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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멜랑콜리아’ 우리가 세상에서 배운 모든 것은 이 영화 안에 있다 [오동진 영화만사]

최근 개봉한 영화 ‘시빌 워 : 분열의 시대’에서와는 달리 ‘괴물 감독’ 라스 폰 트리에의 2011년작이자 그의 최고작에 해당하는 ‘멜랑콜리아’에서 커스틴 던스트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이 영화에서는 저스틴 역의 커스틴 던스트 뿐만이 아니다. 상대인 마이클 역이었던 알렉산더 스카스카드도, 언니 클레어 역의 샤를로뜨 갱스부르도, 그의 남편 존 역의 키퍼 서덜랜드도 모두 젊고 찬란했다. 그런 면에서라도 ‘멜랑콜리아’가 14년만에 공식 재개봉하는 것은 기시감을 준다. 우리 모두에게 정녕 이런 날이 있었던 것 일까.오프닝 타이틀이 뜨기 전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이 흐르는 가운데 8분에 이르는 동안 정지 화면과 느린 화면이 이어진다. 14년전만 하더라도 일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의 속도에 불만을 갖게 한 요소 중 하나였다. 영화는 느리고 숨이 막힌다. 그러나 그 장면들을 지금 보고 있자면 라스 폰 트리에가 파시스트로 심각하게 오해를 받긴 하지만(그는 이 영화로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히틀러를 이해한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자초했다) 꽤나 아름답고 서정적이면서 회화적인 영상 스케치에 능한 인물이라는 점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타이틀 이후 30분간 이어지는 결혼식 파티 장면은 프란시스 F. 코폴라의 ‘대부Ⅰ’의 가장 성대한 오프닝 장면을 따라 한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결혼식 날과 그 다음 하루 이틀 후 까지의 얘기다. 예전에 봤을 때는 이것 역시 모든 것이 다소 장황하게 느껴졌지만 지금 와서 다시 보면 꽤나 잘 찍은 장면이다. 이 결혼식 파티 장면 하나에 라스 폰 트리에는 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를 모두 다 쓸어 담으며 어떤 인물들이 이 영화 안에서 ‘휘젓고 다니게 할지’를 한번에 보여 주려 한다. 네 명의 주요 인물들 외에도 샬롯 램플링, 존 허트, 스텔란 스카스카드 등과 우도 키어, 그리고 제스퍼 크리스텐슨 같은 조단역까지 한번에 다 나오게 한다. 영리한 오프닝이다. 게다가 영화의 전체를 핸드 헬드로 찍었다. 이 결혼식 장면을 너무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너무 흔들려서 다소 두통을 유발할 정도다. 14년 전만 해도 핸드 헬드 기술이 그리 정교하지 못했다. 그런데 흔들리는 카메라 워킹이 이 영화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라스 폰 트리에의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이다.‘멜랑콜리아’는 라스 폰 트리에의 우울 3부작 중 하나로 불린다. ‘안티 크라이스트’와 ‘님포매니악 Ⅰ,Ⅱ‘가 나머지 둘이다. 사실 우울이라는 단어보다는 종말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멜랑콜리아’는 라스 폰 트리에의 종말 3부작 중 가장 관념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상징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직접적이다. 영화는 우리의 종말에 대해 가장 끔찍한 리얼리티를 선사한다. 우리 모두 종말이 이럴 것이다. 우리 모두 지금 종말로 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자각과 성찰을 주는 영화이다.‘멜랑콜리아’의 재개봉이 극장가와 영화계에 엄청난 반전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작은 파문조차 일으키지 못할지도 모른다. 다만 오랜 영화팬들이라도, 그렇게 늙고 ‘낡은’ 세대들에게라도, 느슨해진 인류애적 반성과 고뇌의 시간을 다시 가져가게 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반갑고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멜랑콜리아’를 비롯해 ‘도어즈’ ‘렛 미 인’ 등 1990년대 영화와 2000년대 초반의 영화들, 주로 외화들을 대상으로 요즘 재개봉이 잦은 이유는 물론 상업적인 이유에서일 것이다. 마케팅에 힘을 쏟지 않고도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만큼 마케팅 비용을 과하게 들이지 않더라도 관객을 모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수입사들마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포스트 코로나19 이후의 시장 탓에 멘붕이 온 탓도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작품으로 장사를 해 보자’는 심정일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10~20년 전의 영화에 지금의 현대적 이슈들, 사람들의 고민들이 다 담겨져 있음을 뒤늦게 발굴해 내고 있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이건 때늦은 깨달음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배운 모든 것은 ‘유치원’이 아니라 ‘가까운 과거의 영화’ 안에 다 담겨져 있다.영화 내내 흐르는 클래식 음악들도 라스 폰 트리에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낸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바그너 오페라 곡 ‘파르지팔’부터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페도라’의 전주곡과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서곡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시종일관, 종말의 차분함을 강조한다. 정확하게는 종말 직전까지 인류가 가져가야 할 침착함의 태도에 대해서 말한다. 14년만에 선보이는 ‘멜랑콜리아’는 한 마디로 14년 전의 예언이었다. 영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금의 우리 삶이 어떻게 되어 갈지에 대해 예지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들 침착하라고 말한다. 세상이 아무리 망가지고 어려워지더라도 그럴수록 다들 자신의 내면 안으로 더 들어가라고 말한다. ‘멜랑콜리아’는 지금 보면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젊은 세대일수록 일람을 권하는 바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2025.02.06 06:05
뮤직

