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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야구

굴욕적인 연봉 협상에 라쿠텐 떠난 다나카, 15억원에 '거인' 입단식

레전드 다나카 마사히로(36)가 '연봉 자존심'을 어느 정도 지켜냈다.다나카는 25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일본 프로야구(NPB)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기자회견에 참석, 등 번호 11번을 받았다. NPB를 대표하는 베테랑 다나카는 시즌 뒤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연봉 협상이 원활하지 않아 퇴단했다. 거취에 관심이 쏠린 그는 NPB 명문 요미우리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게 됐다. NPB 통산 119승(68패)을 모두 라쿠텐 소속으로 달성한 다나카는 메이저리그(78승) 성적을 포함하면 일미 통산 200승에 3승을 남겨 놓고 있다.산케이 스포츠를 비롯한 일본 현지 매체는 다나카와 요미우리의 계약 기간이 1년이며 연봉은 1억6000만엔(15억원)이라고 추정했다. 다나카의 올해 연봉은 2억6000만엔(24억원). 스포츠호치는 지난달 '다나카의 연봉이 2억6000만엔에서 1억4000만엔(13억원) 이상 삭감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등 라쿠텐과의 연봉 협상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2021년 1월 MLB 복귀할 당시 다나카는 연봉 9억엔(84억원)으로 2년 계약하는 등 '거물급 몸값'을 자랑했다. 성적 부진으로 거듭 연봉이 깎였는데 이번 겨울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시즌 1경기 출전(5이닝)에 그치자, 대대적인 삭감이 예고된 것. 다나카의 선택은 '이적'이었다. 앞서 스포츠호치는 '라쿠텐은 다나카에게 감액 제한을 훌쩍 뛰어넘는 연봉 5000만엔(5억원), 성과급을 포함한 총액 1억엔(10억원) 이상 정도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나카는 스스로 FA를 해달라며 퇴단을 요청했다'고 부연하기도 했다.다나카는 NPB와 MLB 무대를 평정한 레전드. 요미우리는 다나카의 연봉을 최대한 보전해 줬다. 요시무라 요미우리 본부장은 "다나카의 실적은 내가 말할 필요도 없다. NPB와 MLB, 사무라이 저팬(국가대표) 등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라는 걸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이라며 "요미우리는 다음 시즌 일본 제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나카를 영입할 수 있게 돼) 팀을 대표해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기대를 내비쳤다. 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4.12.25 18:19
일본야구

NPB에서 홈런에 완봉승까지 따낸 '팔방미인'…성적 부진 탓에 4년 인연 정리

수준급 오른손 투수 사이 스니드(32)가 새 소속팀을 찾는다.일본 매체 스포니치아넥스는 '올 시즌까지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뛴 스니드가 자유계약선수(FA)로 공시됐다'라고 7일 전했다. 2020년 12월 일본 프로야구(NPB)에 진출한 스니드는 올 시즌까지 줄곧 야쿠르트에서만 활약했다. 통산 NPB(4년) 성적은 24승 24패 평균자책점 3.95. 지난해 9월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투런 홈런을 쏘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스니드는 "18세 이후 첫 홈런을 칠 수 있어 기쁘다. 연습을 지도해준 선수와 코치에게 감사하다"라고 말했다.스니드는 평균 93마일(149.7㎞/h) 안팎의 직구에 슬라이더, 커브, 스플리터 등을 조합하는 유형이다. NPB 첫 세 시즌 동안 3점대 평균자책점으로 활약하는 등 롱런 가능성을 내비쳤다. 지난해 6월 요미우리전에선 NPB 첫 완봉승을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24경기 등판, 2승 8패 평균자책점 5.03(120이닝)으로 부진하자 인연이 끊어졌다. 야쿠르트 구단은 스니드와 함께 미구엘 야후레의 재계약도 포기했다. 지난해 12월 야쿠르트와 계약한 야후레는 시즌 23경기에서 5승 10패 평균자책점 3.34를 기록했다. 5월 이후 20경기에서 단 1승을 추가하는 데 그쳐 퇴단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오가와 준지 야쿠르트 단장은 "새로운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게 됐다"라고 말했다.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4.11.07 20:39
일본야구

