데, 다들 ‘너가 지금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게 정답이야’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느끼는 혼란을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강태주는 “노아가 가진 성격이 저와 너무 비슷하다”며 꼭 배역을 맡고 싶었다고 말했다. 노아는 아버지(라고 알고 있는) 이삭의 착하고 올곧은 성품을 닮으려고 노력하면서 가난 속에서 가족들을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밤새워 공부해 와세다 대학에 들어간 책임감 강한 장남이다. 동시에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기도 한 복잡다단한 인물이다.“노아의 고민이나 내면의 불안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모습이 제가 언젠가 했었던 고민이고 생각이기에 그런 정서를 꼭 전달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중학교 때부터 일본어 공부를 오랫동안 해왔는데, 일본어로 연기할 수 있는 역할이어서 꼭 하고 싶었죠.”강태주는 특히 기억에 남는 시청자 반응에 대해 “‘고한수의 얼굴에 이삭의 영혼이 들어있다’는 반응이 기억난다”며 “사실 이민호 선배님도 저도 다 진하게 생긴 편이고 제가 노상현 선배님과 닮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이삭을 닮고 싶어 한 노아의 모습이 작품에 잘 표현된 것 같았다. 신기했다”고 말했다. 강태주는 이 작품에서 1995년 동갑내기인 김민하와 모자 호흡을 맞춰 눈길을 끌었다. 이에 대해 “작품을 보면서 동갑이라고 느끼셨냐”고 되물은 강태주는 “관객분들이 엄마 아들로 봐주실지 저희도 처음엔 걱정이 되게 많았다. 김민하가 선자를 너무 잘 해서 저는 그냥 따라가기만 했었다”고 말했다.“평소에 ‘태주야’, ‘민하야’ 하면서 웃고 떠들다가 슛 들어가면 바로 감정 잡고 연기해요. 배우로서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정말 짜릿한 순간이었어요. 저희가 항상 감정신이 많았는데, 그런 것들이 쌓여서 나중에는 진짜 눈만 봐도 눈물 날 정도로 깊은 유대관계가 생긴 것 같아요.” 군 제대 후 연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강태주는 수많은 오디션에서 낙방한 끝에 지난해 6월 개봉한 영화 ‘귀공자’로 데뷔했다. 강태주는 “어릴 때부터 저를 표현하고 남들 앞에서 발표하고 능동적으로 해나가는 일들을 좋아했었던 것 같다. 대학 진학 후 모델 일을 조금 하다가 ‘자기표현의 끝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을 때 연기가 떠올랐다”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연기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그런 그에게 ‘파친코2’는 앞으로도 연기를 계속할 수 있게 자신감을 준 작품이다. 강태주는 인터뷰가 끝나가는 시점에도 “‘파친코2’는 앞으로도 절대 못 잊을 작품”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파친코2’는 ‘이제 난 배우로서 계속 살아가야겠구나’라는 계기가 된 작품이에요. 운명처럼 노아를 만났고, 촬영하면서 너무 행복했고 지금도 그래요. 긴 여운과 감동을 드릴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시청자분들도 천천히 노아의 여정을 같이 가주셨으면 좋겠어요.”강주희 기자 kjh818@edaily.co.kr 2024.10.28 05:55
영화

선자, 시골 처녀에서 엄마로…‘파친코2’ 김민하, 더 강한 울림 [RE스타]

