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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예견된 판정 시비·린샤오쥔 변수...金 6개로 응수한 한국 쇼트트랙 [하얼빈 AG]

3년 전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개최국 중국의 '홈 텃새'는 스포츠팬의 아우성을 자아냈다.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돼 쇼트트랙 강국들이 '역대 최초' 금메달을 노린 혼성 2000m 계주부터 그랬다. 당시 중국은 준결승 2조에서 탈락권이 3위에 하고도, 심판 판정으로 인해 결승전에 올랐다. 선수들 사이 배턴 터치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심판진은 미국에 페널티를 내렸다. 중국은 이 종목에게 금메달을 차지한다. 한국도 남자 1000m에서 황대헌과 이준서가 페널티 판정을 받아 탈락하며 희생양이 됐다. 지난 7일 개막한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AG)에서도 석연치 않은 판정이 논란을 자아냈다. 8일 헤이룽장 빙상 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남자 500m 결승에서 '전' 한국 대표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 레이스 중 같은 중국 선수 쑨룽이 밀어주는 힘에 가속이 붙은 것 같은 장면이 있었다. 동료의 도움을 받는 건 계주 외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결국 린샤오쥔은 박지원을 밀어내고 금메달을 땄다. 금메달을 따고 감격한 린샤오쥔을 향해 박지원 등 한국 선수들은 축하를 건넸다. 하지만 중국 언론은 린샤오쥔이 여전히 한국에서 미움을 받고 있다고 곡해하는 시선을 보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판정은 9일 열린 남자 5000m 계주에서도 나왔다. 레이스 막판 중국에 1위를 내준 한국은 마지막 코너를 돌던 박지원이 린샤오쥔과의 경합에서 밀리지 않고, 자리를 지켜냈지만 그사이 카자흐스탄 선수에게 1위를 내주고 말았다. 경기 뒤 심판은 손을 사용한 린샤오쥔이 아닌 박지원에게만 페널티 판정을 내렸고, 결국 한국은 메달을 따지 못했다. 앞서 열린 여자 3000m 계주도 김길리가 마지막 바퀴 직선 주로에서 중국 궁리에게 인코스를 내주고서 블로킹을 시도하다가 접촉해 넘어지며 입상권에 들지 못한 바 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한국 선수단의 공식 훈련 시간을 경기 시간과 다른 오후 시단 대 집중 배치하며 보이지 않는 핸디캡을 줬다. 하지만 유리한 게 없는 상황 속에서 AG를 치른 한국 쇼트트랙은 대회 총 9개 금메달 중 6개를 획득하며 '최강국' 자존심을 지켰다. 이는 역대 최다 금메달 타이기록이다. 혼성 계주에 이어 김길리와 박지원이 각각 1000m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최민정은 역대 최초로 AG 500m에서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쇼트트랙 마지막 날이었던 9일에도 최민정이 1500m에서 AG 신기록을 세우며 대회 3관왕 영예를 화려하게 장식했고, 장성우까지 1500m 결승에서 1위에 오르며 개인전 6개 종목 중 5개를 휩쓸었다. 2022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중국에서 열린 다른 메이저 대회까지 저력을 보여준 한국 쇼트트랙은 상대적으로 '공정한 판정'이 기대되는 2026 밀라노-코트리나 동계올림픽 기대감을 높였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2025.02.09 20:30
스포츠일반

안중근 의사 보고 계시죠? 한국 쇼트트랙, 하얼빈서 매일 태극기 휘날렸다

안중근 의사의 얼이 서린 도시 중국 하얼빈에 연일 태극기가 휘날렸다. 한국 쇼트트랙이 '최강국'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한국 쇼트트랙은 9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린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AG)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했다. 여자 1000m 결승에서 '쇼트트랙 여제' 최민정(성남시청)이 AG 신기록(1분 29초637)을 경신, 대표팀 후배 김길리(성남시청)를 제치고 우승했다. 이어 열린 남자 1000m 결승에서는 장성우(화성시청)가 대표팀 선배 박지원(서울시청)을 앞서며 1위에 올랐다. 한국 쇼트트랙은 지난 8일 열린 5개 종목에서도 금메달 4개를 획득했다. 박지원, 김태성(화성시청), 최민정, 김길리가 나선 혼성 2000m 계주에서 중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바로 이어진 여자 1500m 결승에선 김길리가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이번 대회 한국 선수 중 처음으로 2관왕을 해냈다. 남자 1500m 결승에 나선 박지원도 '전 한국 대표'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을 2위로 밀어내며 처음으로 AG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민정은 여자 500m에서 중국의 이 종목 8연패를 저지하며 시상대 가장 위에 섰다. 한국은 하얼빈 AG 쇼트트랙에 걸린 9개의 금메달 중 6개를 획득했다. 총 메달은 개수는 13개(금6·은4·동3)다. 9일 계주에서는 남녀 모두 중국 선수와 충돌한 탓에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남자 대표팀은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페널티를 받는 등 등 홈(중국) 텃새도 겪었다. 하지만 대회 전 세운 목표(금메달 6개 이상)는 달성했다. 최민정은 3관왕, 박지원·장성우·김길리는 2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하얼빈은 항일 독립운동에 큰 의미를 지닌 도시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초대 조선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장소가 하얼빈역이다. 선수들도 애국정신 기운이 깃든 하얼빈이 AG 무대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독립운동가들의 불굴의 의지를 담아냈을까.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도 뜨거운 투지로 빛나는 스토리를 썼다.최민정은 그동안 한국 쇼트트랙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여자 500m에서 AG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최민정은 대표팀 간판선수로 떠오른 2017년 삿포로 대회 500m에선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8년 만에 나선 AG에서 결국 한풀이를 해냈다. 한국은 여자 500m에서 김길리가 2위, 이소연(스포츠토토)이 3위에 오르며 '올 포디움'까지 해냈다. 최민정은 "(하얼빈이) 역사적인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 시상대 위로 3개의 태극기가 올라가는 장면을 보면서 감격했다"고 덧붙였다.박지원이 보여준 '오뚝이 정신'도 박수를 받았다. 그는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린샤오쥔, 2022 베이징 올림픽 선발전에선 황대헌에게 밀려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강훈련으로 체력을 키운 박지원은 2022~23, 2023~24시즌 연속으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종합 우승을 달성하며 정상급 선수로 올라섰다. 그러나 2024~25시즌 국가대표 자동 선발권이 걸려 있었던 지난해 3월 2024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대표팀 후배 황대헌에게 연속으로 반칙을 당해 다시 대표팀 탈락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박지원은 한 달 뒤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 1위에 오르며 AG에 나설 수 있었다. 그는 "하얼빈에서 태극기를 휘날리겠다"는 약속을 결국 지켰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2025.02.09 19:00
스포츠일반