"사실상 외국인 투수 빅3" KBO리그가 주목한 '거물', 트리플A ERA 11.28 진땀

KBO리그가 주목한 거물급 외국인 투수 타일러 비디(31)의 부진이 눈에 띈다.일본 매체 풀카운트는 '지난해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뛴 비디가 마이너리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12일 전했다.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A 소속 비디의 시즌 성적은 12경기(선발 5경기) 4패 평균자책점 11.28. 잠시 메이저리그(MLB) 무대를 밟기도 했으나 이마저도 신통치 않다. 시즌 MLB 성적은 13경기 1승 평균자책점 8.36이다.지난해 비디는 일본 프로야구(NPB) 요미우리 소속으로 30경기(선발 6경기) 등판해 평균자책점 3.99를 기록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스윙맨으로 안정적인 활약을 이어가 재계약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퇴단을 선택, 미국으로 돌아갔다. 잠시 거취에 물음표가 찍히면서 KBO리그에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한 외국인 스카우트는 "타일러 비디와 토마스 해치(히로시마 도요 카프) 코디 폰스(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사실상 외국인 투수 빅3"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MLB 복귀를 선택한 비디를 향한 인기는 뜨거웠다. 지난 1월 미국 스포츠 전문채널 ESPN은 비디의 클리블랜드행을 보도하며 휴스턴 애스트로스·마이애미 말린스·샌디에이고 파드리스·피츠버그 파이리츠·미네소타 트윈스·뉴욕 양키스 등 여러 구단의 관심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비디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1순위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지명됐지만 계약하지 않았다. 대학(밴더빌트)에 진학한 그는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다시 1라운드 전체 14순위에 지명, 프로 첫발을 내디뎠다. 입단 계약금만 261만 달러(36억원). MLB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무색했다. 화려한 과거 이력을 고려하면 현재의 성적표가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풀카운트는 '비디는 지난해 요미우리 구단 사상 첫 일본 진출 첫 해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며 '올 시즌 클리블랜드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고 캠프 초청 선수를 거쳐 빅리그에 승격, 첫 등판부터 5경기 연속 무실점 호투를 보였으나 이후 실점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비디는 웨이버를 거쳐 마이너리그 트리플A로 강등된 뒤 부상자명단(IL)까지 거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11점대 평균자책점을 고려하면 MLB 로스터 재진입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4.08.12 17:11
메이저리그

'MLB 178홈런→NPB 타율 0.176' 2군행에 반발, 개막도 전에 요미우리 퇴단 결정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178홈런을 친 루그네어 오도어(30)가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의 2군행에 반발, 계약 해지 후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일본 주요 언론은 26일 "오도어의 요미우리 퇴단이 확정됐다. 요미우리 구단도 선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도어는 MLB에서 총 10시즌 동안 1154경기에서 타율 0.230 178홈런 568타점을 기록했다. 추신수와 함께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활약했고, 2016년 5월 토론토 블루제이스전에서는 거친 슬라이딩을 한 호세 바티스타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 출전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1994년생으로 한창 전성기를 맞을 나이, 오도어는 최근 3년 간 뉴욕 양키스-볼티모어 오리올스-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전전했다. 지난해엔 59경기에서 타율 0.203 4홈런 18타점으로 부진했다.결국 오도어는 눈을 돌려 지난 1월 말 일본 최고 명문 요미우리와 계약 합의를 이뤘다. 비자 문제로 미야자키에서 열린 1차 캠프는 불참한 오도어는 오키나와 캠프부터 합류했다. 그러나 시범경기에서 타율 0.176(34타수 6안타)로 부진했다. 홈런과 타점은 하나도 없었다. 아베 신노스케 감독이 이끄는 요미우리 구단은 지난 24일 시범경기 최종전 후 오도어에게 2군에서 조정기를 거칠 것을 제안했다. 요미우리 사다아키 편성본부장은 "오도어에게 2군으로 이동해 조정기를 거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려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선수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계약 조항에는 모든 경기를 1군에서만 출전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적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오도어는 개막을 사흘 앞두고 일본을 떠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형석 기자 2024.03.27 09:19
일본야구

