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스코어 카드에 점수를 잘못 적어서 제출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엘리트 골퍼가 겨루는 골프 대회 때 이야기이다. 실격이라고? 절반만 맞는 이야기이다.
지난 2021년 9월 마지막 날 일이다. 그 때 뱁새 김용준 프로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KPGA투어 경기위원이었다. 그 날은 경기도 여주에 있는 페럼골프클럽에서 대회를 열었다. ‘코리안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이었다. 그 때는 KPGA투어를 ‘코리안투어’라고 불렀다.
첫 라운드가 끝날 무렵이었다. 천철호 경기위원장 낯이 어두웠다. 최경주 선수가 경기위원회에 올라왔다고 했다. 자신의 점수를 재확인하러 온 것이다. 자신은 그날 2오버파를 쳤는데 리더 보드에는 3오버파로 떴다고 했다. 최경주 선수는 천 경기위원장과 함께 스코어 카드를 확인했다. 그리고 16번 홀 점수를 잘못 쓴 것을 찾아냈다. 파3인 그 홀에서 최경주 선수가 실제로 친 점수는 ‘3’ 즉, 파였다. 그런데 스코어 카드에는 ‘4’이라고 써서 제출한 것이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그날 최경주 선수를 마크한 사람은 박 모 선수였다. 박 선수는 애초에 16번 홀 점수를 ‘3’이라고 맞게 적어서 최경주 선수에게 건넸다. 그런데 최경주 선수가 자신의 16번 홀 홀 점수를 ‘4’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박 선수는 스코어 카드를 돌려 받아 최경주 선수가 말한 대로 ‘4’라고 고쳐서 다시 돌려 주었다. 최경주 선수는 고친 스코어 카드에 서명을 하고 경기위원회에 제출했고. 그리고 스코어 카드 제출처를 떠났다.
사진=게티이미지 최경주 선수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리더 보드를 보았다. 리더 보드에는 자신의 점수가 3오버 파라고 올라왔다. 2오버 파가 아니라. 최경주 선수는 곧바로 경기위원회를 찾아 문의한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제출한 스코어 카드를 수정할 수 없다는 것은 그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만 해도 ‘벌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점수를 적어낸 뒤에 나중에야 벌타를 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만’ 점수를 고칠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냐고? 바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뱁새 김 프로는 최경주 선수가 이튿날 점수를 줄여서 컷 통과를 하기 바랐다. 대선수이자 대회 주최자 아닌가! 이어지는 10월 1일 경기에서 최경주 선수는 선전했다. 뱁새는 조마조마하며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하는 리더 보드를 휴대 전화로 수 십 번도 더 확인했다. 최경주 선수는 한 타 한 타 줄이더니 마침내 그날만 3언더 파를 기록했다. 이틀 합계 이븐 파였다. 아슬아슬했다. 경기위원회가 주최측과 머리를 맞대고 어렵게 코스 세팅을 하긴 했다.
그래도 선수들이 너무 잘 쳤다. 안개 탓에 그날 경기는 늦게 끝나서 최종 컷 오프 점수는 이튿날인 10월 2일에야 정해졌다. 컷 오프 점수는 안타깝게도 ‘1언더 파’. 최경주 선수는 한 타 차이로 컷 탈락했다. 대회 주최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담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날아온 최경주 선수였기에 뱁새는 더 안타까웠다. 미국 PGA 챔피언스 투어 참가도 포기하고 날아온 것일 텐데.
이쯤 되면 궁금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아니, 실수로 잘못 기록한 점수를 왜 못 바꾸냐’고 말이다. 그러게 말이다. 골프에서는 그랬다. 다른 종목은 점수를 심판이나 경기위원회가 매긴다. 그런데 골프는 선수 자신이 점수를 매겨서 경기위원회에 제출한다. 물론 서로 돌아가며 감시도 하고 점수도 기록하기는 한다. 그래도 최종 점수는 선수 자신이 책임을 지고 제출해야 한다. 그래서 엘리트 골프 대회의 스코어 카드는 조금 다르다. 자신이 마크하고 있는 선수의 점수를 기록하는 칸과 별도로 자기 점수도 기록하는 칸이 있다.
최경주 선수는 아마 16번 홀 파3에서 ‘파’를 기록하고도 자기 점수를 적는 칸에 무심코 ‘4’라고 적었을 것이다. 자신이 쓴 것을 보고 마커인 박 선수에게 16번 홀 점수를 바꿔 달라고 요청한 것이고. 나중에 마커인 박 선수에게 물었다. 박 선수는 “대 선배인 최경주 선수 본인이 4라고 하니 멈칫했지만 따져 묻지 못하고 고쳐준 것이다”고 답했다. 최경주 선수 본인도 마커인 박 선수도 2라운드 때 얼마나 조마조마 했을까? 결국 손해 본 한 타가 발목을 잡았을 때 두 사람 마음은 어땠을까?
사진=게티이미지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여간 해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스코어 카드를 내고 나서도 15분 이내에는 수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골프 규칙을 그렇게 바꾼 것이다. 왜 진즉 이렇게 하지 못했느냐고? 점수를 속이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어서 그랬다. 최경주 선수처럼 손해를 본 경우 말고 말이다. 보기를 해 놓고도 파를 했다고 써서 내는 악당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나중에 고칠 수 있게 하면 슬쩍 속여보았다가 들키면 마는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골퍼는 신사이고 숙녀라고 보는 것과는 모순이긴 하다.
이제는 혹시 나쁜 마음으로 줄여서 낸 점수라고 해도 15분 이내에는 수정할 수 있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가 꾀가 있다면 15분이 지나서 돌이킬 수 없게 된 뒤에야 따지겠지만.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지메일 ironsmithki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