크라잉넛 한경록 “재미로 시작된 경록절, ‘인디 3대 명절’이라니 책임감도” [IS인터뷰]

“사실 재미로 시작한 행사인데, 왠지 모르게 해야 할 것 같은 책임감 같은 게 생겨요.”크리스마스, 핼러윈과 함께 ‘인디신 3대 명절’ 중 하나로 당당히 꼽히고 있는 ‘경록절’의 주인공, 크라잉넛 멤버 한경록은 올해 ‘경록절 컴 투게더’ 록 페스티벌을 앞두고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경록절은 한경록이 밴드신 친구들과 함께 하던 생일파티가 판을 키워 탄생한 날이자, 프로젝트다. 홍대 뮤지션들이 함께 하는 파티인 만큼 자연스럽게 ‘생’ 라이브 연주와 떼창이 이어졌는데, 20년 가까이 연례 행사로 진행되면서 이제는 매 년 초 빼놓을 수 없는 홍대 축제로 거듭났다.“로맨틱펀치 배인혁은 ‘이 형 진짜 유난 떤다’며 놀린다”며 개구진 미소를 보인 한경록은 “사실은 재미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무슨 부귀영화를 위하는 것도 아니고, 의무감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경록절은 크라잉넛 데뷔 30주년이자 한국 인디 30주년의 해인 만큼 ‘함께’에 가치를 더해 펼쳐진다. “인디 뮤지션도 어떤 소속감을 갖고, 프라이드를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음악 하는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자리가 사실 많이 없거든요. 또 요즘은 세대, 남녀, 음악 장르에 따라 편가르기와 갈등도 심한데, 록앤롤 정신이 ‘러브앤피스’잖아요. 이날만큼은 날 선 시선을 내려놓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놀고 즐기자는 마음으로 ‘컴 투게더’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인디 30주년, 크라잉넛 30주년이니까 우리(크라잉넛)가 한 번 모이자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2025 경록절’은 ‘컴 투게더’라는 부제와 함께 4일부터 7일까지 4일에 걸쳐 온·오프라인으로 펼쳐진다. 4, 5일엔 ‘2025 경록절 온라인’으로 구성돼 이틀간 50여 팀 이상의 영상이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송출된다. 6일엔 홍대 무신사 개러지에서 ‘경록절X개러지 2주년 기획공연’이 펼쳐지고 7일엔 한경록을 필두로 4인조로 구성된 프로젝트 밴드의 ‘2025 경록절 클래식’이 진행된다.이번 경록절을 맞아 처음으로 결성된 프로젝트 밴드는 한경록이 베이스를 맡고 톡식 김슬옹이 드럼을, 카디 황린과 데킬라 올드 패션드의 정지원이 기타를 맡는다. 여기에 멜로망스 정동환이 밴드 마스터 겸 키보드를 맡아 인디 역사 30년을 아우르는 다양한 커버곡 무대를 헌사할 예정이다. 한경록은 “연습 하면서도 그 때 그 시절들이 생각난다. MZ세대부터 제 나이대 친구들까지, 인디음악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경록절에 오시면 뭔가 뭉클하고 추억에 잠기지 않을까 싶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매 년 경록절을 준비하면서 드는 생각은, 너무나 감사하면서도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제 애칭이 캡틴락이기도 하고, 힘든 일이지만 보람도 있고 동료들도 재미있어 하고요. 누구 하나 안 힘든 사람이 없는데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같이 굴러간다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야망이나 돈을 좇는 게 아니라 뭔가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게 즐거운 일이에요.” 크라잉넛으로 쉼표 없이 달려온 지난 시간도 떠올렸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힘들다면 힘든 거고 또 아니라면 아닌 것”이라고 담담하게 입을 뗀 한경록은 “뒤돌아보면 인디신에 정말 보석 같은 팀들이 많았는데, 해체한 팀도 또 많다. 그래서 크라잉넛의 30주년은 좀 의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멤버 이상혁의 딸이 올해 성인이 됐어요. 저희 멤버가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한 일가를 만들어낸 건데, 인디 음악을 하면서 밴드만으로 직업이 되고, 가장이 될 수 있다는 게, 우리가 무슨 슈퍼스타라기보다는 소소하게, 열심히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전히 진짜, 밴드가, 무대가, 음악이 재미있어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고 힘이 된다는 게, 신기하게 거울처럼 우리도 그렇게 받고 있거든요. 그 자체로 의미가 되는 듯 합니다.” 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2025.02.04 15:54
경제일반

신세계百, 봄학기 특별 테마 강좌 선봬…"일상 속 개인 취향 발굴"