日 303홈런 거포, 동료 폭행 후 기회 준 요미우리 퇴단 결정···옵트아웃으로 이적 모색

일본 프로야구 현역 최다 홈런 2위(303개)의 나카타 쇼(34)가 옵트아웃 권리를 행사해 '최고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떠나기로 했다. 3년 계약 중 남은 2년을 파기하고 이적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 닛칸스포츠는 15일 "나카타 쇼가 요미우리와 3년 계약의 첫 시즌만 소화했다. 그러나 나머지 (2년) 계약을 포기할 있는 권리가 계약 조항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 계약을 파기하고 다시 FA 자격을 얻는 권리인 옵트 아웃은) 일본 야구계에서 극히 이례적인 결정"이라고 전했다. 나카타 쇼의 이런 선택은 출전 기회 감소 영향이다. 나카타 쇼는 올 시즌 후반부 대타 출장이 늘어나는 등 총 92경기 출장에 그친 가운데 성적도 타율 0.255 15홈런 37타점으로 부진했다. 지난 5월 오른 허벅지 부상으로 이탈한 뒤 출전 시간이 점점 감소했다. 대타 출장도 21경기나 된다. 나카타 쇼는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거포 출신이다. 201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15년 프리미어12, 2017년 WBC 일본 대표팀의 중심 타자로 활약했다. 니혼햄 파이터스 시절 10년 연속 100경기 이상 출전했고, 통산 303홈런으로 현역 선수 기준 최다 2위에 올라있다. 개인 통산 1500안타, 3차례 퍼시픽리그 타점왕도 달성했다.30대 접어든 뒤 나카타 쇼의 야구 인생은 어려움의 연속이다. 나카타 쇼는 2021년 8월 니혼햄 소속 당시 동료 선수를 폭행해 일본 야구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니혼햄이 프랜차이즈 스타인 그를 방출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일본 독립리그나 대만 프로야구로 이적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때 요미우리 하라 다쓰노리 전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나카타 쇼는 요미우리로 무상 트레이드됐다. 재기의 기회를 얻은 나카타 쇼는 2022시즌 개막 후 2군에 강등되기도 했지만 타율 0.269 24홈런 68타점으로 부활했다. 따로 FA(자유계약선수) 신청을 하지 않고 요미우리와 3년 다년 계약을 했다. 올해 추정 연봉은 전년 대비 두 배 오른 3억엔(26억원)이었다. 그러나 요미우리에선 내년 시즌에도 기회 보장이 쉽지 않다. 2년 연속 4위에 그친 요미우리는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나고, 아베 신노스케가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다. 아베 신노스케 감독의 내년 시즌 구상에 따르면 나카타 쇼의 입지가 더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게티이미지 나카타 쇼는 "야구 선수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앞으로 10년을 더 선수로 뛸 것도 아니다"며 "지명타자든 수비든 경기에 더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닛칸스포츠는 "타 구단 이적을 목표로 하는 나카타 쇼는 이적 시 선수 보상도 발생하지 않는다"며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퍼시픽리그를 포함해 선택지를 점점 좁혀 나간다"고 전했다. 몇몇 팀이 나카타 쇼에게 관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형석 기자 2023.11.15 10:18
일본야구

2015년 빅리그 14승+161㎞/h 파이어볼러, 日 요미우리 '퇴단'

요미우리 자이언츠 외국인 투수 루비 데 라 로사(33)가 팀을 떠난다. 일본 스포츠호치는 20일 데 라 로사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퇴단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데 라 로사는 2019년 6월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었다. 9월 10일 열린 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전에서 시속 161㎞ 강속구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해 26경기에 등판, 1승 5홀드 8세이브 평균자책점 2.25로 활약했다. 재계약에 성공한 데 라 로사의 연봉은 3000만엔(이하 추정)에서 1억3000만엔으로 수직으로 상승했다. 2020년에는 5홀드 17세이브 평균자책점 2.56, 지난해에는 13홀드 7세이브 평균자책점 2.30을 기록했다. 올 시즌 성적은 1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2.30. 표면적인 성적은 앞선 세 시즌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개막 직후 2군을 다녀오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 결국 '퇴단'으로 요미우리와 인연을 정리했다.데 라 로사의 일본 프로야구(NPB) 통산 성적은 4승 34홀드 33세이브 평균자책점 2.53이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인 데 라 로사는 2011년 LA 다저스 소속으로 미국 메이저리그(MLB)에 데뷔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뛴 2015년 14승을 따내며 팀 내 다승 1위(2위 제레미 헬릭슨·9승)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부침을 거듭했고 NPB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열었다. MLB 통산(7년) 성적은 26승 30패 평균자책점 4.49다. 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2.11.20 22:53
일본야구

강정호 동료였던 폴랑코, NPB 요미우리 1년 만에 '퇴단'

