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한화 이글스가 투자의 결실을 맺지 못했다. '역대급' 계약을 안겼으나 전례 없는 실패를 맞았다.
한화는 지난 16일 엄상백(29)을 1군 엔트리에서 말소했다. 이유는 당연히 성적 부진이다. 엄상백은 올 시즌 8경기에서 1승 4패 평균자책점 6.68로 크게 부진했다. 이름값을 한 경기는 사실상 하루에 불과했다. 6이닝을 소화한 게 딱 한 차례고, 5이닝 이상으로 넓혀도 3경기에 불과했다. 8경기 중 무실점은 한 번도 없었다.
한화가 엄상백에게 기대한 성적과 전혀 달랐다.지난해까지 KT 위즈에서 뛰었던 엄상백은 자유계약선수(FA)가 돼 올 시즌 전 4년 총액 78억원 조건에 한화와 계약했다. 3년 연속 지갑을 연 한화의 이번 겨울 최대 계약이었다.
한화가 엄상백에게 기대한 건 분명했다. 한화는 엄상백이 '상수'가 되길 원했다. 한화엔 1년 전 복귀한 류현진(8년 170억원 계약)이 있었지만, 그외에 계산이 서는 선발 투수가 없었다. 2023년 신인왕 문동주는 지난해 풀타임 기준 2년 차 징크스를 겪었고, 부상도 따랐다. 문동주는 너무 어렸고, 류현진은 반대로 나이가 많았다.
한화는 나이, 부상, 시즌 변수가 적고 기량이 뛰어난 투수를 영입해 류현진과 선발 로테이션 중심을 잡아야 했다. 엄상백은 20대 나이에 선발 경험이 풍부했다. 2점대 평균자책점 시즌(2022년 2.95), 두 차례 10승(2022년 11승, 2024년 13승) 등 검증을 마친 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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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온 금액이 78억원이었다. 역대 투수 FA, 비FA 다년계약선수를 모두 합쳐도 78억원은 역대 13위에 해당하는 숫자다. FA만 따지면 역대 8위.
각 구단이 대형 FA에게 준척급 선수들의 몇 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는 이유는 '안정성' 때문이다. 부진할 가능성이 작은 만큼 소수의 '최대어'에겐 그만큼 금액이 몰린다. 그래서 대형 계약을 맺은 이들 중 부진한 이가 많았지만, 대부분 첫 해엔 팀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들 중 엄상백처럼 첫 해 시작부터 부진했던 이는 그동안 없었다. 그나마 비FA 다년계약자인 고영표(5년 107억원 계약, 첫 해 평균자책점 4.95)나 구창모(7년 132억원 계약, 첫 해 11경기 평균자책점 2.96)가 부진이나 건강 이슈가 있었던 정도다. 모두 올해 엄상백 사례와 비교하긴 어렵다.
엄상백의 2군행은 '영구 강등'은 아니다. 엄상백의 빈자리는 황준서가 선발 한두 차례를 대신 채울 예정.한화는 앞서서도 주현상, 안치홍 등 부진한 선수들이 2군에 내려가 재조정 후 1군에 올라온 바 있다. 엄상백으로서는 말을 듣지 않는 직구 위력을 되찾는 게 먼저다. 올해 직구 피안타율이 0.450에 달한 상황. 체인지업(47.4%) 다음으로 구사율이 높은 구종(36.2%)인데 위력을 잃었으니 피해도 컸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한화로서는 심우준에 이어 이적생의 연속 이탈이라는 점도 뼈아프다. 한화는 12연승 직후인 12일 심우준을 무릎 비골 골절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했다. FA로 총액 50억원 계약을 맺고 왔던 심우준은 연승 기간 한화 수비의 핵심이었다. 타율 0.170 부진에도 수비 안정감을 위해 기용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이탈 후 한화의 연승도 끝났다. 현재 한화의 엔트리에서 지난해와 차이는 정우주 등 일부 신인, 그리고 에이스 코디 폰세 뿐이다. 지난해 한화는 그 엔트리로 8위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