신세계가 갈수록 다양해지는 고객 취향에 맞춰 2025년 봄학기 특별 문화·예술 강좌를 선보인다고 30일 밝혔다.최근 개인의 취향에 집중해 소비 패턴을 보이는 옴니보어(omnivore) 소비자의 등장, 니치 마켓(niche market)의 활성화와 같은 사회 트렌드에 따라 신세계는 특정 집단의 관심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자신도 몰랐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특히 지난해에만 5만명 이상이 수강한 봄 학기를 앞두고 보다 많은 고객들의 틈새 취향까지 아우르기 위해 이번 학기에 카테고리를 세분화해 구성했다.'취향의 개화(開花)', '감각의 르네상스', '예술적 식탁', '일상의 예술관', '감성의 리듬', '우아한 움직임' 등 6개의 콘셉트로 신세계는 이번 학기에 200여 개의 테마 강좌를 따로 마련했다.취향의 개화에는 일상 속 예술적 영감을 더하는 강좌들로 인문학 북 큐레이션 클래스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감각의 르네상스 테마는 오감으로 경험하는 예술적 취미를 알려주는 강좌로 ‘봄날의 포토그래퍼’ 등이 대표 강좌이다.특히 대구신세계에서 진행되는 '봄 속으로 빠져드는 임윤찬&조성진 피아노 음악'은 취향의 개화를 대표하는 강좌로, 베토벤·모차르트 등 역사 속 작곡가들을 주로 다룬 기존 클래식 음악 강좌의 틀을 벗어나 한국을 대표하는두 명의 피아니스트를 분석하는 강좌이다.각기 다른 스타일을 가진 두 피아니스트를 비교·분석하는 재미에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할 수 있는 경험까지 더해 클래식 마니아층의 관심을 집중시킬 것으로 기대된다.의정부점도 취향의 개화 테마 아래 오는 3월 5일 임윤찬이 연주하는 음악 중 베토벤과 리스트로 범위를 좁혀 함께 감상하고 해설까지 들을 수 있는 수업을 펼친다.감성의 리듬 테마의 대표 강좌인 ‘봄날의 영화 음악 바이올린 콘서트’는 새로운 악기를 배우거나 클래식 명곡을 감상하기만 했던 기존 음악 강좌와 달리 인기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음악 등을 감상하며 작품과 관련된 문화사까지 결합해 깊이를 더한다. 해당 강좌는 바이올리니스트 강드보라가 진행한다.신세계는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생활 속에서 직접 활용 가능한 문화·예술 강좌도 마련했다.사우스시티는 생활 속 다양한 소품들로 활용 가능한 ‘초록빛 봄의 시작, 라탄 행잉 아이비 플랜트’ 수업을 소개한다.오감으로 체험한다는 의미에서 감각의 르네상스 테마로 기획된 이번 강좌에서는 라탄 바구니를 직접 엮어 만든 후 식물까지 심어보는 강좌다.신세계아카데미 관계자는 “25년 봄학기를 맞이해 신세계아카데미는 세분화된 고객 취향을 겨냥할 다채로운 문화·예술 강좌를 선보이게 됐다”며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통해 고객들이 일상에서 예술을 느끼며 개인의 취향을 꽃피우는 시간이 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안민구 기자 2025.01.30 14:14
영화

흡혈귀 영화 ‘노스페라투’가 잘 안되는 이유 [오동진 영화만사]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유니버설의 작품치고 ‘노스페라투’의 초반 흥행 수치는 다소 미약한 수준이다. 지난 15일 개봉돼 한 주간 전국 1만 6000명에 그치고 있다. 흥행 시그널이 별로다. 영화에 대한 마니아들의 찬사, 평단의 우호적 반응에 비하면 현실과 이상이 다르다는 진부한 명제가 다시 구현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노스페라투’가 인기를 모으지 못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진부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 위치’ ‘라이트 하우스’ 등을 연출한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이번 리메이크 판을 만들면서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시초격으로 평가받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감독의 1922년의 동명 원작을 그대로 구현해 냈다. 1920년대 기술력으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장면들, 특히 당시 무성영화를 최첨단 시대에 걸맞게 다시 바꿔냈다. 색채와 음향, 분장(특히 드라큘라의 외모), 의상을 보더라도 100년 전 영화의 현대적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노스페라투’는 오히려 진화의 의미를 담고 있는 영화로 주목을 받았다. 클래식의 진정한 복원 같은 영화가 바로 이번 ‘노스페라투’인 셈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 그러니까 그 복고의 분위기가 오히려 흥행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무르나우의 1922년작 ‘노스페라투’는 브람 스토커가 1897년에 쓴 ‘드라큘라’를 원작으로 하지만 저작권 분쟁을 의식해서 드라큘라의 이름을 흡혈귀란 뜻의 루마니아어 노스페라투로 바꾼 것이다. 당시 영화는 소설 원작을 영화로 만든 최초의 작품이자 영화 역사상 최초의 흡혈귀 영화였다. 이 ‘노스페라투’ 이후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가 만들어졌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1992년작 ‘브람 스토커의 드라큐라’나 2020년 영국 넷플릭스가 만든 4시간 반짜리 3부작 ‘드라큘라’처럼 재해석이 뛰어난 작품도 있었지만 B급 호러액션인 경우가 지배적이었다. 휴 잭맨, 케이트 베킨세일 주연의 2004년작 ‘반 헬싱’같은 작품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번 ‘노스페라투’는 지난 수십년간 원작의 의미를 폄훼하는 아류와 변형, ‘짝퉁’의 작품이 넘쳐났던 만큼 그렇다면 원전을 원전 그대로 구현해 내는 것이 어떠냐는, 순수 고전주의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인 셈이다. 2030의 젊은이들에게는 역설적으로 클래식이 새로운 분위기로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 시장에서는 그런 기대와 예측은 적중하지 못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코폴라가 만든 ‘브람 스토커의 드라큐라’가 워낙 뛰어난 작품이었던 탓도 있다. 코폴라의 작품은 드라큘라가 살았다는 트란실바니아의 거대하고 기괴한 성의 이미지, 그 공간을 재현해 내고 1800년대 후반 빅토리아 왕조 시대가 주는 여성 억압의 느낌. 그 정서를 제대로 살려냈다는 점에서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브람 스토커의 원작은 1800년대 후반의 여성용 의복인 코르셋이 상징하는 것처럼 당시의 여성들에게 가해진 성적 억압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내용이었다. 당시 이 소설을 읽었던 여성 독자들은 자신의 목이나 가슴에 드라큘라의 이빨이 박힌 채 피를 빨리는 상상으로 전율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이 원작은 공포의 분위기보다 성의 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전조를 보여 준 작품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떨게 만든 작품이다.드라큘라 영화가 흥행하는 제1 조건은 흡혈귀가 비록 어둡고 흉측한 몰골이라 하더라도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폴라의 영화에서 드라큘라 역의 게리 올드만이 바로 그렇게 보였다. 거대하고 남성적이며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그를 끌어 들이게 만들 만한 대상으로 여겨지게 보인다. 모든 흡혈귀는 저쪽에서 먼저 초대를 해야만(그 유명한 영화 제목 ‘렛 미 인’처럼) 상대를 취할 수가 있다. 여성이 뱀파이어에게 ‘목을 내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끌리는 요소, (엄청나게 교양있는) 말투, 제스처, 시선, 표정 등이 있어야 한다. 이번 ‘노스페라투’에서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흡혈귀를 1922년 무르나우 감독이 형상화 하려 했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되 그걸 매우 현대적으로 재현하려 노력했고, 또 완벽에 가깝게 성공했지만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악마의 매력’을 반감시킨 요소로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극중 주인공 올록 백작(빌 스카스가드)은 괴물 그 자체의 모습이다. 무섭다기보다 다소 역겹다. 주인공 여성 엘렌(릴리 로즈 뎁)이 왜 이 악마를 자기 안으로 끌어 들이려 하는지, 그 욕망을 동일화 하기가 힘이 든다. 무엇보다 ‘노스페라투’가 말하려는 악마의 시대성, 정치사회적 시의성이 다소 옅어 보인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순수한 악의 근원을 두고 논쟁하고 즐길 만큼 한가하지가 못하다. 바로 그 점이야 말로 이 영화가 초반 흥행에 고전하는 이유로 보인다.오동진 영화평론가 2025.01.23 06:05
뮤직