외야수 그레고리 폴랑코(31)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떠날 전망이다. 일본의 스포츠호치는 15일 폴랑코의 퇴단 소식을 전했다. 폴랑코는 지난 1월 큰 기대 속에 일본 프로야구(NPB)에 진출했다. 요미우리는 폴랑코에게 등 번호 23번 유니폼을 입히기 위해 단년 계약으로 연봉 2억5000만엔(추정·24억원)을 보장했다. 폴랑코는 시즌 138경기에 출전, 타율 0.240(438타수 105안타) 24홈런 58타점을 기록했다. 적지 않은 홈런을 때려냈지만 출루율이 0.306으로 낮고, 득점권 타율도 0.183로 좋지 않았다. 스포츠호치는 '시즌 전반에는 우익수로 기용됐지만, 수비에서 과제를 남겼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인 폴랑코는 2014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빅리그 데뷔했다. 2016년과 2018년에는 각각 22홈런, 23홈런을 기록하며 펀치력을 인정받았다. 2021년까지 메이저리그(MLB) 통산 성적은 타율 0.241 96홈런 362타점. 한때 강정호의 피츠버그 동료로 그라운드를 함께 누비기도 했다. 2019년을 기점으로 개인 성적이 급락했고 지난해 아시아리그로 눈을 돌렸다. NPB 최고 명문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어 관심이 쏠렸지만 1년 만에 짐을 싸게 됐다. 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2.11.15 11:46
프로야구

