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이따금씩 잠을 제대로 못 잤다. 한 이틀 정도는 악몽을 꿨다. 짧은 낮잠 자리까지 어수선했다. 지난 13일 프로야구 구단 LG트윈스가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21세기 들어 한 번도 우승을 못 한 유일한, 아 한화가 있었지… 하여튼 그런 구단이 됐다.
‘엘롯기’ 꼴찌 트리오라는 놀림을 함께 받았으면서 이렇게 롯데를 배신하고 가다니. 질투와 배신감에 몸서리가 쳐졌다. 롯데보다 한참 역사가 뒤진 신생팀들이 몇 번이나 우승을 차지할 때도(롯데 팬들은 여전히 V3만을 목놓아 부르고 있건만) 이 정도로 외롭고 쓸쓸하진 않았다. 친구 LG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1994년 이후 우승 기록이 없던 LG트윈스가 마침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던 그 날을 어떻게 태연히 보내겠는가. 그리고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연예계 소문난 갈매기(롯데 자이언트 팬을 일컫는 말)인 배우 조진웅에게 근래의 심경을 어찌 묻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아무리 이 자리가 넷플릭스 새 영화 ‘독전2’ 공개에 따른 것이었더라도 말이다.
영화 이야기를 다 하고 마지막 질문까지 마친 뒤 “개인적인 질문인데” 하며 급하게 한 마디를 더 던졌다. “LG트윈스가 우승을 하면서 롯데가 한화와 함께 21세기에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 한 팀으로 남게 됐는데 심경이 어떠십니까”라고. ‘놀리는 건가’ 생각할까봐 급하게 “저도 갈매깁니다”를 덧붙였다. 동병상련의 시선교환이 오갔다.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너무 잦으면 그게 일상이 되거든요. 올해 같은 경우는 4~5월 롯데가 1위를 했는데요, 저는 그때도 ‘곧 제자리를 찾아가겠거니’ 했습니다. 정확하게 시즌을 8위로 마무리했습니다. 절망도 일상이 되더군요.”
항간에는 롯데가 이긴 다음 날엔 조진웅이 웃으면서 촬영장에 오고 진 날엔 저기압이 돼 온다는 말도 있다. 역시 오르락내리락하는 갈매기의 마음은 배우나 기자나 똑같은가보다.
조진웅은 “지면 욕하고 이기면 덜 욕하고 그게 롯데와 갈매기 아니겠느냐”며 “20년 안에는 우승하겠지 하다가, 또 30년 안에는 우승하겠지 하다가 이제는 내가 죽기 전엔 한 번만 해줬으면 좋겠다 하고 있다”는 간절한 소망을 드러냈다.
“어찌 그리 초연하냐”는 기자에게 조진웅은 “원래 갈매기가 되고 한 15년 동안은 간이 안좋아지고 30년까지는 심장이 안좋아지고 그 이후부턴 그냥 초연해진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승리의 기쁨에 취한 LG를 향해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철학적 한 마디를 남겼다. 역시 갈매기 선배님. 내공이 상당하시다. 내년부턴 심장을 조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