KG필 창단 첫 무대 성료…MZ 음악인 열정 빛난 ‘이데일리 신년음악회’

MZ세대 음악인들의 열정에 동(冬)장군도 녹아 내렸다. 18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2025 이데일리 신년음악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올해 9회째를 맞은 이번 ‘이데일리 신년음악회’는 청년 음악인의 꿈을 지원하고 한국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밝히기 위해 곽재선문화재단(이사장 곽재선)이 창단한 KG필하모닉오케스트라(KG필)의 첫 무대로 의미를 더했다.KG필을 창단한 곽재선 KG그룹 회장은 이날 공연 전 무대에 올라 “기업이 육체적 행복을 키운다면 정신적 행복을 만드는 것은 문화”라며 “기업도 정신적 행복을 만드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KG필을 창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KG는 KG필과 함께 대한민국 국민에 정신적인 행복을 선사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자 하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조금은 긴장한 듯, 하지만 반짝이는 눈빛의 단원들은 지휘를 맡은 음악감독 서희태의 신호에 맞춰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으로 KG필의 본격 시작을 힘차게 알렸다.KG필의 클래식 연주가 공연의 기반이었지만 엄숙하고 진지한 여느 클래식 공연과는 달랐다. 서희태 지휘자의 손짓에 2000여 관객들이 일제히 박수로 박자를 맞추며 공연은 흥을 더했다. 클래식 공연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무리 없이 어우러져 즐길 수 있을 만했다. 1부는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로 꾸려졌다. ‘운명의 힘’ 서곡에 이어진 무대는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였다. 베토벤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에 빛나는 피아니스트 서형민(35)이 협연자로 나서 청춘의 열정을 선율 위에서 불태웠다. 특히 서형민은 ‘찐이야’ ‘땡벌’로 이어지는 트롯 메들리를 앙코르로 선사하며 사뭇 진지했던 분위기를 환기했다. 서형민은 공연 후 일간스포츠에 “앙코르로 어떤 곡을 할까 생각하다 신년음악회의 취지에 맞춰 관객들에게 흥을 전달하고 싶어 머리에서 생각이 나는 대로 즉석에서 선곡해 연주를 했다”고 말했다.이어진 무대는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모음곡들로 꾸며졌다. 정경, 왈츠, 백조의 춤, 차르다쉬, 피날레까지 대중에 익숙한 연주가 유려하게 이어지며 1부의 막이 내렸다. 2부의 시작은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였다. 지난 연말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에 대한 애도의 뜻을 담은 선곡으로 먹먹함을 더한 가운데, 이어진 무대는 가수 겸 뮤지컬 배우 배다해, ‘팬텀싱어4’ 준우승팀 포르테나(김성현·서영택·오스틴 킴·이동규)와 협연으로 활기를 더했다. 배다해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대표 넘버인 ‘띵크 오브 미’와 KBS2 예능 ‘남자의 자격’에서 자신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엔리오 모리꼬네의 ‘넬라 판타지아’, 작곡가 한태수의 가곡 ‘아름다운 나라’ 등 다채로운 선곡의 무대를 선사했다. 배다해는 “힘들고 어려운 때도 있었지만 2025년은 모두가 웃으며 이 나라를 함께 끌고 갔으면 좋겠다”고 위로의 메시지도 전했다. 포르테나는 ‘팬텀싱어4’ 1라운드에서 불렀던 ‘네아폴리스’를 비록해 노르웨이 듀오 시크릿 가든의 ‘유 레이즈 미 업’, 그리고 살바토레 카르딜로의 ‘무정한 마음’까지 환상의 하모니를 선보였다. 이들의 4인 4색 하모니에 KG필의 열정을 다한 연주가 더해진 무대는 관객의 마음 속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KG필 첫 연주회의 피날레는 영화 ‘이티(ET)’ OST ‘플라잉 테마’가 장식했다. 마지막 무대를 맞아 혼신을 다한 이들의 퍼포먼스에 객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이에 KG필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5번, 요한 스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앙코르로 선사했다. 한편 이날 현장에는 KG가 운영하는 비영리 재단법인 선현을 통해 초청된 소방공무원과 가족들도 참석해 공연을 관람, 문화 나눔의 의미를 더했다. 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2025.01.20 05:55
영화