"이승엽 클래스는 여전하네요" MLB 317홈런 타자도 인정했다

2006년 3월 13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8강) 1조 첫 경기 멕시코전. 3번 타자·1루수로 선발 출전한 이승엽이 1회 말 1사 1루에서 로드리고 로페스의 6구째 체인지업을 때려 결승 2점 홈런(2-1 승리)을 터뜨렸다. 전년도 미국 메이저리그(MLB) 볼티모어 오리올스 소속으로 15승을 거둔 투수(로페스)를 상대로 이승엽이 한국 프로야구 최고 홈런 타자의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줬다. 이 경기에 6번 타자·1루수로 나선 멕시코의 아드리언 곤잘레스는 이승엽이 베이스를 도는 모습을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날 3타수 1안타(멕시코 총 5안타)를 기록한 곤잘레스는 우리에게 LA 다저스 시절 류현진(현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도우미로 잘 알려져 있다. ━ 한국서 만난 두 '국민타자' 이승엽(46)과 곤잘레스(40)가 16년 만에 한국 땅에서 만났다. 지난 16~17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컬처파크에서 열린 '홈런더비 X' 무대에서였다.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MLB 사무국이 주최한 이번 행사에서 곤잘레스는 닉 스위셔, 자니 곰스, 지오바니 소토 등 은퇴 선수와 함께 MLB 4개 팀을 대표해 방한했다. 곤잘레스는 "16년 전 이승엽이 결승 홈런을 친 장면을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팽팽한 투수전(한국 2-1 승)으로 펼쳐져 더 또렷하게 생각난다"며 "이승엽의 부드러운 스윙이 돋보였다"고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승엽은 곤잘레스를 보자마자 "에드가 곤잘레스와 (2010년)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함께 뛴 적 있다"고 소개했다. 아드리언 곤잘레스의 형 루이스 곤잘레스도 MLB(193경기 출전)를 경험한 선수 출신이다. 이승엽은 "2006년 한국-멕시코전에 곤잘레스도 출전했다. 당시 샌디에이고 소속이었던 걸로 기억난다"며 "워낙 유명했고 수비력도 좋은 선수였다. 스윙이 아주 부드럽고 타격 타이밍도 잘 잡았다"고 정확하게 기억했다. 이어 "다저스에서 류현진을 많이 도와줘 더 친숙하다. 총연봉도 1억 달러(실제로는 1억9064만8500달러·2655억원)를 넘지 않았을까 싶은데. 멕시코 대표팀 사상 가장 좋은 타자 아닌가"라고 화답했다. 서로의 평가처럼 둘은 닮은 점이 많다. 이승엽은 '국민타자'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최고 스타였다. 곤잘레스 역시 멕시코를 대표하는 타자다. 곤잘레스는 미국과 멕시코 이중국적을 갖고 있지만, WBC 1~3회 모두 멕시코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그라운드 밖에서 선행을 펼치는 점도 비슷하다. 곤잘레스는 장학 재단을 설립, 암환자를 비롯한 라틴계 어린이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는 선수에게 수여하는 로베르토 클레멘테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승엽도 은퇴 직후인 2018년 야구 꿈나무 육성을 위한 재단을 설립, 재능 기부와 함께 소아암 환우 등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 메이저리그 꿈꿨던 이승엽 프로 입단 때부터 '최고'였다. 이승엽은 1995년 고졸 신인 최고대우 계약금(1억 3200만원)을 받고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곤잘레스는 2000년 MLB 전체 1번으로 플로리다에 지명된 최고 유망주 출신이다. 내야수가 전체 1번으로 뽑힌 건 1993년 알렉스 로드리게스(은퇴·통산 696홈런) 이후 처음이었다. 같은 좌타자에 포지션(1루수)도 같다. 이승엽은 KBO리그 한 시즌 최다 56홈런(2003년)을 비롯해 각종 홈런 기록을 갖고 있다. KBO리그 개인 최다 홈런(467개)을 비롯해 한·일 통산 홈런만 626개(일본 159개)에 이른다. 홈런왕을 5차례나 차지했다. 일본 최고 명문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제70대 4번 타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국제무대에서는 중요할 때 한방을 터뜨리는 '해결사'였다. 오죽하면 '합법적 병역 브로커'라는 별명까지 있다. 곤잘레스 역시 빅리그 15년 동안 홈런 317개를 때린 강타자다. 텍사스 레인저스-샌디에이고 파드리스-보스턴 레드삭스-LA 다저스-뉴욕 메츠를 거치는 동안 총 1929경기에서 통산 타율 0.287 1202타점을 기록했다. 곤잘레스 역시 멕시코 대표팀의 최고 해결사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이승엽은 1회 WBC 멕시코전을 포함해 대회 기간 총 홈런 5개를 기록했다. 대회 홈런왕과 공동 타점왕에 올랐다. 켄 그리피 주니어와 같은 타점 10개를 올렸다.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 '매운맛'을 선보인 이승엽도 곤잘레스처럼 MLB에서 뛸 기회가 있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KBO리그를 평정한 이승엽은 미국 진출 의지가 컸다. 2002년 시카고 컵스, 2003년에는 플로리다 말린스의 초청 선수로 참가했다. 이승엽은 "미국 야구를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어 추진했다. 2002년 컵스에서 캐리 우드(통산 86승)와 새미 소사(609홈런), 프레드 맥그리프(493홈런) 등 스타 선수와 함께 훈련했다. 어느 날 소사와 사진을 찍었는데 팔뚝이 정말 엄청나게 굵더라. 반면 난 너무 왜소했다"고 떠올렸다. 이승엽은 컵스 소속으로 시범경기 7경기에서 홈런 2개를 기록했고, 이듬해 플로리다에서도 홈런 2개를 터뜨려 미국 진출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그는 "3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유로운 훈련 분위기에서 많은 공부를 했다. 동기부여도 됐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2002년 47홈런을 터뜨렸고, 2003년에는 아시아 한 시즌 최다인 56홈런을 날렸다. 이승엽은 2003년 시즌 종료 후 부푼 꿈을 안고 아내 이송정 씨와 미국으로 건너갔다. LA 다저스 홈구장에서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는 "다저스와 시애틀 매리너스 관계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에 다저스와 한 차례 더 만났는데 (계약 조건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라고 했다. 그는 "미국으로 출국 전에는 계약이 잘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 야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더라. 그 부분이 너무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KBO리그를 거쳐 미국 무대에 진출한 야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국 야구의 자존심인 이승엽이 예상보다 낮은 조건에 사인하는 것도 국민 정서와 거리가 있었다. 결국 이승엽은 일본 지바 롯데 말린스와 2년 총 5억엔(49억원)에 계약했다. 지바 롯데 입단 기자회견 당시에는 MLB 진출의 꿈을 접은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19년 전을 회상하며 "당시 결혼도 했고 가족 부양의 책임도 있었다. 또 어머니가 수술 후 병상에 누워 계셨다. 협상이 내 예상과는 달랐다. 내 꿈만 좇아 (미국에 가는 건) 무모하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에 남으면 FA(자유계약선수) 4년 계약을 해야 하니까 우리보다 수준이 더 높은 일본에서 2년 동안 뛰고…(다시 한번 도전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2012년 삼성에 복귀 후 2017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그는 "은퇴하고 나니 성공과 실패를 떠나 미국에서 한 번도 뛰지 못해 정말 아쉽더라. 사실 2011년 일본 오릭스 퇴단 때 미국 마이너리그라도 한 번 가볼까 생각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그는 "그때 한국(삼성)에 돌아오지 않으면 영원히 못 돌아올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 두 거포의 클래스는 여전했다 은퇴 후 5년이 흘렀지만, 이승엽은 여전히 홈런 타자의 위용을 자랑했다. 지난 17일 컵스 유니폼을 입고 출전한 홈런 더비에서 25개의 타격 기회 중 11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상대편이었던 다저스의 곤잘레스가 이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곤잘레스는 "이틀 동안 이승엽의 부드러운 스윙을 보니 2006년 WBC 멕시코-한국전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전력분석 등을 통해) 이승엽이 결정적일 때 해결하는 타자라고 여겼다. 세월이 흘렀지만 역시 클래스가 여전히 그대로임을 느꼈다. 대단한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이승엽은 홈런더비 X MVP에 뽑힌 곤잘레스를 향해 "세계적인 선수와 어울려 영광"이라고 말했다. 영종도=이형석 기자 2022.09.23 05:25
야구