경마와 쇼트트랙, 0.001초 짜릿한 묘미

'0.001초'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마와 쇼트트랙은 짜릿한 묘미가 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선에서 편파판정이 나와 공분을 샀다. 쇼트트랙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심판장이 비디오 판독을 통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이다. 쇼트트랙은 심판장 1명과 2명의 보조 심판, 비디오 판독 심판 등 총 4명의 심판이 있다. 하지만 심판장 외 다른 심판들은 판정할 권한이 없다. 반면 경마는 최소 3인, 많게는 5명의 심판위원이 합의제 방식으로 결정한다. 어느 한 명의 심판위원에게 권한이 몰리지 않는다. 경주 중에는 심판위원의 육안 감시뿐 아니라 감시카메라 12대를 활용한 모니터 감시도 함께 이루어진다. 2019년부터는 선진영상판독시스템인 '호크아이'를 도입, 다양한 각도의 경주 화면을 기초로 심의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높이고 있다. 반칙, 실격 등 제재처분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쇼트트랙을 포함해 일반적인 스포츠에서 심판은 제재 당사자의 진술 청취 없이 즉결처분을 내린다. 하지만 경마 심판위원은 당사자의 이의신청 및 진술 청취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더불어 처분이 부당하거나 과중하다고 판단될 경우 당사자는 재심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원처분에 관여한 심판위원은 재심위원으로 선임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준준결승에서 황대헌은 막판 ‘극적 날밀기’로 결승선을 2위로 통과했다. 결승선 바로 앞에서 스케이트 날을 밀어 넣어 40초636을 기록해 아브잘 아즈할리예프(카자흐스탄·40초643)를 0.007초차로 따돌린 것이다. 쇼트트랙의 결승선 통과 기준은 ‘날’이다. 한쪽 스케이트 날이 결승선에 닿는 순간을 골인 기준으로 삼는다. 1998년 나가노 올림픽 쇼트트랙 남녀 1000m에서 김동성과 전이경이 처음 ‘날밀기’ 기술로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날밀기는 쇼트트랙 최강국 한국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지금은 모든 국가와 선수들이 이 기술을 구사하고 있다. 경마 역시 결승선 통과 기준에 특별한 규정이 있다. 말의 코가 결승선에 닿아야 골인으로 인정된다. 경마시행규정에 따르면 도착 순위는 ‘말의 코끝’이 결승선에 도착한 순서에 따라 판정한다. 기수가 팔을 내민다거나 말이 혀를 내밀어도 소용이 없다. 이는 전 세계 경마 시행국의 공통된 사항이다. 경마에서는 결승선을 먼저 도착한 말과 뒤이어 도착한 말의 차이를 판정하는 기본이 되는 최소 단위를 ‘코차’라고 한다. 코차는 약 0.1~21cm 정도의 차이로 짜릿한 승부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볼 수 있다. 2021년 서울경마공원 전체 865경주 중 1위부터 5위까지의 코차 승부는 151건으로 약 17%이다. 경마일 한 두 번은 박진감 넘치는 경주가 연출된 것이다. 한국마사회의 심판위원은 “경마와 쇼트트랙은 모두 스피드를 겨루는 스포츠라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짜릿함과 몰입감을 준다”며 “기록이 아닌 순위를 다투는 경기인 만큼 몸싸움과 자리싸움도 치열하고, 반칙, 실격 등도 빈번히 발생한다. 따라서 공정한 판정과 청렴한 마인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두용 기자 kim.duyong@joongang.co.kr 2022.02.25 06:21
스포츠일반