도경수와 원진아의 동글동글 판타지 멜로..보기 귀한 ‘말할 수 없는 비밀’ [IS리뷰]

17년 전 대만 작품을 지금, 한국에서 다시 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한국 리메이크 판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부단히도 그 까닭을 고민해 관객에게 내민다. 만족스러운 답안인지는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가산점을 줘야 할 포인트는 충분하다.‘말할 수 없는 비밀’은 판타지 로맨스로 장르를 정의한다. 2007년 개봉한 원작의 대만 배우 주걸륜과 계륜미의 절절한 멜로 서사를 아는 사람들이야 알지만,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는 대학생 청춘남녀의 아기자기한 캠퍼스 로맨스로 가볍게 출발한다.촉망받는 피아니스트 유준(도경수)은 손목 부상과 슬럼프로 어릴 적 꿈꿔오던 쇼팽 콩쿠르 세계 무대에서 좌절 후 한국에 귀국했다. 무너진 멘탈을 회복할 겸 교환학생으로 음대에 온 그는 복도에서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를 듣고 낡은 음악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곳에서 만난 정아(원진아)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낀 유준은 그와 함께 있고 싶지만, 신출귀몰한 정아를 만나기 도무지 쉽지 않다. 영화는 비밀스러운 정아의 정체를 유준의 시선으로 따라간다.원작은 2000년대 예술 고등학교가 배경이지만, 이번 영화는 2019년 한국 음대 캠퍼스로 무대를 옮겼다. 이야기의 큰 틀은 공유하되 재해석된 디테일로 풍기는 감성이 달라졌다. 주걸륜과 계륜미가 연기했던 두 인물을 도경수와 원진아가 분하며 동글동글 그림체가 예쁜 순정 만화 같은 케미스트리를 빚는다. 도경수는 멜로 장르에선 신선한 얼굴이다. 특유의 짙은 눈썹과 커다란 눈동자에 애정과 애수를 담아내며 사랑에 빠진 청년을 새로 그려냈다. “너를 위해 연주할게” 같은 다소 낯간지러운 로맨스 대사들도 부드럽고 흡입력 있는 그의 목소리를 통하니 진실하게 들린다.무엇보다 신체 연기다. 악보도 볼 줄 모른다고 고백한 도경수는 원작의 백미인 피아노 배틀 장면, 정아와의 연탄곡 연주도 위화감 없이 소화했다. 움찔하는 작은 움직임이나 다급히 달려가는 장면 또한 의도한 감정선을 살려냈다.원진아의 사랑스러움은 재발견이다. 원작의 샤오위가 병약한 설정으로 아련했다면, 원진아가 연기한 건강한 정아는 발랄하면서 친근하다. 요즘 시대에 핸드폰이 없고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를 최애 곡으로 꼽는 대학생이라는 이 작품의 픽션적 허용을 원진아의 단정하고 시대를 타지 않는 깨끗한 인상이 설득력을 부여한다. ‘판타지’답게 갖은 트릭을 사용해 원작에 장치된 반전 요소, 시간여행을 감출 듯 말듯 힌트를 남기지만 이름을 날린 작품인 만큼 이미 티 나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탓에 전개가 예상이 가는 점은 아쉽다. 그 대신 서유민 감독은 두 남녀가 결말로 향하는 감정선을 보다 ‘요새 감성’에 맞춰 각색해 보완하고자 했다.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않는 주체성과 열정이다. 볼거리와 들을 거리도 풍성하다. 메인 OST인 ‘시크릿’을 제외하곤 새로 꾸린 클래식과 현대가요가 원작과의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귀여운 사랑의 라이벌, 바이올리니스트 인희 역으로 스크린 데뷔하는 신예은의 독하지 않은 짝사랑 연기를 볼 수 있으며 유준의 아버지인 음대 교수로 분한 배성우 또한 이미지 쇄신에 한몫할 정도로 높은 웃음 타율을 갖췄다.‘서울의 봄’에 이어 ‘하얼빈’까지 묵직한 시대극 대작을 선보인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의 맛이 한 방울 떨어진 하이라이트의 붕괴 신은 실감나는 CG(컴퓨터 그래픽)를 입고 원작을 뛰어넘은 새로운 명장면으로 인상을 남길 듯하다.원작과의 비교가 곧 양날의 검이면서 보기에 따라 유치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이 그럼에도 귀한 건, 모처럼 관객과 만나는 한국 판타지 멜로 영화라는 점이다. 부담 없이 극장을 찾을 데이트 무비로 손색없다. 오는 28일 개봉. 러닝타임 103분. 전체관람가.이주인 기자 juin27@edaily.co.kr 2025.01.16 09:30
영화