가족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간 스모크, 요미우리 퇴단 공식 발표

저스틴 스모크(35)의 요미우리 퇴단이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일본 스포츠호치를 비롯한 현지 매체는 '스모크가 자유계약선수로 공시됐다'고 24일 일제히 전했다. 이미 예견된 조치다. 스모크는 지난 17일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실제 미국에서 가족과 재회하는 영상이 공개돼 화제였다. 스모크는 메이저리그(MLB) 통산 홈런이 무려 196개인 거포다. 토론토 소속이던 2017년에는 홈런 38개를 쏘아 올리기도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일본 프로야구(NPB) 명문 요미우리와 2년 계약(추정 연봉 300만 달러·32억원)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스텝이 꼬였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한 일본 정부의 입국 제한 조치로 인해 4월 말에야 데뷔전을 치렀다. NPB 첫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며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일본에서 함께 할 예정이던 가족들의 입국이 불발되면서 이에 따른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결국 계약을 파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결단을 내렸다. 스모크는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고 34경기에 출전했다. 성적은 타율 0.282, 7홈런, 14타점. 스포츠호치는 '스모크가 나머지 연봉을 반납하고 퇴단한다'고 설명했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1.06.24 15:07
야구

실종됐던 카도쿠라 무사 귀가··· 아내 “돌아온 것에 감사, 우울증 진단받아”

갑자기 행방이 모연해 ‘실종 미스터리’에 휩싸였던 카도쿠라 켄(48) 전 주니치 2군 투수코치가 무사 귀가했다. ‘스포츠호치’를 비롯한 다수 일본 언론은 7일 카도쿠라가 6일 밤 요코하마 자택에 돌아왔다고 전했다. 카도쿠라의 아내 타미에 씨가 블로그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카도쿠라는 지난달 15일부터 주니치 2군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했다. 이튿날 그의 가족이 경찰에 수색을 요청했다. 이후 구단에 ‘일신상의 사정으로 5월 15일 자로 탈퇴하겠다’라는 카도쿠라가 보낸 우편이 도착했다. 이후 각종 의혹이 제기됐으나, 3주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타미에 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언론인 여러분, 팬 여러분께”라며 운을 떼며 “남편 카도쿠라가 어젯밤 무사히 자택에 돌아왔다는 것을 말씀드린다. 그동안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 가족은 무사히 돌아와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 오늘 의사 진찰을 통해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당분간 치료와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원래대로라면 카도쿠라 본인이 관계자 여러분께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를 드려야 하지만, 우리 가족조차 실종 이유와 지금까지 경위를 물을 수 없는 상태”라며 “당분간 의사 지침에 따라 치료에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우선은 회복하고 나서 사과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해와 협력을 부탁드린다”고 양해를 구했다. 카도쿠라는 1996년 일본프로야구(NPB)에 데뷔해 긴테쓰와 요코하마, 요미우리 등을 거쳤다. 이어 2009년부터 2년 동안 한국프로야구(KBO) SK 와이번스에서 뛰었고, 2011년에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했다. 은퇴 후 삼성에서 코치를 역임하기도 했고 2016년 일본으로 돌아가 해설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일신상의 사정으로 물러난다는 자필 사퇴서를 전한 뒤 구단은 확인 절차를 거친 뒤 카도쿠라의 퇴단을 발표했다. 이후 도박, 채무, 불륜 등 각종 우려와 의혹이 증폭됐다. 지난주에는 요코하마의 한 공원에서 노숙하는 모습이 발견됐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김영서 인턴기자 2021.06.07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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