곽윤기 연출·최민정 주연...'K-쇼트트랙' 반전 드라마

쇼트트랙 대표팀 '리더' 곽윤기(33)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일어날 일들을 마치 예언가처럼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가 개막 직전 "바람만 스쳐도 실격당할 수 있다"며 우려한 개최국 중국의 편파 판정은 개막 이틀 만에 현실이 됐다. 한국도 7일 남자 1000m 준결승전에서 황대헌과 이준서가 모두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실격당했다. 곽윤기가 확신한 미래가 한 가지 더 있다. 올림픽 개막을 열흘 앞두고 일간스포츠와 만난 자리에서 쇼트트랙 대표팀이 만들 반전을 장담한 것이다. 곽윤기는 "우리 조상님들 모습까지 올라가 보자. 한국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힘이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하다. (어수선한) 대표팀을 향해 '안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뭔가 해낼 것 같다. 동생들에게도 내가 믿는 바를 말해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자 대표팀은 간판선수였던 심석희의 '동료 험담' 파문, 국가대표 선발전 3위 김지유의 부상 이탈 등의 악재가 겹친 상태였다. 전력도 분위기도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에이스 최민정의 컨디션도 4년 전 평창 올림픽 때보다 떨어져 보였다. 남자 대표팀을 향한 기대는 항상 여자 대표팀보다 낮았다. 베이징에서 성화가 타오르자, 곽윤기의 예언이 척척 맞기 시작했다. 한국 쇼트트랙은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를 따내며 이번 대회 출전국 중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했다. 이 종목 '최강국' 자존심을 지켰다. '타도 한국'을 외친 중국은 메달 4개(금2·은1·동1)를 땄지만, 편파 판정 논란이 불거진 후에는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K-쇼트트랙'의 부흥을 이끈 리더는 곽윤기다. 개막 전 그는 최민정과 김아랑을 붙잡고 "너희가 흔들리면 대표팀은 완전히 무너진다. 중심을 잡아달라"라고 당부했다. 김지유가 이탈로 인해 갑자기 개인전에 출전하게 된 김아랑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최민정에겐 "에이스인 네가 더 강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다그쳤다. 개막 후에는 판정 논란을 자초한 중국을 향해 쓴소리를 남기며 한국 선수단의 '스피커'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도 후배들을 살뜰히 챙겼다. 자신에게 몰리는 취재진에게 "후배들을 더 챙겨달라"고 요청했다. 곽윤기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은 스포츠팬과 대표팀을 잇는 소통 창구가 됐다. 16만 명이었던 구독자는 어느새 100만 명으로 폭증했다. 대회 초반, 메달이 나오지 않을 때 곽윤기는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전하려 노력했다. 9일 여자 대표팀이 계주 결승전에 진출했고, 이어 1000m 결승전에 나선 황대헌이 금메달을 따며 대회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다. 최민정은 황대헌이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 내 중계 화면을 통해 확인했다. 그는 "정말 잘했네요. 좋은 기운 이어갈게요"라며 배시시 웃었다. 곽윤기가 리더십으로 'K-쇼트트랙'의 각본을 짰다면, 최민정(24)은 반전 드라마를 완성한 주인공이었다. 심석희 험담의 대상이었던 그는 지난해 10월 출전한 월드컵 1차 대회에서 부상까지 당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베이징 올림픽 첫 경기였던 혼성계주에서 부진했다. 이어 개인전 500m에서는 넘어져서 탈락했다. 하지만 이겨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력이 좋아졌다. 주특기 바깥 코스 공략을 앞세워 개인전 1000m에서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저평가를 받던 여자 대표팀의 계주 은메달 획득도 이끌었다. 쇼트트랙 마지막 경기였던 1500m 결승에서는 마침내 금메달까지 획득하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최민정의 주행·전략·멘털은 완벽에 가까웠다. 16일 1500m 결승전이 끝나고 만난 최민정은 "(베이징) 대회 초반 경기가 잘 안 풀렸을 때, 최대한 침착하게 (눈앞에 닥친 상황을) 풀어가려고 노력했다. 조금씩 나아졌다. 메달 획득도 중요하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한계를 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최민정은 베이징 대회를 앞두고 "'쇼트트랙은 역시 한국"이라는 말을 듣게 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할 것"이라고 출사표를 전했다. 온갖 악재 속에서도 그 약속을 지켜냈다. 최민정은 "모든 선수가 정말 많이 노력했다. 같은 대표선수로서 감사하다. 그 덕분에 '쇼트트랙은 한국'이라는 말을 지킬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베이징=안희수 기자 2022.02.18 06:29
스포츠일반

[베이징 라이브]대회 10일 차, 한국 쇼트트랙 가장 밝게 웃은 날

값진 은메달이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쇼트트랙 여자 계주 대표팀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3연속 금메달 획득은 실패했지만, 전력이 저하되고 내홍으로 어수선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쾌거라는 평가다. 한국은 13일 중국 베이징 캐피탈인도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계주 결승전에서 4분3초63을 기록,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의 다섯 번째 메달이다. 한국은 초반 레이스에서 밀렸다. 10바퀴를 남겨둔 상황에서는 1위 네덜란드와의 격차도 벌어졌다. 하지만 에이스 최민정, '맏언니' 김아랑이 주자로 나설 때마다 거리를 좁혔다. 김아랑이 4바퀴를 남겨두고 3위로 올라섰고, 마지막 주자로 나선 최민정이 주특기 바깥 코스 공략으로 2위에 자리했다. 1위로 달리고 있던 네덜란드까지 압박했다. 비록 네덜란드 에이스 수잔 슐팅은 제치지 못했지만, 2위로 골인하며 쇼트트랙 '최강국' 자존심을 지켰다. 금메달을 외친 중국을 3위로 밀어냈다. 지난해 10월, 쇼트트랙 대표팀에는 예상치 못한 악재가 생겼다. 최민정과 함께 대표팀 '투톱'을 이루던 심석희가 동료들을 험담한 사실이 드러났다. 4년 전 평창 올림픽에서 고의 충돌을 모의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포착됐다. 심석희는 이 논란 속에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여기에 대회 직전 국가대표 선발전 3위 김지유마저 부상으로 이탈했다. 경기력향상위원회의 판단이 작용했는데, 선수가 개인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러한 결정에 부당함을 전하며 다시 논란이 일었다. 한국의 3연속 금메달 획득은 어려워 보였다. 개인전에 나선 김아랑과 이유빈의 컨디션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9일 열린 준결승전에서 최민정이 화려한 막판 스퍼트로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 황대헌이 개인전 1500m 금메달, 남자 계주 5000m 결승 진출 등 좋은 결과가 이어졌다. 최민정은 11일 여자 1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분위기를 바꾼 대표팀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여자 계주에서도 자존심을 지켜냈다. 경기 후 선수들을 서로 끌어안고 기쁨을 나눴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네 선수는 한껏 들떠있었다. 부담감을 이겨낸 최민정, 그런 최민정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한 김아랑, 개인전 아픔을 털어낸 이유빈, 올림픽 첫 출전 압박을 떨친 서휘민까지 말이다. 이유빈은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훈련했다. 이 4명이 함께 연습한 기간이 짧다면 짧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다"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서휘민도 "긴장이 많이 됐지만, 언니·오빠들이 많이 도와주시고 좋은 말도 해준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김아랑은 "결승전에 들어가기 전에 최민정 선수의 부담이 클 거 같아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준비했던 것을 다 보여주자'라고 얘기했다. 모든 것을 다 보여준 것 같아서 은메달도 값지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딴 메달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최민정은 자책했다. 그는 "계주가 역대 올림픽에서 항상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래서 그런 전통을 이어가길 바랐다. 안 좋은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 팀원들은 잘했는데, 내가 부족해서 미안했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시간 내서 함께 훈련해준 남자 선수들, 여기 옆에 팀원들 정말 고맙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팀 코리아가 만든 값진 은메달.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대회 10일 차, 가장 환희 웃었다. 베이징=안희수 기자 2022.02.13 23:07
스포츠일반

