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엄마, 오늘 서브는 별로였어" 마흔둘 정대영이 악착같이 뛰는 이유
한국도로공사 센터 정대영은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두 살이다. V리그 여자부 최고령 선수다. 포지션 특성상 하루에도 수백 번씩 뛰어오르는 그는 "배구를 정말 사랑한다. 이 나이에 뛸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코트에 오랫동안 서고 싶다"고 한다. 그는 V리그의 산증인이다. 프로 출범 전인 1999년 현대건설에 입단했다. 2005년 프로 출범 후 V리그 여자부 첫 경기인 2005년 2월 20일 현대건설-한국도로공사전에서 팀 내 최다인 23점을 올렸다. 그해 득점, 블로킹, 속공 1위 타이틀을 싹쓸이하며 정규리그 초대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그는 "MVP 발표 때 내 이름이 불려 얼떨떨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나이에 '과연 내가 받아도 되는가' 싶었다"고 회상했다. 수비상까지 휩쓴 정대영은 지금까지 공격과 수비 부문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주인공으로 남아있다. 그 외 챔피언결정전 MVP, 올스타전 MVP, 베스트7, 페어플레이상 등 다양한 수상 경력을 남겼다. 17시즌째 뛰고 있는 V리그 베테랑의 기량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블로킹 1위로 올스타 브레이크를 맞았고, 2일 현재는 0.731개로 부문 4위에 올라 엎치락뒤치락 경쟁 중이다. 1위 양효진(0.800개·현대건설) 등 선두 그룹과 격차가 크지 않아 충분히 역전이 가능하다. 한두 경기에 따라 블로킹 1위 주인공이 뒤바뀌고 있다. 순위를 떠나 원년(0.762개) 이후 정대영의 커리어 사상 가장 높은 수치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공격 욕심을 줄였다. 김종민 감독님도 팀을 위해 블로킹에 더 집중해줬으면 하더라"며 "욕심을 부리니 이번 시즌 5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이 있었다. 마음을 비웠다. 또 1위가 되니 주변에서 많은 응원과 메시지를 보내주신다"며 의욕을 드러냈다. 정대영은 후배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는 "후배들이 '언니, 안 힘들어요?'라고 말한다. 왜 안 힘들겠나. 그렇지만 '내가 열심히 잘하고 있구나' 싶다"며 웃었다. 이어 "'애들이 나한테 언니라고 부르는 게 맞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장난으로 이모라고 부르라 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대영이 더 열심히 뛰는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가는 딸(김보민)이 있어서다. 그는 V리그 최초로 육아휴직(2009~10시즌)을 써서 보민 양을 출산했다. 어릴 적부터 아빠 손을 잡고 엄마의 경기를 보러온 보민 양은 2020년 클럽 배구를 하다가 최근 제천 남천초등학교로 옮겨 정식으로 배구에 입문했다. 정대영은 세터를 시키고 싶었지만, 역시 배구선수로 활약한 남편은 레프트를 권했다고 한다. 정대영은 "보민이의 꿈이 배구 선수라고 했다. 나도 남편도 전적으로 찬성했다"며 "남편이 보민이가 키(1m73㎝)도 크고 힘도 좋다고 평가했다"며 "이제 보는 눈이 생겨 배구를 분석하며 본다. 내 경기 모습을 물어보면 '오늘 블로킹은 좋았는데, 서브는 별로였어'라고 말해준다"며 웃었다. 정대영은 "보민이가 김연경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 친구들에게는 '우리 엄마가 배구 선수 정대영'이라고 자랑하고 다닌다. 그런 보민이에게 '너희 엄마 못하잖아' '너희 엄마 팀 못하잖아'라는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한다"고 말했다. 정대영과 신인 이예담(19·센터)은 스물두 살 차이다. 정대영은 "최근 (이)예담이와 처음 교체돼 나왔다. 손바닥을 마주치는데 기분이 묘하더라. 예전부터 내 자리를 책임질 선수가 나온다면 떠나려 했다. 후배들이 빨리 성장해서 내가 걱정 없이 유니폼을 벗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정대영과 마찬가지로 출산 후 코트에 복귀해 한국도로공사에서 함께 뛴 장소영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코트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랫동안 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는 "내겐 한해 한해가 중요하다. 지금처럼 하면 더 뛸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김천=이형석 기자
2022.02.04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