“구관이 명관, 진짜야?”…‘모아나2’ 떠난 자리, 선명한 ‘고전 외화’ 채웠다

새로운 작품과의 만남을 단장하는 연말연시 극장가에 재개봉한 고전 명작들이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1990년대부터 2000년대 개봉해 현재 ‘클래식 필람 영화’라고 회자된 해외 고전 명작들이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모으고 있다.고전 명작 재개봉 레이스는 외화 신작 개봉 편수가 감소한 것과 맞물려 시작됐다. 최근 박스오피스는 모처럼 한국영화 ‘하얼빈’과 ‘소방관’,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삼파전 구도를 형성했다. 지난해 11월 개봉해 345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선전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2’의 기세가 꺾이면서 외화 강세 흐름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맞춰 멀티플렉스들은 지난달부터 ‘단독’을 달고 해외 고전 명작들을 다시 내걸고 있다.CGV 서지명 커뮤니케이션팀 팀장은 “영화관에 신작이 줄어든 상황에서 작품을 확보하는 차원도 있지만 검증된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새로운 관람 트렌드도 맞물렸다”며 “특히 젊은 관객 층은 구작을 새 영화로 느끼거나 명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를 확인할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가장 크게 선전하고 있는 작품은 1999년 국내 첫 상영 됐던 일본 영화 ‘러브레터’다. 탄생 30주년을 맞아 메가박스에서 지난 1일 개봉했다. 개봉 첫날 1만 4957명과 만났으며 좌석 판매율 42%로 1위를 달성하며 관객들의 관심을 방증했다. 현재 극장에선 볼 수 없는 세로 자막에 대한 입소문과 주연 배우 나카야마 미호의 지난달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이 겹쳐 주말엔 하루 7000명 대 관객을 모으면서 전체 박스 오피스 10위권 입성도 노리고 있다. 그 뒤를 잇는 ‘더 폴: 디렉터스 컷’과 ‘색, 계’는 CGV 독립예술전용관 아트하우스에 걸렸다. 두 작품은 7일 오전 기준 CGV 아트하우스 사이트에서 나란히 예매율 1위(4.2%)와 2위(2.2%)를 차지했다. 특히 ‘더 폴: 디렉터스 컷’은 6일 4만 관객을 돌파했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이 작품은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의 감독판으로, 4K 리마스터링을 통해 18년 만에 재개봉했는데 높은 좌석판매율을 기록하고 있다. 평론가와 함께하는 작품 해설 GV(관객과의 대화)는 매진 세례를 빚을 정도다. 지난 1일 재개봉한 ‘색, 계’(2007)는 국내에서 사랑받는 중국 배우 탕웨이와 양조위 팬덤을 중심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마니아를 위한 아트포스터, 컨셉북 굿즈 증정도 예매 열기를 더하고 있다. 롯데시네마는 고전 명작의 4K 리마스터링 버전을 연달아 선보이고 있다. 지난달에는 30주년을 맞은 ‘포레스트 검프’(1994)와 20주년을 맞은 ‘이터널 선샤인’(2005)이 차례로 단독 재개봉했다. 지난달 18일 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은 개봉 전 예매율 8.2%로 독립·예술 영화 부문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롯데시네마 관계자는 “연말이라 반짝 재개봉 작을 선보인 것은 아니다. 관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 꾸준히 작품 선택지를 늘리려 시도하고 있다”며 “재개봉 니즈가 맞는 배급사와 협업으로 기획 큐레이션을 선보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최근 극장가는 신작의 부재를 대신해 이미 확보된 판권을 새로운 경험으로 업그레이드하며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4K 리마스터링 재개봉 영화가 늘어난 만큼 극장들의 전략에도 변화가 따른다. 메가박스는 6일 컴퓨터 비전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인쇼츠와 4K 리패키징 콘텐트 업무 협약도 체결했다. 재개봉작 및 리마스터링 작품뿐 아니라 4K 포맷 신작까지 수급과 상영에 탄력을 붙인다는 계획이다.다른 두 멀티플렉스는 구체적인 사업을 공개하진 않았으나 차별화된 극장 경험을 위한 전략에 힘을 쏟겠다는 귀띔이다. 한 관계자는 “결국 관건은 다른 플랫폼으로도 볼 수 있는 작품을 영화관에서 봐야 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라며 “깨끗한 화질과 풍부한 사운드를 위해 극장 환경을 보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이주인 기자 juin27@edaily.co.kr 2025.01.10 05:35
영화

‘러브레터’ 재상영의 의미, 모두들 “오겡끼데스까?” [오동진 영화만사]