활짝 웃은 얼음 공주...쇼트트랙 두 번째 금메달 겨냥

"저도 이 좋은 기운을 이어 가보겠습니다." 9일 중국 베이징 캐피탈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최민정(24)은 쇼트트랙 대표팀 동료 황대헌이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확인했다. 앞서 열린 여자 3000m 계주를 마치고 인터뷰에 임하던 중 갑자기 함성이 터진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이내 환호하는 황대헌을 보며 따라 웃었다. 최민정은 "동료로서 너무 기쁘다. 정말 잘했다"고 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후 처음으로 보여준 미소. 안도감도 전해졌다. 한국 쇼트트랙은 대회 5일 차까지 단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석연치 않은 판정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경기력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황대헌이 첫 금메달을 안겨줬다. 쇼트트랙 최강국 자존심을 지켰고, 가라앉은 대표팀 분위기도 바꿀 수 있었다. 최민정도 이날 역주를 펼쳤다. 한국은 여자 3000m 계주 준결승에서 레이스 막판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에 역전을 당하며 3위로 밀렸다. 하지만 최민정이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 바깥쪽 코스로 치고 나가 ROC 선수를 제쳤고,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한국은 이 종목 올림픽 3연패를 노리고 있다. 최민정 덕분에 탈락 위기를 넘겼다. 경기 후 최민정은 "2등 안에 들어야 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다. 마지막 주자였기 때문에 책임감이 컸다. 다른 선수와의 몸싸움에서 잠시 밀렸지만, 다행히 버텨냈다. 이후 '무조건 따라잡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앞만 보고 달렸다"고 돌아봤다.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레이스였다. 최민정은 지난 7일 열린 여자 500m 준준결승전에서 탈락했다. 레이스 도중 넘어지고 말았다. 500m는 최민정의 주 종목이 아니지만,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할 만큼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계주에서 진짜 실력을 보여줬다. 500m 탈락 후에도 그의 멘털은 흔들리지 않았다. 최민정 "500m도 준비를 많이 했다. 하지만 예선 탈락은 지난 일이고, 되돌릴 수 없었다. 그동안 올림픽을 위해 준비했던 모든 노력이 단 한 번 넘어졌다고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최민정은 11일 주 종목(세계랭킹 3위)인 여자 1000m에 출전,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두 번째 금메달에 도전한다. '라이벌' 수잔 슐팅과의 정면 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대표팀과 자신 모두 좋은 기운을 얻었다. 최민정은 "종목이 많은 쇼트트랙에서 흐름은 매우 중요하다. (황)대헌이가 금메달을 따내며 좋은 흐름을 탔다. 나도 1000m, 1500m 그리고 계주 결승을 남겨두고 있다. 앞서 출전했던 종목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민정은 메달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응원을 보내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금메달로 보답할 생각이다. 이제 최민정의 시간이 왔다. 베이징=안희수 기자 2022.02.11 08:09
야구

'전력 노출 경계' 중국 쇼트트랙...담담한 한국 대표팀

한국은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31개를 수확했다. 그중 24개가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4년 전 평창 올림픽에서는 3개를 따냈다. 명실상부 이 종목 최강국이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 전망은 어둡다. 전 여자 대표팀 심석희가 동료를 험담한 사실을 드러나며 내홍에 시달렸다. 자격정지 징계를 받은 심석희를 포함, 메달 기대주로 꼽혔던 선수 몇 명도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해 전력이 약해졌다. 그사이 중국이 한국의 아성을 넘보고 있다. 중국도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를 따낸 쇼트트랙 강국이다. 날개까지 달았다. 평창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김선태 감독과 한국 대표팀 간판선수였다가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을 기술코치로 영입했다. 한국 쇼트트랙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선태 감독이 중국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달 31일 한국의 공개 훈련을 찾아, 전력을 직접 분석하기도 했다. 빅토르 안은 중국 선수들과 꾸준히 대화하며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중국 대표 선수들은 이미 캐피탈 실내경기장의 빙질을 최대한 유리하게 이용할 것이다. 판정에서 개최지 이점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중국 대표팀은 전력과 정보 누출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다. 2일 오전까지 예정된 다섯 차례 공개 훈련 중 네 차례나 빙상장(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 나타나지 않았다. 1일 오후에 베일을 벗었는데, 훈련 강도는 가벼운 편이었다. 경쟁국에 선수 컨디션과 전술을 가늠할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 김선태 감독과 빅토르 안 코치는 인터뷰도 피하고 있다. 공동취재구역에 아예 나타나지 않고 있다. 중국 취재진조차 "우리도 궁금하다"고 말할 정도. 전 종목 석권을 향한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한국 선수들에게 김선태 감독, 빅토르 안은 스승이자 선배였다.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다. 하지만 중국 대표팀을 의식하진 않는다. 여자 대표팀 베테랑 김아랑은 "한국 선생님(지도자)들이 중국 대표팀으로 가신 지 2년도 넘었다. 한국 대표팀 기존 훈련 방식이나 전술이 (중국팀에) 당연히 알려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더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유빈은 "월드컵 시리즈에서 이미 경험한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남자 대표팀 에이스 황대헌도 "중국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제대로 지켜본 적은 없다. 신경 쓰지 않고 내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대표팀은 담담하게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베이징(중국)=안희수 기자 2022.02.03 06:59
스포츠일반

'금메달 픽' 쇼트트랙 이유빈 "이제 혼자 관리할 줄 안다"

4년 전보다 성장했다. 마음가짐도 남다르다.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이유빈(20)이 기대감을 안겼다. AP통신은 1일 전 종목 메달 후보를 전망하며 쇼트트랙 여자 1500m 금메달리스트로 이유빈을 꼽았다. 그는 2021~22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1500m 세계랭킹 1위를 차지했다. 2일 베이징 캐피탈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만난 이유빈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그런 전망에 어울리는 경기력을 준비하겠다"라며 웃었다. 여자 쇼트트랙을 향한 높은 기대치에 대해서도 "좋은 쪽으로만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라고 했다. 이유빈은 4년 전 평창 올림픽에서 대표팀 막내로 참가, 계주 금메달 획득에 힘을 보탰다. 그사이 기량이 향상됐고, 세계 톱랭커로도 올라섰다. 이유빈은 "4년 전에는 계주만 출전했기 때문에 경기 수가 적었다. 몸을 어떻게 풀고,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몰랐다. 선생님(코치)들 말씀만 들었다. 하지만 이제 스스로 몸을 만들 줄 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은 쇼트트랙 최강국이다. 여자 계주는 항상 금메달을 기대받고 있다. 중국 등 다른 나라의 견제도 심하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직전 월드컵에서 압도적인 전략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어수선한 일들로 인해 팀 분위기와 전력 모두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유빈은 현실을 직시했다. 그리고 마음가짐을 고쳤다. 그는 "다른 나라 선수들이 한층 성장했다. 월드컵에서도 월등한 성적을 낸 게 아니다. 그래서 '(정상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다시 빼앗았어 한다'는 마음으로 이번 대회를 치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이유빈은 한국 선수단 첫 메달 획득이 기대되는 5일 혼성 계주에 출전한다. 이번 대회부터 신설된 종목이다. 이유빈은 "특별한 포인트를 짚기 어렵다. 남자와 여자로 주자가 바뀔 때 스피드 조절이 중요할 것 같다"라고 했다. 이어 "그래도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계주를 준비했다. 준비한 만큼 경기력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할 것 같다"라며 자신감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베이징(중국)=안희수 기자 an.heesoo@joongang.co.kr 2022.02.0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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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0 특별기획]한국스포츠 50년, 슈퍼스타 50인, 환희의 50신