배우 김민하가 ‘파친코2’에서 더욱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연기로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시즌1에서의 어떤 고난에도 꺾이지 않는 단단함을 이어가되 엄마가 된 선자의 모성애를 탁월한 연기로 그려냈다.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해방 전후 한반도를 떠나 일본과 미국에 정착한 한인 이민 가족의 4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룬다.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으로, 2022년 3월 시즌1이 공개됐고 약 2년 만인 지난 8월 시즌2가 공개됐다. 김민하는 극 중 부산 영도에서 태어난 시골 처녀 선자를 연기했다. 시즌1에서는 선자가 새로 온 생선 중개상 고한수(이민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임신과 출산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나 사실 고한수는 이미 일본 여성과 결혼하고 딸도 있는 유부남이었고, 선자는 졸지에 미혼모가 될 위기에 처한다. 이때 다행히 선자를 눈여겨보던 목사 백이삭(노상현)이 선자의 그런 사연을 결혼을 하자고 했고, 그런 두 사람이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아이를 낳고 정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시즌2의 시작이다.주목되는 것은 시즌1과 시즌2에서 달라진 김민하의 연기 톤이다. 시즌1에서 세상 물정 몰랐던 시골 처녀가 예기치 못한 사랑에 빠져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모습을 그렸다면, 시즌2에서 김민하는 두 아들의 엄마로서 애틋한 모성애를 보여준다. 남편 백이삭이 일본에서 몰래 노동운동을 하다가 경찰에 잡혀가면서 선자는 두 아들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는데, 오사카 시장 한 구석에서 생계를 위해 김치와 국수를 팔며 꿋꿋이 생을 살아낸다. 김민하는 이런 선자의 모습을 흔들리지 않는 눈빛과 확신에 찬 대사로 표현, 시즌1과는 다른 캐릭터의 변화를 탁월하게 구현했다. 김민하는 시즌2 공개 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시즌1에서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했다”며 “아들과의 관계도 많이 나오는데 시즌1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모성애를 표현하려고 했다. 가족과의 관계성에서 오는 성장을 중점에 뒀다”고 전했다.백이삭이 죽은 후 선자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고한수와의 묘한 관계에서 오는 긴장감도 ‘파친코2’의 재미를 만들었다. 선자는 처음 부산에서 고한수에게 강력한 사랑에 빠졌던 것처럼, 시간이 흐른 후에도 역시 그에게 끌리지만 이를 거부하며 남편과 아들들에 대한 신의를 지키려 한다. 김민하는 고한수를 대하는 선자를 때론 생계를 위해 매달리면서도 때론 매몰차게, 때론 과거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며 행복했던 때로 돌아간 듯한 모습으로 다채롭게 표현했다.김민하는 2016년 웹드라마 ‘두여자 시즌 2’로 데뷔했다. 이후 ‘학교 2017’, ‘검법남녀’,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파친코’ 시리즈를 통해 단숨에 주목받았다. 차기작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먼저 오는 12월 미스터리 장르인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조명가게’를 선보인다. 내년에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인 영화 ‘폭로: 눈을 감은 아이’,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을 통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김민하는 시즌2에서도 선자가 많은 고난에 처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어떤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인상적인 연기로 보여줬다”며 “김민하는 많은 대사보다는 분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준비된 내면 연기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에 앞으로의 연기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고 짚었다.강주희 기자 kjh818@edaily.co.kr 2024.10.15 05:55
뮤직

김장훈, 데뷔 첫 日 공연…교토국제고 우승 축하

가수 김장훈이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우승을 기념해 축하 공연을 펼친다. 김장훈은 오는 12월 17일 일본 교토에 위치한 한국계 민족 학교인 교토국제고등학교를 찾아가 제106회 일본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우승을 축하하는 기념 공연을 진행한다. 김장훈이 일본에서 공연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공연에는 교토국제고 학생들과 가족들, 지역 인사 및 교토국제고 후원인들이 관객으로 초청되며, 공연을 더욱 빛내기 위해 밴드 한국사람이 함께 한다.교토국제고는 지난 8월 일본 내 최대 규모의 고교 스포츠 행사인 여름 고시엔에서 기적적인 우승을 차지하며 재일동포와 한국 국민들에게도 짜릿한 감동을 안겼다. 당시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우승 직후 한국어로 된 교가로 피날레를 장식했고, 이 모습은 현지 공영방송인 NHK를 통해 일본 전국에 생중계돼 화제를 모았다.김장훈도 당시 SNS를 통해 “NHK 방송에 동해바다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감회가 독특하다. 제 개인적으로, 살아온 모든 삶의 스포츠 사건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소식이다. 기적 같은 일이다. 4441개의 고교 팀 중에서 전설의 고시엔 대회 결승에 한국 학교가 올라오다니”라며 감격을 표한 바 있다.이어 올 연말 김장훈과 교토국제고 학생들과의 만남이 성사되면서, 역대급의 축하 공연과 더불어 재일한국인 학생들에게 잊지 못할 다채로운 추억을 선사할 예정이다. 문화예술을 매개로 일본 현지에 한국과 K-공연을 알리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2024.09.19 22:03
금융·보험·재테크

