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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때론 외교전쟁으로 번지는 세리머니

2006년 3월 16일, 서재응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다.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전, 야구대표팀이 숙명의 한·일전에서 2-1로 승리하며 4강 진출을 확정한 직후였다.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 일본의 마지막 타자 다무라 히토시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낸 순간, 한국 선수들은 더그아웃에서 달려 나와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했다. 대표팀 투수 서재응은 교민들의 박수갈채 속에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태극기 세리머니'에 일본 언론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스즈키 이치로를 비롯한 일본 선수단도 불만을 쏟아냈다. 가뜩이나 신경전이 심한 한·일전에서 펼친 '태극기 세리머니'는 이후로도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상당히 오래 이어졌다. 스포츠에서 세리머니는 선수들과 팬이 감응하는, 가장 짜릿한 순간이다. 득점이나 승리의 순간 보여주는 화려한 세리머니 하나에 팬은 환호한다. 경기에 더 집중하게 된다. 동시에 세리머니는 상대를 자극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때로는 팀 또는 국가 간 신경전으로 번질 수 있다. 특히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맞대결이 성사될 때마다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지는 한·일전은 세리머니가 외교 전쟁으로 번지는 대표적인 무대다. 2011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에서 성사된 한일전에서 전반 23분 페널티킥을 성공한 뒤 '원숭이 세리머니'를 펼쳐 논란이 된 기성용의 예가 대표적이다. 기성용의 세리머니는 상대 일본을 도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원숭이 흉내가 아시아인에 대한 대표적인 인종차별인 만큼 국제축구연맹(FIFA)의 징계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대한축구협회가 일본축구협회와 대화하며 오해를 풀어 별다른 징계 없이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또 다른 세리머니가 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보여준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다.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올림픽 대표팀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꺾고, 한국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남자축구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자체도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치열했지만, 경기 후 박종우가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승리 세리머니를 펼친 뒤부터 외교 전쟁으로 비화했다. 박종우는 '독도 세리머니' 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 50조 위반을 근거로 스포츠중재재판소(CAS) 판결을 기다렸다. 결국 6개월을 기다린 끝에 겨우 메달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가 '독도 세리머니'와 관련해 조중연 당시 대한축구협회장 이름으로 일본축구협회장에 사과성 공문을 발송한 사실이 알려져 '저자세 축구 외교'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조중연 전 협회장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긴급현안보고에 참석해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한·일전에서만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5월에는 18세 이하(U-18) 남자 축구대표팀이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한국 U-18 대표팀은 중국 쓰촨성에서 열린 U-18 4개국 판다컵 축구대회에서 3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우승컵에 발을 올린 채 기념사진을 찍고, 소변을 보는 시늉을 하는 등의 세리머니를 해 논란이 됐다. 우승 세리머니가 현지 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중국 SNS인 웨이보에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비난이 쏟아졌다. 대회 주최 측은 대표팀의 행위를 확인한 뒤 대한축구협회에 엄중한 항의와 함께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표팀은 서둘러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대회 조직위원회는 자국 내 반대 여론과 스포츠맨십 훼손을 내세워 우승컵을 박탈했다. 국가 간 신경전을 넘어 인종차별로 이어지는 세리머니들도 많다. 박지성을 비롯해 유럽에서 뛰는 수많은 축구 선수들과 해외 무대에 진출한 스포츠 선수 중 대다수가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눈 찢기 세리머니' 등을 경험했다. 2017년에는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 한국과 우루과이의 8강전에서 페데리코 발베르데가 동점 골을 넣은 뒤 '눈 찢기 세리머니'를 펼쳐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지탄 받은 발베르데는 "친구가 부탁한 세리머니였으며 아시아인 비하 의도는 없었다"고 거듭 사과했다. 김희선 기자 2020.11.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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