일간스포츠는 한국스포츠 반세기를 함께 했다.1969년 창간해부터 2019년까지 50년 동안 한국 스포츠에는 수많은 스타가 등장했다. 그중 시대를 풍미한 독보적인 슈퍼스타들이 존재했다. 일간스포츠와 스타들을 돌아보면 한국 스포츠의 역사가 보인다. 스타들이 만들어낸 환희의 장면들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일간스포츠는 중앙일보-일간스포츠의 스포츠 담당 기자들을 통해 50년의 기간을 10년 단위로 나눠 각 세대별 최고스타 10인을 선정했다. 이어 한국 스포츠전문가들의 자문 등을 두루 구해 총 50인을 확정했다. 지도자와 행정가는 제외했다. 오직 당시 현역으로 뛴 선수로만 구성했으며 또 각 시대별 같은 종목 선수들은 최대한 배제했다.50년을 수놓은 영광의 슈퍼스타 50인을 소개한다. <1969~1979 : 배고팠던 시절 국민들을 위로한 영웅>1960년, 70년대 한국은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국민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했던 쉼터가 스포츠였다. -김일(프로레슬링)김일은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박치기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였다.박치기를 특기로 극동 헤비급 챔피언·올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활약을 펼쳤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프로레슬링 전설로 위용을 떨쳤다. 국민들은 김일의 경기가 열리는 날에 흑백 TV 앞에 모여 열렬히 응원했다. 김일의 움직임으로 인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김일은 배고팠던 시절 조국의 영웅이었다. -홍수환(복싱)4전5기의 신화. 두 체급에 걸쳐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한 복싱 선수다.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WBA(세계복싱협회)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세계 정상에 섰다. 당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한 마디는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또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린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2회 4번 다운당한 뒤 3회에 KO승을 거뒀다. 4전5기 신화. 국민들은 홍수환의 투혼을 보며 힘겨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양정모(레슬링)1976년 8월 1일.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 나왔다. 주인공은 양정모였다.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2kg급에서 양정모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광복 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등장하는 순간. 한국은 첫 금메달 소식에 열광했다. 당시 한국은 일요일.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휴일이어서 전국에 호외가 깔렸다. 양정모는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과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까지 2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최고의 레슬링 영웅으로 군림했다. -조오련(수영)'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한국 수영의 아버지다.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자유영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2관왕이 탄생했다. 무명의 18세 고교생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어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도 400m, 1500m 2관왕에 올랐다. 조오련은 한국신기록 33개, 대회신기록 17개를 갈아치웠다. 한국 수영은 그렇게 조오련으로부터 출발했다. -김진호(양궁)양궁 최강국 한국. 그 시작은 고교생 신궁 김진호였다. 1970년대 세계양궁은 김진호의 시대였다.그는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에서 5관왕을 차지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18세 고교생이었던 김진호를 위해 카퍼레이드 행사까지 열며 국민들은 뜨겁게 환영했다. 이어 김진호는 1983년 LA세계선수권에서 또 다시 5관왕에 올랐다. 여자 신궁 계보의 시조. 한국 양국의 위대함을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전설이다. -이에리사(탁구)한국 탁구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에리사다.그는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정현숙과 박미라 그리고 이에리사가 팀을 이뤘고, 19세 막내 이에리사가 에이스였다.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스매싱도 이에리사의 손에서 나왔다. 이 쾌거는 '사라예보의 기적'이라 불렸고, 한국에는 탁구 열풍이 불었다. 전국의 탁구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백옥자(육상)1970년대 '아시아의 마녀'라 불리며 아시아 육상을 지배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백옥자다.그는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포환던지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한국 여자 선수 최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16m28cm,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 육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육상 불모지 한국에서 등장한 영웅이었다. -김응용(야구)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는 김응용이었다.1966년부터 1972년까지 한일은행 소속으로 한국 야구를 주도한 주인공이다. 김응용이 있기에 한일은행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는 홈런황 3회를 차지하는 등 실업야구 최고의 거포였다. 통산 타율 3할7리를 기록했다. 또 김응용은 국가대표 4번 타자였다. 1971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이끌었다. 아시아선수권 2번째 우승. 김응용 이름 앞에 '영원한 국가대표 4번 타자'라는 이름표가 붙은 이유다. -신동파(농구)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농구를 이끌었던 슈퍼스타 신동파다.그는 1967년 중소기업은행에 입단해 1974년 은퇴할 때까지 3만 득점 이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라이벌이 없었다. 그의 위상은 해외까지 퍼졌다. 1969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결승 필리핀과 경기에서 50점을 넣으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신동파의 활약에 반한 필리핀에 신동파 신도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1970년 유고슬라비아 세계선수권에서 평균 30득점을 넘기며 득점왕에 올랐고,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혜정(배구)'작은 새'라 불린 한국 여자배구의 전설 조혜정이다.그는 165cm의 단신이었지만 엄청난 점프와 파워로 한국 배구의 간판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조혜정이 이끄는 배구대표팀은 3위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3-1로 꺾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 탄생하는 명장면. 올림픽과 함께 조혜정은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연속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여자배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79~1989 : 구기종목에서 등장한 불세출의 스타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이 시대에는 유독 구기종목에서 불세출의 스타들이 등장했다. 축구와 야구 그리고 농구와 배구까지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이 이름을 날렸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감동이 찾아왔다. -차범근(축구)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축구에는 불멸의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바로 차범근이다.차범근은 한국 선수 최초로 유럽 무대를 밟았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로 꼽혔던 독일 분데스리가. 그는 다름슈타트를 시작으로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등에서 활약했다. 차붐은 UEFA(유럽축구연맹) 컵 우승을 2회를 이끌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또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신기록(98골)도 세웠다. 한국 대표팀에서도 136경기 출장, 58골로 최다출전,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영웅이자,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다. -선동렬(야구)야구에는 국보급 투수가 탄생했다. 한국야구는 선동렬 시대에 돌입했다.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선동렬. 이후 프로야구는 해태 왕조가 지배했다. 그 중심에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이 있었다. 3년 연속 투수 3관왕(다승·승률·평균자책점) 정규리그 MVP 3회·골든글러브 6회·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 등을 기록하는 등 해태를 6번 우승으로 이끌었다. 통산 146승, 132세이브, 방어율 1.20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에 이견이 없다. -최동원(야구)선동렬이 등장하기 전 프로야구의 유일한 전설, 최동원이다.