하나금융, '몬테레이 사무소' 개소 멕시코 영업망 확대

하나금융그룹이 멕시코 지역에서 영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5일 하나금융에 따르면 지난 3일(현지시간) 멕시코 북동부 지역 대표 산업도시인 몬테레이에 하나은행 멕시코법인 산하 첫 영업채널을 개소했다. 이번 ‘몬테레이 사무소’ 개소로 멕시코 북동부 누에보 레온 지역에 진출한 한국계 자동차부품 회사 등 기업손님과 교민은 물론이고 현지 손님도 하나은행 멕시코법인의 금융 상품·서비스를 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신속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이날 개소식 행사에는 이은형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을 비롯해 허태완 주멕시코 대한민국 대사, 호세 라몬 카날레스 마르케스 멕시코 금융위원회(CNBV) 부위원장, 엠마누엘 루 누에보 레온 주정부 차관 등이 참석했다. 이은형 부회장은 “하나금융그룹은 2019년에 멕시코에 진출함으로써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함과 동시에 멕시코 경제·금융 발전에 이바지하고, 현지 지역사회와 손님의 성장에 기여하는 동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멕시코 북동부 지역에 한층 더 강화된 금융 소통 창구인 몬테레이 사무소를 통해 현지 손님들이 더 가까운 곳에서 차별화된 금융서비스를 제공받아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펼쳐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또 하나금융그룹은 몬테레이 사무소의 개소를 기념해 멕시코 자선교육기관인 ‘찰코 소녀의 집’ 학생들에게 공학용 계산기 200개를 기증하는 시간도 가졌다.‘찰코 소녀의 집’은 1964년 한국에서 창설된 마리아수녀회가 1991년 멕시코 찰코 지역에 세운 기숙학교다. 학업의 의지는 강하나 가정 형편 등이 여의치 않은 여학생들을 멕시코 전역에서 선발해 중·고등학교 과정을 전액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한편 하나금융그룹은 국내 금융그룹 중 최다인 전 세계 26개 지역 220개 채널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고, 폴란드와 인도 등에서 채널 확대를 추진 중이다.김두용 기자 k2young@edaily.co.kr 2024.09.05 11:30
일본야구

열도를 달군 여름 고시엔의 인기, "꿈의 무대" 강타한 교토국제고 [IS 포커스]

