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히어로즈 구단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은 이장석 전 대표. 하지만 지금 그는 구속 수감 중이다. 구단을 통해 뒷돈을 챙기는 등 온갖 편법으로 범법자 신세가 됐다. IS포토 2007년 겨울.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 및 M&A 전문기업이 KBO로부터 뜻밖의 제안서를 건네받았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프로야구단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해 운영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만 41세였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이장석은 "최초로 네이밍 스폰서를 도입해 구단 운영 자금을 마련하고, 기존 7개 구단과는 다른 방식으로 꼭 성공해 보이겠다"며 제안을 받아 들였다.
2008년 1월 현대 유니콘스는 결국 공식 해체됐다. 동시에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는 '히어로즈'라는 이름의 야구단을 설립했다.
출발과 동시에 부딪친 현실은 예상보다 더 혹독했다. 매년 수백억 원에 달하는 대기업들의 후원으로 유지돼온 프로야구에서 히어로즈의 등장을 반기는 이는 별로 없었다. "8개 구단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 곧 매각될 것"이라는 추측과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2008년 1월 30일 오전 서울 도곡동 KBO에서 열린 제8구단 창단 조인식. 신상우 당시 총재와 이장석(오른쪽) 전 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IS포토 2008년 3월 24일 오전 서울 63시티 국제회의장에서 우리 히어로즈 창단식. 박노준 당시 단장이 이장석 전 대표에게 구단기를 건네받고 있다. IS포토 선례가 없으니 경제적 자립도 쉽지 않았다. 첫 네이밍 스폰서였던 우리 담배는 1년도 되지 않아 계약을 해지했다. 가족스포츠를 표방하는 프로야구에 담배회사의 네이밍스폰서는 과연 적절하냐는 논란은, '8개구단 체제를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에 묻혔다. 이숭용· 송지만 ·전준호 등 노장들은 절반 이상씩 삭감된 연봉에 계액해야 했다.
장원삼· 황재균· 이택근· 이현승 등 간판 선수들은 차례로 다른 팀에 보냈다. 현금 포함 트레이드였다. 여러 구단이 히어로즈에서 선수를 사오기 위해 수시로 기웃거렸다. KBO가 한 차례 트레이드 승인을 거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선수를 파는 시대착오적 방식으로 구단을 운영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연이은 시행착오가 끝나자 히어로즈에도 '봄날'이 왔다. 2010년 넥센타이어라는 새로운 네이밍 스폰서를 찾았다. 간판선수들과 맞바꿔온 자원들이 하나둘씩 제 몫을 해내기 시작했다. 넥센타이어와 재계약에 성공한 2011시즌 중반에는 트레이드를 통해 LG에서 박병호를 데려왔다. 도약을 위한 기반이 다져졌다.
좋은 선수들도 서서히 모였다. 2011년 말 프리에이전트(FA)가 된 이택근을 다시 영입했다. 박병호는 2012년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로 우뚝 섰고, 신고선수로 입단한 서건창은 신인왕에 올랐다. 현대 시절부터 함께한 강정호는 리그 최정상급 유격수로 성장했다.
2013년엔 고단했던 6년의 결실을 맺었다. 정규시즌 3위에 올라 창단 첫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늘어난 스타 선수들과 높아진 팀 순위만큼 구단 살림살이가 좋아졌다. 어느덧 가을잔치 단골손님이 됐고, '잘 키운' 박병호와 강정호를 메이저리그로 보냈다. 매년 신인왕 후보를 배출할 만큼 신인드래프트와 트레이드 성과도 좋았다.
히어로즈는 그렇게 비인기 구단의 설움을 딛고 당초 목표였던 '저비용 고효율'을 실현해 나갔다. 이 대표는 '머니볼'의 주인공인 빌리 빈 오클랜드 부사장의 이름을 따 '빌리장석'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비옥해지는 줄 알았던 넥센의 토양은 사실 뿌리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이장석 대표이사가 남몰래 구단 돈 수십 억원을 빼돌리고 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간 쌓아올린 탑도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구단 창단 당시 생긴 채무도 팀을 위기에 빠트렸다. 현대 인수 과정에서 KBO 가입금 120억원이 필요했던 이 대표는 재미교포 사업가인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에게 구단 지분 40%를 양도하는 조건으로 20억원을 투자 받았다. 하지만 "단순 대여금이며 주식 양도 계약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돈으로 갚겠다고 나섰다.
결국 대한상사중재원은 2012년 12월 "히어로즈는 홍 회장에게 지분 40%에 해당하는 주식 16만4천 주를 양도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개인 주는 있어도 히어로즈 구단은 주식이 하나도 없다'며 버텼고, 사기 혐의로 고소됐다.
2016년 8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이장석 전 대표의 모습. IS포토 이장석은 지난 1월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월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KBO도 곧바로 이 대표를 프로야구 관련 업무에 한해 직무 정지 처분을 내렸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구단 관계자가 KBO로부터 직무 정지를 당한 건 이 대표가 처음이다. 히어로즈는 2월 19일 박준상 신임 대표이사를 임명하면서 '이장석 그림자 지우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 대표가 실질적으로 구단 운영 전반을 '수렴 청정'하고 있다"는 소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편법 행위들이 그 증거이기도 하다. 지난 4월에는 장정석 감독과 이 모 전력분석팀장이 구단 사외이사를 겸직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사외이사 제도는 회사와 무관한 외부인사를 이사회에 참가시켜 독단적인 경영을 감시하고 투명성을 제고하는 게 목적이다. 장 감독과 이 팀장은 현재 구단의 정규직 직원은 아니다.
하지만 감독은 야구단의 '간판'이다. 팀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심지어 장 감독은 2016년 10월까지 구단 운영팀장으로 일하다 감독으로 취임했다. '직전 2년 동안 해당 회사에 근무하지 않은 자'라는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애초에 구단이 감독으로 임명한 인사가 이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경제적인 위기도 겪었다. 메인 스폰서인 넥센타이어가 3월과 4월분 스폰서비 합계 24억원을 지급 유예했다. "히어로즈 구단이 납득할 만한 경영 개선 방안을 낼 때까지 약속된 비용을 지급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결국 지난 2일 스폰서비 지급 재개를 결정했지만, "구단이 내세운 개선안이 팬들의 생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전제했다. 다만 "프로야구 10구단 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2018시즌까지 후원금 지급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넥센은 지금 사면초가다. 구단 창립자가 옥살이를 하는 동안 일부 주축 선수는 원정 숙소에 외부 여성을 끌어 들여 성폭행 혐의에 휘말리기까지 했다. 자립형 야구 기업의 성공 사례로 뿌리를 내리는 듯했던 '빌리 장석' 신화는 그렇게 각종 편법과 악몽으로 얼룩졌다. 이제는 오히려 리그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