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임시 사령탑으로 황선홍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이 선임됐다. A대표팀을 이끌고 다음 달 있을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예선 두 경기를 이끈다. 황선홍 감독은 오는 4월 파리 올림픽 최종예선이라는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있지만, 최종예선 직전 A대표팀을 지휘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은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전력강화위 브리핑을 열고 황선홍 올림픽 대표팀 감독의 임시 사령탑 선임을 발표했다. 전력강화위 2차 회의에서 3월 월드컵 예선은 임시 감독 체제로 꾸리기로 가닥을 잡은 뒤 황선홍 감독이 우선순위 1순위에 올랐고, 제안 하루 만에 황 감독이 수락하면서 임시 감독 선임이 확정됐다는 게 전력강화위 설명이다.
정해성 위원장은 “전력강화위는 황선홍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을 지휘하는 대한축구협회 소속 지도자고,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성과도 보여줬으며 국제대회 경험이나 아시아 축구에 대한 이해를 갖췄다고 평가했다”고 했다. 이어 “임시 감독에 중점을 두고 위원들이 각자의 개인 의견을 냈고, 그 안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감독이 황선홍 감독이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은 그야말로 중대한 시기에 있다는 점이다. 올림픽대표팀은 오는 4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을 치른다. 파리 올림픽 최종예선을 겸하는 대회다. 이 대회에서 3위 안에 들어야 올림픽 출전권을 따낼 수 있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일본과 중국, 아랍에미리트(UAE)와 한 조에 속했다. 당장 조별리그 통과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데다, 토너먼트에서도 준결승까지 올라 승리해야 파리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이를 위해 3월 A매치 기간 올림픽대표팀은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해 친선대회에 참가한다. 사실상 올림픽 최종예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실전 담금질에 나설 기회다. 그러나 황선홍 감독이 A대표팀 임시 사령탑으로 선임되면서, 올림픽대표팀은 ‘선장 없이’ 사우디로 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선수들의 옥석을 가리든, 전술적인 완성도를 높이든 황 감독 없이 나머지 코치진 체제로 최종예선을 마지막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이처럼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시기, 정작 황선홍 감독은 A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예선에 나서야 하는 셈이다.
다음 달 태국과의 월드컵 예선 2연전, 그리고 올림픽 최종예선까지 그야말로 중요한 경기들을 황선홍 감독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월드컵 예선 태국과 2연전 성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고, 특히 자칫 올림픽 본선에 나서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황선홍 감독의 지도자 커리어는 사실상 끝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A대표팀 임시 감독 체제가 그 원인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점이다. 오롯이 황선홍 감독의 경질이나 사퇴 등 오롯이 황 감독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결과가 안 좋게 나왔을 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신다면, 제가 전력강화위원장으로서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의 발언은 그래서 더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실제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할 상황까지 몰렸다면, 이미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등 심각한 결과와 마주했다는 뜻일 터. 이런 가운데 정 위원장은 황선홍 감독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자신이 그 책임을 지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문제는 올림픽 본선 좌절 등 한국축구가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전력강화위원장의 사퇴 여부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과 맞물려 마이클 뮐러 전 위원장을 비롯한 전력강화위가 단번에 물갈이가 됐듯, 선임한 감독의 결과가 좋지 못하면 전력강화위의 거취가 외부에 의해 결정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전력강화위원장이 책임지고 물러난다고 한들, 그만한 파급력이 있는 자리도 아니다.
더구나 전력강화위는 애초에 감독 선임에 대한 조언과 자문 정도만 하는 기구다. 감독 선임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결국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게 있다. 차라리 정몽규 회장이 “결과가 안 좋으면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면 모를까, 아무런 권한이 없는 전력강화위원장이 먼저 ‘책임’을 운운한 건 사실 의미가 없다. 애초에 감독 선임 브리핑 자리에서부터 “결과가 안 좋으면 제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발언이 나온 것부터가, 이번 황선홍 임시 감독의 선임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