"꿈의 무대."나카무라 타케시 KIA 타이거즈 1군 배터리 코치가 지난 23일 막을 내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甲子園·여름 고시엔)를 두고 한 말이다.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의 창단 첫 우승으로 끝난 이번 제106회 여름 고시엔 결승전 관중은 무려 3만6000명이었다. 일본 열도가 들썩였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나카니시 카즈미 전 SK 와이번스 2군 매니저는 여름 고시엔의 인기 비결 중 하나로 '희소성'을 꼽았다. 추쿄대학교 부속 추쿄고등학교 3학년 재학 시절 여름 고시엔 8강까지 경험한 카즈미는 "일본은 지역 야구 대회가 많지만, 전국 대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며 "(대표적인 전국 대회가) 3월에 열리는 봄 고시엔과 최근 막을 내린 여름 고시엔이다. 이 중 각 지역의 1등만 참가하는 여름 고시엔의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 올여름 고시엔은 일본 광역자치단체인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의 1등(총 47개교)과 지역이 큰 홋카이도와 도쿄도의 경우 추가로 1개씩, 총 49개 팀이 본선에 올랐다. 반면 봄 고시엔은 대회 출전 학교를 선정위원회에서 정하는 데다 본선 진출 팀도 도도부현 수보다 적은 32개에 불과했다. 지역 1위라도 본선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주목도가 여름 고시엔보다 떨어진다. 교토국제고는 결승에서 도쿄도 대표 간토다이이치고를 연장 접전 끝에 2-1로 꺾었다. 중·고교생 학생 수가 160명가량인 소규모 한국계 학교가 일궈낸 '기적'이었다. 일본 지역 매체 교토신문은 '교토국제고는 산기슭 근처에 위치해서 부지가 좁다. 야구부 운동장은 좌익수 67m 우익수 60m로 짧다. 외야 수비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연습 경기도 쉽지 않다. 이런 핸디캡을 최신 이론을 접목한 훈련과 실전을 가정한 훈련으로 극복했다'라고 조명했다.와타나베 마사토 SSG 랜더스 1군 수비 코치는 "일본에는 정말 많은 고등학교가 있다. 전통적인 강팀과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강팀이 갑자기 나타나 다양한 재미를 준다"며 "처음 보는 학교의 새로운 선수, 처음 듣는 교가처럼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져서 (여름 고시엔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토 고지 두산 베어스 작전 코치는 "(여름 고시엔은) 실력이 있어도 우승하기 힘든 대회다. 교토국제고는 정말 큰 일을 해냈다"라고 축하했다.여름 고시엔의 의미는 상당하다. 다치바나 요시이에 삼성 라이온즈 1군 타격 코치는 "(중학생 선수는) 어느 고교로 진학해야 고시엔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한다. 진로를 고민할 정도로 큰 사안"이라며 "3400개 정도의 고등학교가 경쟁하는데 (대회 토너먼트 특성상) 1패만 해도 탈락한다. 일본 고교 야구는 봄 고시엔, 여름 고시엔, 진구 대회 이렇게 총 3개가 있다고 보면 되는데 여름 고시엔의 비중이 가장 크다"라고 말했다. 두산에서 활약 중인 일본인 투수 시라카와 케이쇼는 "일본에서 야구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출전하고 싶어 하는 상징적인 대회"라며 "아마추어 대회임에도 일본 국민의 관심이 상당하다"라고 말했다. 지난겨울 교토국제고는 위기에 빠졌다. 일본 매체 스포치니아넥스는 '투타 엇박자 속에 선수들의 유대가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주장이었던 나카자키 루이가 야수진에 대한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고 야수들은 투수들의 불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갈등의 골을 메운 건 결국 선수들이었다. 허심탄회한 선수단 미팅으로 서로의 마음을 열었다. 나카자키는 우승 확정 뒤 "동료들과 부딪히고 서로를 응원하며 쌓아온 노력의 결실"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와타나베 코치는 "(대회를 뛰면)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때문에 프로 지명을 받는 데 어필이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어린 선수들이 고시엔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함께 땀 흘리고 성장하는 부분이 인생에서 큰 의미가 있는 거 같다"며 "사회적으로 이렇게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걸 인정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스즈키 후미히로 SSG 배터리 코치도 "고시엔 경험은 (선수들이) 대화할 때 공감대를 형성해 준다. 사회에서도 고시엔 경력을 인정해 준다. 인간관계에 도움이 된다"라고 전했다.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4.08.26 05:30
일본야구

