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최악의 악’에서 인상 깊은 배역을 꼽으라면 서부장(서종렬)을 빼놓을 수 없다. 올백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채 깡패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유의 무표정한 표정에선 날카롭고 냉철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배우 이신기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겉모습과는 달리 ‘인싸’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말 한마디에 장난기가 배어있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고 술은 체질에 맞지도 않는단다.
아직 이신기라는 이름보단 서종렬 세 글자가 더 익숙하지만 ‘최악의 악’을 통해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이신기는 최근 서울 중구 KG타워 일간스포츠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반응이 처음이다 보니 너무 신기하고 재밌다. 각국의 시청자들에게 인스타그램 DM을 많이 받는다”며 “해외에서도 잘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요즘은 빨간색 알림창 뜨는 맛으로 산다”고 말했다.
‘최악의 악’은 1990년대, 한·중·일 마약 거래의 중심인 강남연합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경찰 박준모(지창욱)가 조직에 잠입 수사하는 과정을 그린 범죄 액션 드라마. 지난달 25일 최종회까지 공개됐다. 이신기가 연기한 서종렬은 강남연합의 중간 간부이자 킬러였다.
“서종렬은 대본에서부터 이미지가 강한 캐릭터였어요. 그래서 준비하는 게 힘들었죠. 경찰이나 조폭 등 특정 직업이 주는 선입견이 있잖아요. 그걸 배제하고 기초작업을 시작했어요. 오디션장에서 감독님께 ‘서종렬은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죽였다’고 들었고 캐릭터 라인을 만들어 나갔어요.”
강남연합의 보스 정기철(위하준)은 서종렬에게 처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다. 서종렬은 정기철의 향한 충성심을 가진 채 간부 자리를 호시탐탐 노린다. 오디션을 통해 역할을 꿰찬 이신기는 캐릭터 설정에 자율성이 주어졌다며 “책임감 있게 연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서종렬의 매력으로 ‘신선한 얼굴’을 꼽았다.
“외형이 한몫했다고 생각해요. 선글라스나 머리, 가죽 재킷까지요. 그리고 칼잡이라고 하지만 칼로 한 액션이 잘 없어요.(웃음) 임팩트가 강했나 봐요. 카메라 감독님, 조명 감독님이 특히 절 좋아해 주셨어요. 조명을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다르게 보이거든요. 감독님들이 프로페셔널하게 해주셔서 서종렬이 더 잘 보인 것 같아요.”
서종렬은 권승호(지창욱)의 정체를 가장 먼저 빨리 알아채는 인물이다. 같은 역삼고 출신이 아닌 권승호에게 동질감을 느꼈지만, 그의 정체가 경찰인 것을 알고 추궁하다 석도형(지승현)을 살해한다. 이신기는 “서종렬에게 권승호가 경찰인 건 중요하지 않았다. 권승호에 대한 배신감보다도 정기철을 배신했다는 게 더 컸다”며 “만약 권승호가 서종렬이 시키는 대로 석도형을 찔렀다면 기철에게 아무 말 안 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신기는 서종렬의 결말에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조폭 미화도 아니고 공권력에 힘없이 잡혀가는 게 좋았다”며 “아무리 잘나가던 사람이라도 죽음은 허무하듯, 끝이 허무한 게 맞다고 생각한다. 서종렬의 엔딩도 그래서 더 여운이 남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신기는 ‘최악의 악’으로 주목받기 전 드라마 ‘신의 퀴즈: 리부트’, ‘보좌관’, ‘메모리스트’, ‘런 온’, ‘통증의 풍경’, 영화 ‘드림’ 등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특히 배우가 되기 전에는 축구선수와 록밴드 보컬을 꿈꿨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축구를 했어요. 김해시청에 입단했다가 은퇴했죠. 록밴드 보컬이 하고 싶었거든요.(웃음) 그러다 뮤지컬 공연을 보게 됐고 뮤지컬을 배우러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큰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졸업하고 십자인대가 끊어졌어요. 뮤지컬은 춤을 춰야 하니까 먼저 연기를 시작했죠.”
‘최악의 악’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신기는 오는 12월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로 또 다시 시청자들을 만난다. 그는 “대사하려고 일본어를 배웠는데 꽤 열심히 준비했다”며 “연말은 ‘경성크리처’ 보면서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