이와이 슌지 감독의 최고 최대 히트작 ‘러브레터’는 1995년작이다. 한국에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인 1999년 11월에 개봉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멀티플렉스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된 때여서(1998년 강변CGV가 최초) 단관 극장 시절의 피카디리(현재 피카디리CGV)가 주 상영관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종로 시네코아, 을지로 명보, 중구 저동의 중앙시네마 등에서도 상영됐다. 스무 살 때 이 영화를 본 사람은 이제 오십 살이 됐고 서른 살에 본 사람은 환갑이 됐다. 서른 살 이전의 사람들에겐 이 영화가 완전히 새 영화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그 중간중간 기획전으로, 혹은 재상영 형식으로 다시 공개되기도 했으니 아주 오래 전의 영화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영화는 2013년에 한번, 2019년과 2022년에 각각 한번씩 재개봉됐다. 그만큼 인기가 높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어쨌든 30년 전 영화라면 우리는 대개 ‘클래식’ 혹은 ‘고전영화’라 부른다. 지난 1일 재개봉한 ‘러브레터’는 국내 OTT 왓챠가 수입한 것이다. 이 영화의 30주년 기념 개봉이 결정됐을 때 공교롭게도 주연배우였던 나카야마 미호가 갑자기 죽었다. 나카야마 미호는 1970년생으로 54세에 불과했다. 미호의 인기는 일본과 한국 양국에서 거의 비슷하게 높았는데 그건 순전히 영화 속에서 그가 후지산을 향해 목놓아 외쳤던 “오겡끼데쓰까?(잘 지내고 있나요?)”라는 대사 때문이다. 이 대사가 극중에서 나오기 전 나카야마 미호가 맡았던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는 죽은 애인 후지이 이츠키의 남자친구, 선배들과 그가 죽기 전 머물렀던 산장에서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준비하던 친구, 선배들은 모두 같은 노래를 흥얼댄다. 히로코가 묻는다. “그 노래가 뭔데 다들 그렇게 흥얼대는 거에요?” 친구들 중 한명이 곤란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츠키가 스스로 밧줄을 끊고 추락하기 전에 불렀던 노래요.” 바로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다. 이 대목에서 일본 관객, 한국 관객들은 말 그대로 철철 울었다. ‘오겡끼데쓰까?’는 바로 그 다음 날 아침에 히로코가 산을 보며 죽은 애인을 부르는 장면에서 나온다. ‘러브레터’는 신파멜로로맨스 영화의 최고봉으로 등극했다.‘러브레터’는 서사 구조가 다소 복잡하다. 일단 나카야마 미호가 1인 2역을 한다. 현실에서 고베와 홋카이도에서 각각 살아가는 와타나베 히로코와 후지이 이즈키 역이다. 그런데 이 후지이 이츠키는 과거에 같은 이름의 두 사람이 존재했는데 한명은 바로 지금 홋카이도에 사는 이즈키이고 한명은 고베에 사는 히로코의 죽은 애인이자 남자였던 이즈키이다. 여자 이즈키와 남자 이즈키는 같은 중학교를 다녔고 남자 이즈키가 여자 이즈키를 좋아했지만 둘의 인연은 남자 아이가 고베로 이사를 가면서 끊어진 상태였다가 남자가 죽은 것이다. 그리고 남자가 죽기 전 애인과 어릴 때 정인이 우연히 연결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 실타래처럼 얽힌 세 남녀의 현재와 과거를 이와이 슌지 감독은 정교하게 엮어 놓았다. 자칫 중간에 흐름을 놓치면 누가 누구인지, 뭐가 어떻게 된 얘기인지, 언제가 현재이고 언제가 과거인지를 알 수 없게 된다. 이 영화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대적인 분위기를 갖는 건 바로 그 복잡한 스토리 라인 때문이다. 1995년의 일본과 1999년의 한국은 다들 큰 변화를 겪고 있을 때였다. 90년대 중반의 일본은 버블 경제의 후유증에다 95년의 고베 대지진으로 외환위기까지 겹쳤던 때였다. 일본 정치와 사회는 옛 군국주의 시대와 연결되는 보수연합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다. 사람들은 심신이 지쳐 있었다. 위로가 필요했다. 따뜻한 러브 스토리가 요구됐었던 때였다. 한국의 1999년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 정부가 들어섰지만 오랜 독재의 끝이어서인지 사회경제 비리가 마구 터져 나왔다. 마음이 지친 한국의 관객들에게 ‘러브레터’는 신선한 그 무엇, 사람들이 지키고 싶어 했던 순수의 그 무엇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30년 전 기준으로 이 영화는 당시 서울에서만 70만의 관객을 모았다. 99년 이전 해적판 비디오가 20만장 정도 풀렸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의 전국 기준으로 8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셈이다. 일본 킹레코드사로부터 수입한 OST 음반도 3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그렇다면 지금 ‘러브레터’의 재상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고전영화에 대한 오마주일까. 이번 재상영의 관객은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마도 힘들고 지친 시대를 달래 주었던 영화에 대한 추억을 소환할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그런 기억이 매우 중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모두들 서로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잘 지내고 있나요?”오동진 영화평론가 2025.01.09 06:05
프로야구

