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프로배구 고희진(44) 정관장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처음 치르는 포스트시즌(PS)을 자신의 무대로 만들고 있다.
정관장은 지난 24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2023~24 도드람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의 플레이오프(PO·3전 2승제) 2차전에서 세트 스코어 3-1로 승리했다. 1차전에서 패하며 탈락 위기에 놓였지만, 고희진 감독이 현란한 용병술을 보여주며 승부를 원점을 만들었다.
2차전을 앞둔 고희진 감독은 선발 아웃사이드 히터(레프트) 자리에 변화를 줬다. 1차전에 나섰던 박혜민 대신 4년 차 '무명' 김세인 투입을 예고했다. 고 감독은 "상대 감독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달라"라며 너스레를 떨면서 "김세인이 서브 리시브도 좋아졌고, 원 블로킹 상황에서 뚫어낼 수 있는 공격력도 갖췄다"라고 자신했다.
원래 국내 주전 레프트는 지난 7일 GS칼텍스전에서 왼쪽 발목 부상을 당한 '캡틴' 이소영의 자리다. PO 1차전에서 이소영 대신 박혜민은 상대 서버들의 목적타(의도적으로 특정 선수에게 서브를 보내는 전략에 고전했다. 이 경기 박혜민의 리시브 효율은 15.38%에 불과했다.
고희진 감독은 2차전을 앞두고 "상대는 박혜민이 나올 것으로 보고 공격과 수비를 대비했을 것이다. (김)세인이가 들어갔을 때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싶기도 하다"라고 했다. 상대가 낯선 선수 투입에 빠르게 대처하더라도, 다른 전술을 꺼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김세인은 2차전에서 공·수 모두 활약하며 PO 양상을 바꾸는 '체인저' 역할을 했다. 디그는 12번 중 10번 성공했고, 리시브 효율은 무려 64.71%를 기록했다. 승부처에서 강타·연타·서브 등 다양한 루트로 9득점을 지원했다.
고희진 감독의 판단이 딱 맞아떨어졌다. 고 감독은 경기 뒤 "상대 변화에 잘 대처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건 모든 팀이 어렵다. (이)소영이가 부상을 당한 뒤 국내 레프트들에게 리시브 특별훈련을 지시했는데, (김)세인이가 잘 따라주고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라며 웃어 보였다.
고희진 감독은 김세인이 상대 세터 이원정을 앞에 두고 공격할 기회를 늘리기 위해 오더(로테이션 순번)를 짤 때도 치열하게 고민했다. 경기 안팎에서 여유 있는 표정과 발언으로 기세 싸움을 주도하기도 했다.
고희진 감독은 챔프전 우승만 여덟 번 차지한 삼성화재 왕조 시절(2005~2014년)의 주축 센터였다. 단기전을 치르는 노하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감독으로는 처음 PS를 이끌고 있지만, 오히려 '타짜' 같은 노련미를 보여주고 있다.
고희진 감독은 지난 16일 PS 미디어데이에서 "정관장 팬들에게 수원 갈비 먹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수원 실내체육관을 홈으로 쓰고 있는 정규리그 1위 현대건설과 챔프전을 치르겠다는 의미였다.
V리그 여자부에서 PO 1차전에서 패한 팀은 모두 챔프전 진출에 실패했다. 정관장과 고희진 감독이 26일 PO 3차전에서 새 역사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