한국계 교토국제고, 마침내 새 역사 썼다...'1사 만루 위기 탈출', 창단 첫 우승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등학교가 마침내 여름 코시엔 정상에 섰다. 창단 25년, 본선 진출 3년 만에 이룬 값진 기록이다.교토국제고는 23일 오전 10시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한신 코시엔 구장에서 열린 제106회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코시엔) 결승전에서 간토다이이치고교에 연장 승부 끝에 2-1 승리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교토국제고는 선발 나카자키 루이가 9이닝 동안 104구를 던지며 4피안타 3사사구 5탈삼진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지켰다. 연장 이닝 때는 나카자키와 원투펀치를 구성했던 니시무라 이키가 나서 10회 말 무사 만루를 막아내 최종 우승을 지켜냈다.선발 나카자키는 이틀 전 준결승전 4이닝 투구 후 다시 올랐으나 예리한 제구력으로 긴 이닝을 책임졌다. 힘으로 압도하진 않아도 내야 범타를 유도하며 아웃 카운트를 양산했다. 4회 1사까지 10타자 연속 범타를 얻는 등 기세가 좋았다.마운드의 호투에도 타선이 좀처럼 터지지 않았다. 교토국제고는 3회 초 2사 후 나카자키가 직접 안타를 치고 나갔고 후속 타자 가네모토 유고의 중전 안타로 1·2루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후속타 불발로 선취 득점을 만들지 못했다. 4회 초에도 후지모토 하루키가 볼넷을 얻었으나 견제에 당해 득점까지 연결하지 못했다.6회 초에도 답답한 상황이 계속됐다. 교토국제고는 첫 타자 미타니 세야가 내야안타로 나간 뒤 후속 타자 번트 안타로 주자를 쌓았다. 이어 희생 번트로 타점 기회를 노렸지만, 후속 타자들이 희생 플라이도 쳐주지 못하면서 다시 무득점을 이어갔다. 이어 9회 초엔 선두 타자 안타와 희생 번트가 나왔으나 역시 무득점.오히려 9회 말 위기가 왔다. 나카자키가 나루이 사토시에게 사구를 허용하면서 끝내기 위기가 나왔다. 2사 후 고의4구를 선택한 나카자키는 후속 타자 때 유격수 실책이 나오며 만루 위기를 맞았지만, 간신히 우익수 뜬공을 얻어 경기를 연장까지 끌고 갔다.결국 선취점은 10회 초에야, 교토국제고에서 나왔다. 무사 1·2루 승부치기 상황에서 교토국제고는 9이닝을 던진 나카자키 대신 대타를 선택했는데, 페이크 번트 슬래시가 성공하면서 만루 기회를 얻었다. 결국 밀어내기 볼넷으로 선취점을 올린 교토국제고는 희생플라이로 다시 한 정믈 더 달아났다.마지막까지 경기는 치열하게 흘러갔다. 2선발 니시무라가 올랐으나 번트 타구에 투수 실책이 나오면서 무사 만루가 만들어졌다. 이어 유격수 땅볼로 1실점. 아웃 카운트는 얻었으나 후속 타자 볼넷으로 만루 위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1루 땅볼 때 3루 주자를 아웃시켰고, 마지막 타자마저 니시무라가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팀의 창단 첫 우승을 완성했다. 교토국제고 야구부는 이로써 창단 25년 만에 우승을 이뤄냈다. 1947년 교토조선중학으로 개교한 교토국제고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산하 교토한국학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일본에 있는 학교임에도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이라는 한국어 교가로도 한일 양국에서 화제를 모았다. 코시엔 본선마다 NHK 생중계로 교가가 방송된 덕에 일본 전역에 한국어 교가를 울리게 만들었다.야구부 역사는 길지 않다. 1999년 야구부를 창단한 후 지역대회에만 출전했던 교토국제고는 최근 들어 전력을 강화시키며 2021년 봄 코시엔에서 처음으로 전국대회 본선에 올랐다. 그해 무려 4강까지 오르며 새 역사를 쓴 교토국제고는 3년이 지난 올해, 마침내 4강까지 넘어서며 결승에 진출했고, 우승까지 이루며 학교의 새 역사를 작성하는 데 성공했다.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4.08.23 12:29
메이저리그

한·일 모두 흔드는 '화제의 팀' 교토국제고의 기적 [IS 이슈]

