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으로 스프링캠프를 떠나기 전 최형우(42·KIA 타이거즈)가 한 말이다. 당시 최형우는 "지금도 늦었다. 3년 전부터 물러나야 했다"며 "젊은 선수들이 중심 타자를 쳐야 팀이 발전한다. 나 같은 늙은이가 차지하고 있으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웃음 섞인 이야기였지만 표정은 자못 진지했다.
최형우가 지난해까지 때려낸 홈런은 395개. 지난 시즌에는 '17시즌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하며 개인 통산 8번째이자 4년 만에 시즌 100타점 고지를 재정복하기도 했다. 나이를 잊은 활약을 이어간 그가 '중심 타자 용퇴론'을 꺼내 든 이유는 그만큼 팀의 성장을 바라기 때문이다. 김도영을 비롯한 젊은 선수들이 중심 타선에 포진하는 게 팀의 미래를 위해서 더 낫다고 판단, 자신에게 어울리는 타순으로 6번을 꼽기도 했다.
KIA 최형우가 홈런을 기록한 뒤 베이스를 돌고 있다. KIA 제공
최형우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형우는 올 시즌에도 어김없이 KIA의 중심 타선을 지킨다. 28일 기준으로 팀이 소화한 28경기 중 22경기에서 4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이범호 KIA 감독은 NC 다이노스와의 개막 2연전 4번 타자로 외국인 선수 패트릭 위즈덤(최형우 5번)을 선택했으나 무안타로 침묵하자 세 번째 경기부터 최형우를 4번 타순에 포진시켰다.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도영(햄스트링) 박찬호(무릎) 김선빈(종아리) 등 주요 선수들의 릴레이 부상이 나오면서 타선 변동이 컸는데 '4번 타자 최형우'는 고정에 가깝다.
A 구단 전력 분석관계자는 "최형우만큼 4번 타자에 어울리는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최형우는 부진하더라도 언제라도 홈런을 터트릴 수 있다는 위압감이 크다"며 "전성기만큼의 파워는 아니더라도 노련하게 타격한다"라고 호평했다. 최형우는 올 시즌 출전한 첫 26경기에서 장타율 0.500을 기록했다. 이재현(22·0.479) 김영웅(22·이상 삼성 라이온즈·0.467) 강백호(26·KT 위즈·0.437) 등 자신과 띠동갑 이상 차이 나는 후배들에게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앞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범호 감독도 '4번 타자 최형우' 카드를 거둬들이기 쉽지 않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IA는 최근 또 다른 중심 타자 나성범이 부상으로 이탈, 최형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지난 27일 광주 LG전을 승리한 뒤 이범호 감독의 통산 100승을 축하하는 최형우. KIA 제공
최형우는 올 시즌을 마치면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아야 한다. 지난해 1월 계약한 1+1년, 총액 최대 22억원 계약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올해 스프링캠프 시작에 앞서 그는 "은퇴를 정하지 않았지만, (2025시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은퇴할 생각도 있다"며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유니폼을 벗기 전까지 그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최형우는 최근에도 "내가 6번(타순)을 해야 KIA가 더 앞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팀을 생각하면 당연히 내가 6번으로 내려가고 젊은 선수들이 (중심 타순에서)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그게 자기 것이 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