그는 1984년 다승왕·탈삼진왕·골든글러브에 이어 MVP까지 수상하며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그해 7전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만나 홀로 4승을 따내며 롯데 자이언츠를 사상 첫 정상에 올려놨다. 강속구와 폭포수 커브를 장착한 무쇠팔 최동원이었다. 이후 1985년 20승·1986년 19승·1987년 14승까지 해마다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최고 투수로 명성을 이어갔다. 선동렬과 라이벌 구도는 프로야구 최대 빅이슈였다. -이충희(농구)신동파의 뒤를 이은 최고의 슈터, 이충희의 등장은 한국 농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농구대잔치 출범 후 3시즌 동안 두 차례 팀 우승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현대전자의 상징. 한 경기 69점을 기록하며 팬들을 열광시켰고, 최초로 4000득점 돌파 그리고 5시즌 연속 득점왕 등 슛도사를 막을 자 없었다. 그의 영향력은 대표팀까지 번졌고,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1986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홀로 45점을 성공시키며 세계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강만수(배구)타고난 힘과 기술 그리고 센스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최고의 공격수. 강만수를 정의하는 말이다.19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배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다. 1972년 17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한국은 강만수로 뜨거웠다. 한국 구기종목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였기 때문이다. 이후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우승과 1979년 멕시코유니버시아드 우승을 이끌며 '아시아의 거포'로 불렸다. 컴퓨터 세터 김호철과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현정화(탁구)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최고 스타는 현정화였다.한국 여자탁구의 상징.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19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 복식 금메달을 차지했다.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기대는 현실이 됐다. 서울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로 최초로 2010년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현정화라는 이름으로 한국 여자탁구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그가 은퇴한 뒤 한국 여자탁구는 단 한 번도 세계 정상에 서지 못했다. -김수녕(양궁)한국 양궁 역사상 최고의 신궁, 단연 김수녕이다.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실력, 카리스마 그리고 냉정함까지, 김수녕 그 자체가 한국 양궁의 얼굴이었다. 1987년 16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관왕 탄생.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품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의 주인공도 김수녕이다. 세계신기록을 무려 35회나 달성했고, 한국 역대 올림픽 메달 횟수(6개) 공동 1위다. -손미나(핸드볼)우생순의 시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1984년 LA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대표팀은 은메달을 차지했고, 4년 뒤 조국에서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소련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21-19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은 그렇게 나왔다. 금메달 멤버는 총 15명. 그중 골키퍼로 한국 골문을 든든히 지켰고,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대표로 선서를 한 손미나가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다. -이만기(씨름)예능에 나오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가 아니다. 이만기는 한국 씨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이만기는 1980년대 씨름 황금기를 이끈 스타였다. 1983년 첫 천하장사를 차지한 뒤 총 10회 정상에 올랐다. 역대 1위. 또 백두장사 19회, 한라장사 7회를 차지했다. 기술씨름을 도입한 최초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압도적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만기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통령이 경기 시간을 늦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이만기가 수놓은 씨름은 한국 최고 인기스포츠였다. -장재근(육상)한국 육상의 전설이 등장했다. 한국 육상 역대 최고의 스프린터, 장재근의 등장이다.그는 20세의 나이로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 출전해 2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최초 육상 트랙 금메달이었다. 육상 천재 장재근에 한국은 열광했다. 그는 이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200m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한다. 1985년 자카르타아시아선수권에서 장재근은 20초41이라는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이 기록은 이후 33년 동안 한국신기록으로 남아있었다. <1989~1999 : IMF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 희망을 안긴 영웅>1997년 한국에 불어닥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실의와 고통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를 안긴 스포츠 스타들이 있었다. 이들의 존재가 곧 희망이자 위로였다. -박찬호(야구)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그는 IMF 위기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며 한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긴 영웅이었다.1994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1997년 14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았고, 1998년 15승을 수확하며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2000년 18승을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 아시아 최다승이다. 또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동메달 등을 이끌며 야구대표팀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세리(골프)IMF 위기의 시절 국민들을 위로했던 또 한 명의 슈퍼스타, 박세리다.미국 LPGA 개척자. 1998년 LPGA 무대에 뛰어들었고, 데뷔 4개월 만에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US오픈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특히 US오픈 연장 18번 홀에서 양말을 벗고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한 장면은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박세리의 모습에 국민들은 힘을 얻었다. LPGA 25승으로 한국인 최다 우승자 역시 박세리다. -황영조(마라톤)'몬주익의 영웅'의 등장으로 한국 육상은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쳤다.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황영조는 몬주익 언덕에서 모리시타 고이치를 따돌린 뒤 홀로 몬주익 스타디움에 들어섰다. 그리고 두 팔을 힘차게 들고 골인했다. 한국 정부 수립 이후 육상 첫 올림픽 금메달. 1936년 베를린올림픽 손기정의 금메달 이후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이후 황영조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며 다시 한 번 포효했고, 1994년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는 당시 한국 최고 기록인 2분8초09를 기록했다. -심권호(레슬링)심권호라는 이름은 세계 최고라는 의미다.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48kg급 금메달을 목에 건 뒤 1995년 프라하세계선수권,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까지 정상을 차지했다. 48kg급이 폐지되자 54kg급으로 체중을 늘려 다시 한 번 똑같은 코스를 밟았다. 1998년 예블레세계선수권·1998년 방콕아시안게임·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금메달을 일궈냈다. 하계올림픽 최초 올림픽 2연패, 한국 올림픽 사상 첫 두 체급 석권 그리고 세계 레승링 최초 두 체급 그랜드슬램 달성.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전기영(유도)한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는 유도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전기영이다.유도 천재,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불린 그는 20세의 나이로 참가한 1993년 해밀턴세계선수권 78kg급에서 우승했다. 한국 역대 최연소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5년 지바세계선수권에서는 86kg급에 도전해 금메달을 차지, 두 체급을 석권했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는 1회전을 제외하고 모두 한판승으로 이기며 정상에 섰다. 1997년 파리세계선수권에서도 1위에 오르며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다. -박주봉(배드민턴)배드민턴의 교과서 박주봉.