허구연 KBO 총재 신년사...공정성 제고·국제 경쟁력 강화·팬 서비스 확대 강조

허구연(74)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6일 2025년 신년사를 전했다. KBO리그는 2024시즌 OTT 중계, ABS 도입 등 큰 변화를 맞이했다. 야구 관련 쇼츠(짧은 동영상) 콘텐츠가 활성화되며 잠재 팬이 유입됐고, 공 판정 관련 공정성 논란이 줄어들며 호흥을 얻었다. KBO리그는 2024시즌 출범 42년 만에 10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역대급 흥행을 했다. 야구 부흥을 이끈 공을 인정받은 허구연 총재는 지난달 열린 일구회 시상식에서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이 자리에서 "1000만 관중에 도취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2025년 신년사를 통해서도 KBO리그 발전 방향을 강조했다. 허구연 총재는 우선 "리그의 근간인 공정성과 가치를 높이기 위한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ABS 시스템을 고도화해 판정의 정확도를 높이고, 퓨처스리그에도 ABS 시스템을 확대 도입해 리그의 신뢰를 더해 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더불어 KBO리그에는 신규 비디오 판독 장비를 도입하여 정밀한 판독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경기 진행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 피치클락 시스템을 도입하여 세계 야구 트렌드에 발맞춰 나가겠다는 의지도 전했다. 국제 경쟁력 강화도 강조했다. 허구연 총재는 "2024년 국가대표팀의 일관된 비전과 브랜드 구축을 목표로 기획된 'K-BASEBALL SERIES'의 일환으로 국가대표팀 교류전을 준비하고 있다"라며 "이를 통해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철저히 대비해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 향상을 도모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시작된 KBO 국제 교육리그를 운영하여 유망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하고 해외 야구 사무국과 네트워크를 강화함으로써 미래 야구 인재 발굴과 글로벌 야구 생태계 활성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팬 서비스 확대 방침도 밝혔다. 허구연 총재는 "팬 중심 마케팅 및 경험 다각화 팬 여러분과 더 가까워지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이어 "대중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상품 콜라보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야구장 안팎으로 팬들과 만나는 기회를 확장하겠다"라는 계획도 전했다. 중계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특수 카메라 장비 도입과 트래킹 데이터를 활용, KBO 중계 방송 품질을 한층 높이면서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여 팬들에게 더 즐거운 콘텐츠를 선사할 방침도 밝혔다. 더불어 첨단 기술을 활용해 영화관 등 다양한 공간에서 색다른 야구 시청 경험을 선사하고, 시각장애인 중계 음성 지원 사업을 지속하여 더 많은 팬들이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환경과 접근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구연 총재는 "KBO는 2025년에도 이러한 성과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지속 가능한 천만 관중 기반을 조성하는 데 전념하겠다. 겸손한 자세로 팬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이닝을 이어가겠다. 프로야구의 산업화를 가속화하여 양적·질적으로 탄탄한 리그로 성장할 수 있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하겠다"라고도 재차 강조했다. 안희수 기자 2025.01.06 15:05
영화

“휘발유 냄새 나는 영화”…‘브로큰’ 날 것의 하정우가 온다 [종합]

배우 하정우가 거침없는 날 것의 매력으로 겨울 관객들을 만난다.6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는 영화 ‘브로큰’ 제작보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메가폰을 잡은 김진황 감독을 비롯해 배우 하정우, 김남길, 유다인, 정만식, 임성재가 참석했다.‘브로큰’은 시체로 돌아온 동생과 사라진 그의 아내, 사건을 예견한 베스트셀러 소설까지, 모든 것이 얽혀버린 그날 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달려가는 남자의 분노의 추적을 그린 작품이다. 하정우는 출연 계기에 대해 “감독님의 전작인 ‘양치기들’을 인상 깊게 봤고 제작사(사나이픽처스) 대표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대표님이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고 마침 그때 제가 새롭고 거칠고 클래식한 작품을 찾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마음이 딱 맞았다”고 밝혔다. 이어 ‘브로큰’을 “휘발유 냄새가 나는 영화”라고 정의하며 “감독님이 이끈 현장 분위기,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을 낼 때 느낌이 딱 그랬다. 스릴러 반전 드라마, 액션 요소도 분명히 있지만, 드라마적 끌림이 강한 영화였다”고 털어놨다.하정우는 “전체 스토리를 구상하는 한신 한신이 밀도가 높고 굉장한 집중력을 요했다. 오랜만에 처음 연기, 영화를 시작할 때 느낌을 받았다”며 “헤어, 메이크업, 의상 선택에 있어서도 굉장히 직감적이고 본능적으로 하나하나 선택하면서 준비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가 민태다. 과거 창모파 에이스로, 동생을 위해서라면 하지 못할 것도, 가지 못할 곳도 없는 인물이다. 하정우는 “민태는 동생 대신 감옥에 다녀온 뒤 건설 노동자로 새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때 동생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며 “피붙이의 죽음이 그를 예전의 어둠 속으로 다시 인도한다. 그렇게 거침없이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고 복수 해나가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연기 주안점을 놓고는 “동생의 죽음을 알고 나서는 호흡이 바뀌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 시선의 초점까지도 달라졌다”며 “출소 후에는 누가 먹이를 주기를 기다리는 수사자 같았다면 동생 죽음을 안 후에는 눈이 돌아가서 오직 사냥감, 목표점만 향해 달라간다. 또 다른 야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를 듣던 김남길은 “하정우는 워낙 유머러스한 배우이고 현장을 항상 즐겁게 해주는 형이다. 근데 이번에는 날 것 같은, 날 선 모습을 많이 봤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동안 이만큼 깊은 진득한 느낌은 없었다. 팬 입장에서 좋았다”며 하정우의 변신을 자신했다.하정우는 단순 캐릭터 묘사 외에도 다방면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 올리는 데 일조했다. 특히 로케이션 촬영 당시 현장을 활용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며 전체 극을 풍성하게 채웠다.하정우는 “로케이션이 정말 많았다. 메인 장소인 춘천 안에서도 다양한 공간에서 이뤄졌다. 어떻게 하면 이 장소를 활용할 수 있을까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며 “지형, 지물, 그리고 세팅된 소품들을 자연스럽게 액션에 녹여내서 이용하면 사실감이나 극적 재미가 배가 될 듯해서 많이 찾아봤다”고 떠올렸다.하정우는 또 “소품 중에는 새롭고 참신한 것도 나온다. 무기로 나오는 파이프가 그중 하나”라며 “이걸 민태가 가방에 넣다가 극 후반부에는 종이백에 갖고 다닌다. 뭔가 이런 식으로 아이러니하면서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가 우리 영화에 녹아있다. 보시면 굉장히 독특할 것”이라고 귀띔, 작품 전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브로큰’은 오는 2월 5일 개봉한다.장주연 기자 jang3@edaily.co.kr 2025.01.0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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