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운영사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이 사재 출연 의사를 밝혔다. 홈플러스의 기업회생(법정관리) 절차로 불안에 떠는 소상공인을 위해 납품 대금을 우선 지급할 수 있도록 자신의 돈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일단 김 회장의 사재 출연 규모와 실제 약속 이행 여부를 “일단 지켜봐야 한다”는 반응이다. MBK의 발표가 정치권과 여론, 그리고 금융당국의 거센 압박에 일단 ‘면피용’으로 나온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규모·일정 빠진 사재 출연 ‘면피용?’
MBK파트너스는 일요일인 지난 16일 입장문을 내고 “홈플러스 회생절차와 관련된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며 “그 일환으로 김병주 회장은 특히 어려움이 예상되는 소상공인 거래처에 신속히 결제 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일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한 이후 약 2주 만이다.
업계에서는 입장문에 사재 출연이라는 표현이 들어있지 않지만, 재정 지원을 마련할 것이란 표현은 사재 출연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홈플러스도 17일 입장을 통해 카드대금 기초 유동화증권(ABSTB·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 개인 투자자들과 관련 “해당 채권들이 전액 변제되는 것을 목표로 관련 증권사들과 함께 회생절차에 따라 최대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같은 MBK와 홈플러스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금투업계는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구체적인 사재 출연 액수와 변제 방법 등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홈플러스에 물건을 공급하는 납품업체는 1800여 개, 입점업체(테넌트)는 8000여 개다. 앞서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에 자금 집행을 승인한 내역은 총 4586억원 규모로 물품·용역대금 3457억원, 입점업체 정산대금 1127억원 등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강민국(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ABSTB·단기사채·기업어음(CP) 등 홈플러스의 단기채권 판매 잔액은 지난 3일 기준 총 5949억원이다. 이 중 증권사 등을 통해 개인 투자자에게 팔린 규모는 2075억원(676건)에 달했다.
금투업계 한 관계자는 “소상공인과 개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우선 정산·변제하겠다는 결정은 다행이지만 사재 출연 규모 등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현재 정산 현황과 향후 지급 계획, 회사 정상화 방안은 무엇인지 등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력업체와 입점업체, 임대 점주들 역시 현재 홈플러스와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경모 홈플러스 입점협회 부회장은 “구두 발표가 아닌 공문이 필요하다”며 “입점업체들은 계속 영업을 해도 될지, 폐점하면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있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MBK와 김 회장이 오는 18일로 예정된 국회 정무위 긴급 현안질의 때 화살을 피하려는 용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 회장은 이미 출장을 핑계로 불출석 사유서를 낸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 회생절차 이슈가 국가적인 관심사로 떠올랐으며, 국회에서 김 회장을 증인으로 부르자 사재 출연을 통해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시도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관계자는 “현재 소상공인 채권 지급에 필요한 소요 금액을 추산 중에 있으며, 집계가 완료되는 대로 주주사와 실무협의를 통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소상공인들의 채권 지급을 완료함으로써 소상공인들의 불안과 불편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회생신청 직전 단기채 발행 사전 계획했나
문제는 홈플러스와 MBK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장 홈플러스와 MBK가 이미 지나나해 말부터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인지했음에도 채권 발행을 강행했다는 의혹이 잇따르고 있다. 홈플러스의 주된 단기자금조달 수단이던 ABSTB 발행이 작년 말부터 급증해, 회생 신청 직전인 지난달에는 최근 2년새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실제 이인영(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신영증권의 2023∼2025년 월별 홈플러스 ABSTB·기업어음(CP)·단기사채 발행 현황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ABSTB 발행액은 지난달 1518억원으로 월별 기준 최근 2년새 가장 많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당국도 이를 인지하고 지난 13일 홈플러스 유동화증권 발행 주관사인 신영증권과 신용평가사들을 상대로 검사에 착수한 상태다. 홈플러스와 MBK가 신용등급이 강등될 것을 미리 인지했거나 회생신청 계획을 미리 세우고도 채권 발행을 지속했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현재 금감원은 당장 증권사의 불완전 판매 여부를 들여다보기보다는 사기 발행 규명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국민 10명 중 7명은 홈플러스 채권 사기발행, 배임과 탈세 의혹 등에 대해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까지 전방위 수사해야 한다는 의견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지난 13~14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688명(68.7%)이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MBK까지 조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233명(19.1%), ‘잘 모르겠다’는 15명(12.2%)으로 집계됐다.
또 설문 대상의 691명(69.0%)은 ‘MBK가 홈플러스 인수 때 사용한 차입매수 방식에 대해 규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MBK는 과거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 상당부분이 차입금었으며 홈플러스 명의의 대출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