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 배드민턴의 전설이었다.1980년 17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됐고, 1982년 덴마크오픈에서 이근구와 한 조로 역대 최연소로 국제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1985년 캘거리세계선수권 우승·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1989년 자카르타세계선수권 금메달·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금메달·1991년 코펜하겐세계선수권 1위 등 승승장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1996년 '배드민턴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허버트 스칠 상을 수상했다. -전이경(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라 불리는 유일한 선수, 전이경이다. 그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1988년 12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된 그는 1994년 릴레함메르올림픽 1000m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석권, 2관왕에 올랐다. 이어 1995년 요빅세계선수권을 시작으로 1996년 헤이그, 1997년 나가노까지 개인종합 3연패를 일궈냈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도 1000m와 3000m 계주를 석권하며 한국 여자 최초로 올림픽 2회 연속 2관왕에 오르는 영광을 품었다. -허재(농구)농구대통령이 당선됐다. 농구 9단이라 불리며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선수, 허재다.중앙대 1학년 시절 농구대잔치에 나서 평균 24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어 기아자동차에 입단하자 기아 왕조가 구축됐다. 기아의 에이스로 농구대잔치 5연패 등 7회 우승을 일궈냈다. 3번 MVP를 수상했고, 베스트 5에 6회 포함됐다. 압도적인 실력과 카리스마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스타. 국가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1990년 아르헨티나세계선수권 이집트전에서 62점을 넣으며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홍명보(축구)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다.그는 1992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해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신인 최초로 MVP를 수상하는 영광을 품었다. 이후 일본 J리그에서 진출하며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한국 대표팀 전설이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시작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아시아 최초로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홍명보는 A매치 136경기 출전으로 한국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씨름)이만기를 1인자에서 내려앉히고 새로운 1인자로 등극한 괴물, 강호동이다.이만기의 은퇴는 곧 강호동이라는 새로운 황제의 등극과 연결된다. 1989년 일양약품에 입단한 20세 강호동은 첫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당시 4강에서 이만기와 첫 공식전에서 맞붙어 2-0으로 승리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1990년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천하장사에 올라섰다. 이후 백두장사 7회, 천하장사 5회를 차지했다. 최단기간 천하장하 5회라는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이 은퇴하자 씨름의 황금기도 끝났다. <1999~2009 : 불모지에서 태어난 올림픽 스타 그리고 붉은물결 2002년>불모지 한국. 그동안 한국에서 약했던 종목에서 슈퍼스타들이 등장해 행복했던 시기다. 또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영광이었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탄생했다. -박태환(수영)박태환의 등장. 한국스포츠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했다.수영 불모지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15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참가했던 그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2007년 멜버른세계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따더니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400m 정상에 섰다. 200m에서도 은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2011년 상하이세계선수권 금메달 등 세계 정상급 기량을 이어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400m, 2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장미란(역도)한국 역도 역사의 새로운 신화, 장미란이 썼다.2002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5년 카타르세계선수권부터 2006년 산토도밍고·2007년 치앙마이·2009년 고양까지 4연패를 일궈내며 세계 역도계에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압권이었다. 여자 +75kg급 경기에서 인상 140 kg·용상 186 kg·합계 326kg을 기록,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신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했고, 2위와 격차가 무려 49kg이나 났다. 압도적인 우승, 압도적인 선수였다. -진종오(사격)한국은 세계최고의 권총 사수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한국에는 진종오가 있다.2008년 베이징올림픽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하더니,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일궈냈다. 2010년 뮌헨·2014년 그라나다·2018년 창원 등 세계선수권에서도 연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로 김수녕과 함께 역대 한국인 올림픽 최다 메달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승민(탁구)한국 탁구의 마지막 자존심, 유승민이다.2000년 18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유승민은 2004년 이집트오픈에서 우승하며 기대를 받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금메달이 나왔다. 이 금메달은 21세기 올림픽에서 유일한 비중국인 탁구 금메달이었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201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등을 목에 걸며 한국 탁구의 간판 역할을 했다. 유승민 이후 한국은 단 한 번도 올림픽 정상에 서지 못했다. -이승엽(야구)국민타자. 이승엽이 아니면 붙을 수 없는 이름이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홈런왕. 1999년 54홈런을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했다. 2003년에는 한국 역대 최다인 56홈런을 때렸다. KBO 통산 465개의 홈런으로 역대 1위에 오른 이도 이승엽이다. 타점(1495점) 득점(1351점) 등도 1위다. 홈런왕 5회·MVP 5회·타점왕 4회·골든글러브 10회 등 기록이 이승엽의 위대함을 말해주고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주역이기도 하다. -안현수(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가 전이경이라면 황제는 안현수다.많은 선수들이 세계 정상에 선 경험이 있지만 안현수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 쇼트트랙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선수. 16세에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3년 바르샤바부터 2004년 예테보리·2005년 베이징·2006년 미니애폴리스·2007년 밀라노까지 세계 최초로 세계선수권 5연패를 달성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1000m·1500m·5000m 계주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500m 동메달도 추가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단일 대회 최다 메달 신기록이다. -김세진(배구)한국 배구에 등장한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스타, 김세진이다.1995년 실업배구 삼성화재의 창단멤버로 합류해 삼성화재 왕조를 이끈 스타였다. 김세진이 활약하던 시기 배구는 폭발적 인기를 받았다. 김세진을 앞세운 삼성화재는 리그 9연패를 일궈냈다. 배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2001년 창원아시아배구선수권과 2003년 톈진아시아배구선수권 우승을 이끌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특히 1994년 월드리그에서 베스트 6에 오르며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얻었다. -서장훈(농구)한국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빅맨, 단연 서장훈이다.1994년 연세대를 대학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 때부터 그는 국보급 센터였다. 공격과 수비 외곽능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 1998년 청주SK 입단 후 서울 삼성·전주 KCC·인천 전자랜드 등에서 활약했다. 1999년 리바운드 상 수상. 