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IS 캠프인터뷰] '1년 계약' 김태균, "마지막은 후회 없이, 직접 결정하고 싶다"
꽤 오랜 시간, 한화 김태균(38)은 팬들의 박수만큼이나 손가락질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팀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팀 간판스타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자 비난의 화살이 한 곳으로 집중됐다. 묵묵히 견뎠지만, 결과는 아팠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 세 번째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은 그는 총액 10억원에 1년짜리 계약을 했다. 구단은 2년까지 계약기간을 보장해주려 했지만, 김태균이 직접 "깔끔하게 1년만 계약하고 내년에 다시 평가받겠다"고 했다. 자신의 가치와 자존심은 스스로 지켜내고 말겠다는 명예회복의 의지다. 절치부심. 올해 김태균은 오직 그 한 단어만 떠올린다. 타석에 설 때마다 다시 한 번 팬들을 기대하게 만들고, '역시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야구 인생 대부분을 팀의 간판이자 대표 스타로 살았던 선수. 소속팀을 넘어 국가대표팀에서도 중심을 지켰던 강타자. 김태균은 처음으로 실감한 현실의 벽 앞에서 다시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기로 했다. 미국 애리조나주 메사에서 스프링캠프에 한창인 그는 "이대로 흐지부지 마침표를 찍으면 나중에 큰 후회를 할 것 같았다"며 "끝이라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내 마지막은 후회 없이 내가 결정하고 싶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스프링캠프 분위기는 어떤가. "한용덕 감독님께서 선수들 분위기를 편하게 이끌어 주시고, 선수들이 힘들 때는 알아서 조절도 잘 해주신다. 또 (이)용규가 주장을 맡으면서 캠프에 오기 전부터 각오를 단단히 하고 준비를 많이 해온 것 같다. 젊은 선수들과 잘 어울리려 하고, 나를 비롯한 베테랑 선수들과의 사이에서 가교 역할도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젊은 선수들도 밝게 훈련을 잘 하고 있어서 팀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좋은 것 같다." -이번 캠프에서 스스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공을 배트 중심에 정확히 맞추려 하고 있다. 연습할 때는 잘 되는데, 실전에서는 아직 잘 안 된다. 주위가 산만해서 그런가. (웃음) 일단 지금은 연습량을 늘려서 컨디션을 일부러 다운시켜 놓으려고 하고 있다. 개막에 맞춰서 끌어 올려야 하니까. 그래서 지금 몸이 굉장히 무겁고 지치고 힘들다. (웃음)"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체중을 재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다들 많이 빠진 것 같다고 하더라. 특별히 감량하려고 한 건 아닌데 웨이트 트레이닝 시간이 늘어서 그런 것 같다. 이전에는 캠프 때 기술 훈련이 많아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올해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조금 더 집중하다 보니 살도 조금씩 빠지는 것 같다." -세 번째 FA가 돼 1년 계약을 했다. 스스로에게도 도전이라고 했는데.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지금 내 나이 정도의 선수에게 기간을 보장 받지 못하는 1년 계약은 분명 모험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계기가 필요해서 그런 선택을 했다. 처음 팀에 들어왔던 신인 때, 내 자리를 잡으려고 치열하게 운동했던 그 시기처럼 이번 시즌을 만들어 가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도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FA 협상을 통해 지난 두 차례 계약 때와는 달라진 현실을 실감했나. "상황이 달라졌다기보다는 나 자신이 많이 부족했다는 점을 당연히 느끼게 됐다. 그 전에 계약할 때와는 시장 분위기부터 모든 게 달랐다. 그 전에는 (다른 팀에서) 서로 오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는 현실 아니겠나. 그런 부분을 받아들여야 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다." -1년 계약 결정도 그렇게 동기를 부여하겠다는 의미였나. "그렇다. 어차피 이번 시즌이 나의 끝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1년 계약을 했고, 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올해 잘해서 실력으로 인정 받고 싶다는 생각이 있기도 했고, 나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는 성적을 내고도 장기 계약을 보장 받았다고 그냥 남아 있는 것은 싫었다. 1년 계약을 해놓으면, 내가 납득이 안 되고 한계라는 것을 느낄 때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의미도 포함된 것 같다. 물론 그런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 다시 마음을 잘 잡는 게 먼저다." -현역 생활의 마지막은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다는 뜻으로 들린다. "은퇴한 뒤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2~3년 계약을 해놓고 마지막에 흐지부지 끝내면, 그 후에 많이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결국은 '마지막이다'라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쏟아 붓고, 그때 어떤 결정을 하든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누가 알겠나. 갑자기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마음이 생길지. (웃음) 어쨌든 마지막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한화팬들에게 김태균은 특별한 존재다. 한화도 김태균에게 특별한 팀일 듯한데. "누구나 하는 말이겠지만, 내가 처음 입단해 프로 선수의 꿈을 이룬 팀이고 '선수 김태균'을 만든 팀이니 당연히 각별하지 않겠나. 내가 자란 지역 연고(천안 북일고 출신) 구단이니 운동하면서 계속 입단을 꿈꿨고, 그 유니폼을 입게 돼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도 컸다. 장종훈, 송진우, 정민철 같은 대선수들과 한 팀에서 뛰게 됐을 때는 기분도 남달랐고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또 지금 감독님, 코치님, 단장님처럼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겪고 선후배 관계로 서로 잘 버텨왔던 분들이 한 팀에 함께 계시니 선수들에게도 힘이 되고 목표 의식도 생기는 것 같다. 나도 그렇고, 젊은 선수들도 '앞으로 더 잘해서 저런 모습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아무래도 '원 팀'이라는 의식이 생긴다." -한화의 좋은 시절, 어려운 시절을 다 겪은 선수로서 최근 어떤 생각을 많이 하나. "내가 한국시리즈 준우승(2006년) 멤버 아닌가. 생각해 보면 그땐 어린 시절이라 선배들 모두 개인 기량이 출중했고 후배들을 잘 이끌어줬다. 다른 걱정을 크게 안 하고 내 할 일만 알아서 해도 되는 분위기였다. 좋은 선수들이 위에서 중심을 잡아 주고 믿음을 줘서 팀이 잘 된 거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최근 수 년 간 팀이 좋지 않았던 건 결과적으로 나를 비롯한 고참들이 중심을 잘 못 잡아서 그런 게 아니겠나. 그런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책임을 많이 느끼고 있다." -하지만 한화 베테랑 선수들도 후배들을 잘 이끌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들었다. "다들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이용규, 최진행, 송광민, 이성열, 정우람, 안영명, 윤규진 같은 고참 선수들이 늘 책임감을 갖고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물론 그런 선수들이 그동안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은 결과로 말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다. 2018년에 좋은 분위기를 잘 만들었는데, 지난해 다시 성적이 떨어져서 그게 가장 아쉽다. 올해 다시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려면 내 역할도 중요하니, 나 역시 더 잘해서 분위기를 잘 만들어보고 싶다." -어느 정도 성적을 내야 스스로 올해는 '성공'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20년 가까이 야구를 하면서 한 번도 내 목표를 수치로 정해보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흐른 만큼 팬분들이나 구단, 감독님, 코치님들이 과거에 기대했던 김태균과 현재의 김태균은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예전만큼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땅에 떨어진 신뢰와 믿음만큼은 다시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예전처럼 타석에 김태균이 나오면 '뭔가 하나 해낼 것 같다'는 기대를 하실 수 있게, 그렇게 해보고 싶다. '역시 김태균'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 배영은 기자
2020.03.03 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