일본 야구 최대 축제 '여름 고시엔(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이 23일 오전 10시,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한신고시엔구장에서 열린다. 올해로 106회를 맞이한 이 대회에 총 3957개 학교가 출전했다. 이 가운데 본선에 오른 49개 학교가 지난 7일부터 토너먼트를 거쳐 최종 무대에 서는 두 팀만 남았다. 한국 야구팬의 시선도 고시엔구장을 향하고 있다. 결승전에 오른 학교가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이기 때문이다. 1999년 창단하며 상대적으로 야구부 역사가 짧은 편이지만, 이들은 103·104회 대회에서 본선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올해는 그야말로 돌풍을 일으켰다. 교토국제고는 재일교포들이 민족 교육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설립한 1947년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가 전신이다. 1958년 교토한국학원으로 재편해 한국 정부의 인가를 받았다. 교가도 당연히 한국어다. 고시엔 대회에서는 경기 전 출전한 두 학교 차례로 교가를 부른다. 승리한 팀은 한 번 더 교가를 제창한다. 고시엔은 일본 공영방송 NHK를 통해 중계되는데, 이번 대회에서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수 차례 전파를 탄 것이다. 교토국제고의 '언더독' 스토리보다, 일본 야구 성지로 불리는 고시엔구장에 한국어가 울려 퍼진 게 더 큰 이슈가 된 게 사실이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불편한 심경을 쏟아낸 일본인이 많았다. NHK가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라는 한국어 교사 가사를 일본어 자막으로 내보내면서 동해를 '동쪽의 바다', 한국의 학원을 '한일의 학원'으로 표기해 송출하며 한국인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사실 교토국제고 야구부에 '일본에서 홀로 투쟁하고 있는 한국 야구'라는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현재 야구부 선수뿐 아니라 소속 학생 대부분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중학생을 포함해 총 재적 학생 160명 중 65%가 일본인이고, 한국계는 약 30%다. 2003년부터는 일본 정부로부터 정식 일반 중·고교로 인가받았다. 현재 교토국제고 남학생 73명 중 61명이 야구부 소속인데, 순수 한국인은 한 명도 없다. 그렇다고 교토국제고를 '일본인 학교'로 볼 수도 없다.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 역사와 문화 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고, 한국 고교와 교류도 많다. 수학여행은 주로 서울로 간다. 학교엔 태극기가 게양돼 있다.여학생들은 대체로 한국 문화, 특히 케이팝(K-POP)에 매료돼 교토국제부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여학생이 댄스부 활동에 열성적이다. 한류 열풍 속에 한국어와 일본어를 모두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알려지며 입학 희망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학생도 증가하는 추세다.재일교포들은 물론 교토 지역 일본인들도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결승 진출을 반기고 있다. 아오모리야마다고를 상대한 21일 4강전에서도 재일교포와 일본인이 어우러져 응원전을 펼쳤다. 예선전에서 교토국제고에 패한 세이쇼고, 인근 교토산업대부속고 학생들도 응원석을 채웠다고. 교토국제고의 선전으로 혐한(嫌韓, 한국을 혐오하는 일) 게시물이 퍼졌고, 이에 반일 감정도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더 많은 한국·일본인이 같은 마음으로 교토국제고를 응원하고 있다. 교토국제고는 결승전에서 도쿄도 대표 간토다이이치고와 만난다. 한일 화합을 끌어내며 이미 큰 기적을 이뤄낸 교토국제고가 첫 우승까지 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2024.08.23 00:15
일본야구

3년 전 '코시엔 4강 신화' 교토국제고...드디어 창단 첫 결승 진출 해냈다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여름 코시엔'에서 개교 이래 첫 결승 진출을 이뤘다.교토국제고는 21일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소재 한신코시엔구장에서 열린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본선 준결승전에서 아오모리야마다 고교에 3-2로 역전승을 거뒀다. 교토국제고는 이번 대회 본선 1차전에서 7-3, 2차전에서 4-0, 3차전에서 4-0, 8강전에서는 4-0으로 각각 승리하고 준결승에 진출한 바 있다.교토국제고가 여름 코시엔 준결승에 도달한 건 3년 만의 일이다. 교토국제고는 앞서 2021년 대회 때도 준결승에 올라 화제를 모았지만, 결승 진출엔 실패했다. 2022엔 본선 1차전에서 석패했고, 지난해엔 본선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올해 마침내 결승에 오르며 2년의 아쉬움을 씻어내는 데 성공했다.창단한지 25년에 불과한 '신흥 강호'이기에 주목할 만한 성과다. '명문'으로 꼽히는 강호가 아니라면 여름 코시엔은 한 번 올라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로 꼽힌다. 하지만 교토국제고는 지난 2021년 첫 4강 진출을 이룬 데 이어 최근 4년 중 3차례나 본선에 올랐고, 마침내 올해 결승 진출까지 이루면서 창단 후 첫 우승도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교토국제고는 한국계 학교로도 잘 알려져있다. 재일교포들이 민족 교육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1947년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가 전신이다. 현재는 교토국제학원이 운영하고 있고, 올해 기준 중고교생 합쳐 전교생이 160명에 불과하다. 재적학생의 65%가 일본인이고, 한국계는 30% 수준이다. 1958년 한국 정부의 인가를 받았고 2003년엔 일본 정부의 정식 학교 인가도 받았다. 이에 따라 학교명도 현재의 교토국제고로 바꿨다.1999년 창단해 일본 고교야구연맹에 가입한 야구부의 교내 비중도 크다. 고교생 138명 중 야구부 소속이 절반에 가까운 61명에 달한다.교가를 제창하는 모습도 국내 야구 팬들의 시선을 모은 바 있다. 코시엔에는 출전학교의 교가가 연주되는데,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올해 대회 때도 한국어 교가를 부른 바 있다. 이들은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라는 한국어 교가를 불렀고, 이는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 전국에 생중계됐다.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4.08.2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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