프로농구 사상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리바운드 왕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프로통산 1만3231득점·5235리바운드 기록, 역대 1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야오밍이 이끄는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경주(골프)한국 남자 골프의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 최경주다.1999년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PGA투어 자격을 획득했다. 2001년부터 꾸준한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2002년 5월 뉴올리언즈 콤팩 클래식에서 한국 첫 PGA 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탬파베이 클래식에서 2승을 챙겼다. 이후 AT&T 내셔널 등 PGA에서 6회 우승을 더 차지하며 통산 8회 우승을 기록했다.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고의 기록이다. 잡초 골퍼라 불리며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한국 골프의 자존심을 높인 영웅이다. -박지성(축구)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환희,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그 중심에는 두개의 심장을 가진 박지성이 있었다.한국은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을 꺾고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성적인 4강에 진출했다. 거리는 붉은물결르 뒤덮혔고, 선수들은 국민영웅으로 등극했다. 그중 핵심은 박지성. 그는 2005년 잉글랜드 최고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 최초의 잉글랜드 진출. 이때부터 맨유는 국민클럽이 됐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리그 우승 4회 등 총 13개의 우승트로피를 수집했다. <2009~2019 : 동계스포츠의 비상 그리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과거 한국의 동계스포츠는 쇼트트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달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른 종목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프로스포츠에서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연아(피겨)한국 동계스포츠의 역사는 김연아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눌 수 있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 김연아가 나온 건 기적이다.김연아는 한국을 넘어 세계 피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하이라이트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김연아는 쇼트 78.50점, 프리 150.06점 총합 228.56점으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올림픽·세계선수권·4대륙 선수권·그랑프리 파이널 등을 모두 제패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로 역사에 기록됐다. 11번 세계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상화(스피드스케이팅)'빙속여제' 이상화를 빼놓고 한국 동계스포츠를 논할 수 없다.2010년 밴쿠버올림픽 여자 500m에서 76초09로 우승, 한국 여자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74초70, 올림픽 신기록으로 2연패에 성공한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기록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3개 대회 연속 메달을 딴 선수로 남았다. 2013년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나온 36초36의 세계신기록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 -윤성빈(스켈레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썰매 종목 금메달을 딴 주인공, 윤성빈이다.한국 스켈레톤의 간판인 그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1∼4차 레이스에서 무려 3차례나 트랙 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1∼4차 합계 3분20초55로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과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켈레톤 불모지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윤성빈. 그의 헬멧에 그려진 아이언맨처럼 그는 한국 스포츠의 영웅이었다. -양학선(체조)한국 체조의 새로운 역사, 도마의 신이 창조했다. 양학선이다.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2011년 도쿄세계선수권 우승으로 큰 기대를 받았던 양학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신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구에서 단 한 명만 할 수 있는 최고난위도 기술 '양학선'을 앞세워 도마 금메달을 차지했다. 16.533점. 압도적 우승이었다. 한국 체조 역사상 첫 번째 올림픽 금메달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2013년 앤트워프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황경선(태권도)태권도 종주국 한국. 수많은 선수가 세계 정상에 섰다. 그중 가장 많은 최초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이는 '태권여제' 황경선이다.18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67kg에 나서 동메달을 차지한 그는 2005년 마드리드세계선수권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그리고 2007년 베이징세계선수권까지 재패한다. 남은 건 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멈추지 않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태권도 최초의 올림픽 2연패. 최초의 올림픽 3회 연속 진출을 일궈냈다. -박인비(골프)미국 LPGA에는 한국 여성 열풍이 불었다. 그 열풍 최선봉에 자리를 잡은 스타, 박인비다.골프 여제의 2008년 US오픈 우승. 박세리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깨면서 정상을 차지했다. US오픈 총 2회 우승 등 메이저대회에서 7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최고 기록이다. LPGA 통산 19승으로 박세리에 이은 2위다. 56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유지했고, 4개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아시아 최초로 달성하기도 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 역시 박인비 품에 안겼다. -정현(테니스)2018년 1월, 한국에 테니스 열풍이 불었다. 그 바람은 정현이 일으켰다.정현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2018년 호주오픈 1~3라운드에서 미샤 즈베레프·다닐 메드베데프·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연이어 꺾으며 기대를 받았다. 16강 상대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노박 조코비치.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현이 조코비치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 한국에 정현 신드롬이 일어났다. 8강에서 테니스 샌드그렌마저 넘으며 4강에 올라섰다. 4강에서 로저 페더러를 만나 부상으로 기권했다. -김연경(배구)한국 여자배구에 이렇게 독보적인 선수는 없었다. 김연경이다.흥국생명에 입단한 2005년. 득점상·공격상·서브상·신인왕·정규리그 MVP·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싹쓸이한다. 얼마나 압도적인 선수인 지 알 수 있는 기록. 이후 3년 연속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2009년 일본 JT마베라스 유니폼을 입은 뒤 2011년 터키 페네르바체로 이적했고,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난다. 가는 팀마다 우승으로 이끌면서 가치는 올라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 4강,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배구대표팀에서도 기둥이었다. -류현진(야구)21세기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그의 이름은 류현진이다.20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자마자 다승·탈삼진·평균자책점 1위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석권한 프로야구 최초의 선수가 됐다.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로 이적한 첫해 14승 올리며 기대를 충족시켰다. 이후 꾸준함을 보이다 2019년 평균자책점 전체 1위를 기록, 올스타전 선발로 나서는 등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야구대표팀 역사와도 함께 했다. -손흥민(축구)지금 한국 축구는 '손흥민의 시대'다.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레버쿠젠을 지나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세계 톱클래스 공격수로 거듭났다. 특히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우승후보 맨체스터 시티를 침몰시켰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손흥민을 앞세운 토트넘은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축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 주인공.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품었다. 최용재·김지한 기자 2019.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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