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준 경제산업부 기자 총선 시즌이 다가오면서 여의도 곳곳에서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를 외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모처럼 정부와 야당의 뜻이 맞았지만 우려가 적지 않다. 서민 경제와 직결된 이슈라 깊게 살펴보는 것은 좋은데, 표심만 노린 탓에 제대로 준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새해가 밝자마자 단통법을 전면 폐지하겠다는 방향성을 공유했다.
정보 불균형에 따른 소비자 간 차별적인 지원 행태를 막기 위해 2014년 제정한 지 10년 만이다. 자유로운 지원금 경쟁을 유발해 경기 불황 속 국민이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가격에 단말기를 구매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곧장 작업에 착수했다. 단통법 폐지는 국회 통과가 필요한 사안이라 시간이 걸리는 만큼 연착륙을 위해 '시행령 일부 개정'이라는 카드부터 꺼내들었다.
번호 이동 시 이통사가 위약금과 심(SIM·가입자식별모듈) 카드 발급 비용 등을 명목으로 최대 50만원의 전환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당장 지갑을 열어야 하는 이통사는 고민에 빠졌다. 이제 막 5G 전국망 커버리지 구축 작업을 마치고 AI(인공지능)와 플랫폼 사업에 본격적으로 투자하려는 찰나에 마케팅 출혈 경쟁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미 고착화한 점유율 구도에서 지원금 상한을 없앤다고 해도 무리한 싸움에 뛰어드는 사업자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소수를 대상으로 야간 깜짝 프로모션을 펼치는 유통점이 생기면 소비자 차별은 오히려 전보다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성지'를 탄생 시킨 불법 지원금의 족쇄가 풀리면 어르신 등 정보 취약층은 혜택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현행 선택 약정 할인 25% 제도 유지를 내걸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단통법 폐지를 강행하는 과정에서 내놓은 임시방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민단체까지 법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며 물음표를 던지고 나섰다.
서울YMCA는 "현재의 단통법이 지원금을 단말기 구입 관련 비용으로 정의하고 있는데도 이와 무관한 장기 가입 혜택을 전환 비용에 포함해 지원금으로 지급하는 것은 상위 법령을 위반해 위임 입법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알뜰폰 이용자가 이통 3사로 과도하게 유입되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봤다.
표심만 보고 달려드는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장 혼란을 막는 가이드라인부터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 글로벌 빅테크로 도약하려는 이통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만큼 단통법은 결코 지금처럼 성급하게 다뤄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